주의 은혜와 사랑을 떠난 시드기야왕의 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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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와 사랑을 떠난 시드기야왕의 최후는
[열왕기하 25장 1절 ~ 7절] 2023. 8. 2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7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9.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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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왕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어려움도 겪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으로 패망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는 두 눈이 뽑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면 절대로 그런 비참한 일을 당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훌륭한 왕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아주 부강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세속으로 흘러가면서 하나님을 거역해 너무나 비참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을 볼 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성경 속에서 발견한 것은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죄 때문에 무척 갈등하다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62년도에 성경 속에서 모든 죄가 사해진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날 이후 제 인생에는 ‘제가 걷는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제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특히 성경을 읽다 보면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어 나가서 복음을 외치고 싶고,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 후 저는 선교학교에 입학해  전도자가 되어 합천 압곡동과 거창 장팔리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한 명 한 명 형제자매들이 구원받는 게 너무나 신비했습니다. 군 입대 전에 있었던 장팔리 교회는 미국 맥카피 선교사님이 설립했습니다. 건축가였던 맥카피 선교사님이 직접 학교를 짓겠다고 한국으로 오셨는데 거창고등학교를 지은 후, 장팔리 하천 부지를 매입하여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 뒤 맥카피 선교사님이 오산으로 가시면서 장팔리 교회에 전도사 한 분이 오셨는데 교인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몇 명 안 남았습니다. 그 소식을 안타깝게 여기고 저에게 맡아 달라고 부탁하셔서 장팔리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팔리 교회 시절

우리가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속에 쌓여있던 모든 죄가 사해집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사해졌네’ 하며 복음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장팔리 교회에는 주일학생 두 명만 나왔었는데 제가 사역을 시작하고 한 달쯤 되면서부터 형제자매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반 지나자 50명가량 구원받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매일 교회에 모여 목이 아프도록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시간 정도 말씀을 전하고 난 뒤 돌아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보통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모임이 끝났습니다. 모임을 마치면 자전거 한 대에 두 명씩 타거나 걸어가면서 못다 한 얘기를 하고 찬송을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자전거로 읍내까지 데려다주고 캄캄한 밤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올라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속이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군에 입대한 날 저녁에

1965년에 군대 영장을 받고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돈 없이 한번 가보자’라는 마음이 들어서 돈 한 푼 안 가지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군대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정확히 봤습니다. 입대하는 날 교회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가다 보니 늦어서 선교사님이 자가용으로 부대 앞까지 태워주셨습니다. 그날 저녁 한 분이 저를 불렀습니다. “너, 자가용 타고 왔지?” “예, 그렇습니다.” “내가 너 후방 보내줄게. 전방 가면 고생도 많이 하고 사람은 구경도 못 한다.” “예, 감사합니다.” “돈 만 원만 내라.” 1960년대에는 자가용 가진 사람이 거의 없을 때라 그분이 저를 부잣집 아들로 오해했습니다. 그 당시 군대 간다고 어른들께 인사하면서 받은 돈이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교회 나오는 형제자매들 가운데 성경이 없는 분에게 성경을 사서 선물하고 100원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목도장이 하나 필요해서 70원 주고 구입하니까 제 주머니에는 30원이 있었습니다.

원주 통신훈련소에서

저는 그분에게 “만 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7천 원도 없나?” “없습니다.” “그럼 얼마 있냐?” “30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 자식, 장난해. 넌 내가 반드시 강원도 보낸다.” 자가용 타고 왔으면서 돈이 없다니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자대로 배치되는 날 그분이 왔습니다. 제일 먼저 제 이름을 부르더니 “3103XXXX 박옥수! 강원도 원주 통신훈련소!”라고 했습니다. 
원주 통신훈련소에서 16주 주특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 기수까지는 대전에서 교육받았고 제 기수부터 원주에서 훈련받게 되어, 우리 기수는 선배 없이 동기들만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1기생으로 통신훈련소를 다 잡았습니다. 저는 매주 토요일에 신병들을 찾아가서 기독교인 명단을 작성하고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약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배드릴 장소가 없어 골짜기에서 예배를 드려도 감사했습니다. 

군목 대신 말씀을 전하고

제가 군에 입대한 후 가장 좋았던 것은 주일마다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훈련소에 군목이 있었지만 주일 예배시간에 자리를 비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군종병들이 찬송만 계속 부르다가 예배 시작 시간이 되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목사님은 민간교회 초청을 받아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저희가 설교 준비를 못 했는데 여러분 가운데 신학교에 다녔거나 전도사였던 분이 있으면 나와서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앞에 앉아 있다가 바로 나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대 무렵, 1968년에 북한 특수공작원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미수에 그친 김신조 사건이 발생하면서 군인들의 제대가 모두 연기되었습니다. 몇 달 후 제대특명이 내려왔는데 저는 마지막 날에 걸려서 다른 사람보다 두 달 가까이 먼저 제대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너는 제대할 때도 운이 좋네”라며 부러워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복음을 전하다 보니 주님이 제 모든 삶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찬란했던 이스라엘 문명

여러분, 전능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돕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나라가 멸망하고 시드기야왕은 두 아들이 죽고,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세운 왕이 그런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그 찬란했던 이스라엘 나라가 왜 그렇게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종종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와 믿음에서 떠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자기 삶에 젖어 살다 보면 구원받은 것도 시들해지고 복음과 말씀도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구원은 받았으니 천국은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세상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지만 악한 영도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교회와 멀어져 육신의 욕망대로 살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사단의 역사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비참한 시드기야왕의 결말

열왕기하 25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 때 어떠한 결말을 초래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시드기야왕의 결말은 너무나 안타깝고 비참합니다. 하나님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고, 어려운 일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삶. 죄 사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파선시키기 위해 사단이 수많은 일들을 합니다. 주변 사람과 안 좋은 감정을 갖게 한다든지, 교회를 다니며 어려운 일을 당한다든지, 부모님이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든지, 별별 이유를 달아서 우리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믿음이 점점 자라서 복음을 전하면 주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를 어둠과 죄악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려고 할 때 ‘오늘 좀 피곤하다. 하루 쉬어야겠다.’ ‘오늘 마음도 복잡한데 성경은 다음에 읽지 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 ‘이 일을 하면 큰돈을 벌 텐데. 교회 다니는 거 당분간 좀 쉬어야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 하루 쉰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믿음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하루 쉬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그러다가 우리 마음이 주님과 멀어지고 영적 감각이 죽으면서 세속에 빠지게 됩니다.

목신을 섬기던 한 부인

반대로 처음엔 좀 부담스러워도 조금씩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죄 사함을 받고 처음에는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 전하는 법을 배워 전도를 시작하니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구원받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제가 김천에서 사역할 때 배성만 학생이 구원받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점쟁이를 신뢰해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아파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당신 아들이 교회에 가서 믿는 신이 달라 아픈 거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배 형제에게 앞으로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배 형제는 그래도 계속 교회에 나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집에 찾아갔는데 장롱을 세워놓으면 목신이 화를 낸다고 사람 누울 공간도 없는 집에 장롱을 눕혀 놓고 그 사이로 배 형제 어머니가 누워계셨습니다. 제가 오자 옆으로 돌아누우셔서 저는 그분 등을 보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어머니가 제 등에 대고 “누가 저런 인간을 집에 불러들이라고 했어!” 하며 고함을 지르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분이 저를 집으로 부른 아들이 너무나 괘씸하니까 “예수 믿으면 나 죽는다는데도 저놈이 저러고 있어” 하며 남편에게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여보, 나 목신 진절머리 난다. 우리 차라리 예수님 믿자”라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엄마, 우리 예수님 믿어요. 예수님 믿으면 엄마 병 나아요”라고 하자 그때부터 온 가족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 어머니도 구원받아 병이 낫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태평양 섬을 위한 기도

복음을 전하려 할 때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그 단계만 지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우리 마음과 주님의 마음이 가까울 때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시면서 누구든지를 불문하고 그를 통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전에 제가 기도하다가 저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태평양에 많은 섬이 있는데 그 섬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삽니까? 그들은 어떤 옷을 입고 뭘 먹고 삽니까? 주님, 그들에게 복음 전할 전도자를 보내게 해주십시오.” 당시엔 말이 안 되는 기도였는데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 생명은 하나가 아닙니다. 저는 아이 둘을 낳았지만 지금 손자들까지 자손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살면 거기서 오는 풍성한 영적인 은혜와 축복이 너무나 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시면 친척, 친구, 이웃이 구원을 받고 그들이 또 복음을 전해 구원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처음에 복음을 전하면 구원을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계속 전하다 보면 어떻게 죄 사함을 전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 

제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뒤에 살고 있는 삶이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이 전도해서 거듭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신다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만일 자식이 있는데 결혼해서 아기를 못 낳으면 얼마나 부모 속이 타고 답답하겠습니까? 영적으로도 우리가 복음을 듣고 거듭난 뒤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들은 뒤 구원받고 바로 복음을 전해도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해 그들이 거듭난다면 말할 수 없는 소망이 생기고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면서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역사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열왕기하 25장을 보면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왕 십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사월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였고”(왕하 25:1~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을 2년 동안 포위해서 성 중에는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시드기야왕이 도망가다가 붙잡혔는데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두 눈을 뽑았습니다. 아들이 죽는 처참한 기억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비참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막아주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과 시드기야왕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부귀와 그 풍성함 때문에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고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그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멸시해 비참함 속에 빠진 것입니다.

육신의 편안함에 젖다 보면

여러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를 모르면 교회를 하루 빠져도 괜찮을 것 같고 예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편안함에 젖다 보면 육신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구원받은 사람을 육신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온갖 계략을 꾸밉니다. 육신의 편안함을 좇으면 교회를 한두 번 빠지다가 ‘예배에 안가도 괜찮네’ 하며 주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구원 안 받은 사람처럼 세상 속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육신을 위해 돈 버는데 정신없다가 마침내 시드기야왕과 같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슬프게도 죄 사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다 교회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처음에는 정말 기뻐하다가 한 번씩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을 따라가면 주님과 멀어지게 되면서 우리 마음이 점점 세상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것조차 어색해할 정도로 신앙을 저버리게 됩니다. 사단은 간교해서 우리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도록 하다가 어두움과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때론 하나님 때문에 핍박도 당해보고 욕도 얻어먹어 보고 남에게 따돌림도 당해보십시오. 그러다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쉽게 주님을 대적할 수 있고 교회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기 싫고 성경도 읽기 싫고 세상 속에 빠지면서 안 믿는 사람과 똑같아집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펴서 읽고 저녁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차면 시드기야처럼 비참한 일을 겪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멀어지면 시드기야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2023. 8. 2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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