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주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간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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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주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간 요나단 
[사무엘상 14장 1절 ~ 23절] 2023. 6. 25. 주일오전 예배설교 - 96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7.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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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에게는 종종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주님이 우리에게 일하실 조건이 되는 것을 볼 때 감사합니다. 1962년, 제 인생은 너무나 어둡고 막막했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제가 계획한 모든 것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내 죄가 다 사해진 사실을 발견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외형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 전도자가 되어서도 삶 속에는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첫 사역지인 압곡동에서나 장팔리에서도 어려움이 많았고 군대에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만나든 항상 주님이 도우셨습니다.
 

군에 입대한 후

군에 입대하는 날 인사를 드리러 교회에 가니 마침 기도회 중이었습니다. 기도회가 늦게 끝나 선교사님이 승용차로 부대까지 태워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승용차가 귀할 때라 제가 차에서 내리니 부대안의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한 사람이 저를 불렀습니다. “낮에 승용차 타고 왔지?” 그 사람이 저를 부잣집 아들로 본 것입니다. “내가 너 후방 보내줄 테니 칠천 원만 내.”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오천 원, 삼천 원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도 돈이 없다고 하니 “그럼, 얼마 있냐?”라고 해서 “한 30원 정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 대답을 듣고 화를 내면서 “네가 무슨 빽이 있나 본데 내가 너 반드시 강원도로 보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할 말이 없어서 “예,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습니다.
드디어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 날, 그 사람이 나오더니 제일 먼저 제 군번과 이름을 불렀습니다. “OOOOOOOO, 박옥수!” “예!” “강원도 원주 통신훈련소!” 당시 통신학교가 대전에 있었는데 자리가 모자라 원주에도 통신훈련소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제가 그곳에 1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선후배 위계가 매우 엄격했는데 그곳에서 가장 고참이 되면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주 토요일 교육생이 입소할 때마다 내무반을 방문하여 주일예배에 그들을 초청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항상 하나님이 제 편에 계신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신훈련소 교육 장교님

당시 원주통신훈련소에는 예배당이 없어 골짜기 양지쪽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 본부에서 저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교수 본부로 가보니 훈련소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중위님이 “박 이병, 거기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장교들은 병사에게 반말하는데 교육 장교님이 저에게 높임말을 쓰니 제가 조금 놀랐습니다. “박 이병은 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예,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군대 와서 신앙과 멀어졌는데 예배를 인도하는 저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며 “내가 뭐 도울 일이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교육 장교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실 하나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좋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훈련 소장님과 예배당을 건축

어느 날 예배 중에 뒷문이 열리더니 훈련 소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주춤하니까 소장님이 “종교를 계속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설교를 마치자 소장님께서 앞으로 나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당시 보병 중대장이었던 소장님이 백마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참호를 순찰하는데 절망에 빠져있는 대부분의 병사들과 달리 한 병사가 무릎을 꿇고 웅얼웅얼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부대를 위해서도 기도해라.” “예, 알겠습니다.” 소장님이 다시 참호를 돌며 부하들에게 외쳤습니다. “하나님도 좋고 부처님, 용왕님도 좋다. 내일 전투를 위해 모두 기도해라!” 다음날 돌격 명령을 내렸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용감한 군인들을 본 적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날 부대는 가장 적은 희생으로 백마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부임해 보니 교회가 없어 많이 아쉬웠는데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을 줄 모르셨다며 함께 예배당을 짓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제일 낮은 이등병이었는데 훈련소의 가장 높은 소장님과 상의하며 함께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소장님이 통신훈련소에 계시는 동안 제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수료 후 통신훈련소에 배치

원주통신훈련소에서 통신 교육을 받으며 복음을 전했는데 수료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복음을 전하던 동기생 두 명과 함께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서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곳에 배치를 받으려면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했는데 우리 반에는 입대 전 사회에서 모스부호를 하던 사람들이 8명이나 있어서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수료식 날이 되어 그동안 저를 도와주셨던 교육 장교께 인사드리러 찾아갔습니다. “교육 장교님, 제가 오늘 교육을 수료합니다. 그동안 돌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의자에 앉아 봐요. 내가 박 일병을 수도경비사나 대구 502장통단에 보내려고 하다가 박 일병이 내 곁에 있으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남도록 해놨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이 일합시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훈련소 본부에서 저를 고시과에 배치하였는데 매주 시험 관리만 하면 별다른 할 일이 없어 복음 전하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막막하고 어려운 일 앞에서 단 한 번도 저를 외면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

오늘 읽은 사무엘상 14장 말씀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믿음이 없었지만, 요나단은 그의 친구인 다윗을 통해 믿음을 배웠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삼만, 마병이 육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는데 이스라엘 군대는 육백 명가량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굴과 수풀, 바위틈 등에 숨기에 바빴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공격해오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될 텐데 나라가 망하면 안 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 그래, 블레셋 부대에게로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거야.’ 그에게 소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하실까 하노라’

요나단은 자기 병기를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군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으로 가는 길은 이편, 저편이 다 험한 바위산이었습니다. 그 산으로 올라갈 때 적들이 긴 창으로 찌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형편 속에서 요나단이 병기 맡은 자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여러분,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 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일 때 요나단처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그 험한 바위산을 병기든 소년과 오르자 블레셋 군인들이 요나단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삼상 14:14~15) 이처럼 죄 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든지, 사업이 망해 절망 속에 있든지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요나단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갔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랍비

작년에 이스라엘에 가서 최고 랍비를 만났습니다. 면담 시간이 1시간 예정되어 있었는데 성경 말씀을 이야기하다 보니 4시간이 흘렀습니다. 같은 구약성경을 보면서도 그분과 제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랍비이시니까 율법(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에 보면 십계명을 다 지키면 제사장 나라가 되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데, 반대로 다 지키지 못하면 들어와도 저주, 나가도 저주, 떡 반죽 그릇이 저주, 우양의 새끼도 저주 모든 것이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으려면 십계명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온전히 율법을 지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우리를 저주 앞으로 이끄는 일을 합니다.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기고 나머지 아홉 가지를 다 지킨다고 복을 받습니까? 내가 오늘 도둑질하고 내일부터 도둑질 안 하면 복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십계명을 어긴 사람은 앞으로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멸망입니다. 제가 그분께 “랍비님은 그동안 율법을 잘 지켜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자신은 나름대로 잘 지켜왔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름대로’라는 말을 한 것은 자신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 언약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유다 집에 세워진 새 언약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1~32)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 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저주를 받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여전히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잡아다가 예수님 앞에 세웠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여러분, 이 여자에게 어떤 법이 필요합니까? 네, 바로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첫 언약을 기록할 때는 손가락으로 돌비석에 기록하셨는데 그 법 앞에 서면 이 여자는 사망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여자 앞에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쓰신 글은 무엇일까요? 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율법이 아닌 새 법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31장에서 말씀하신 새 언약입니다.

로마서에 기록된 ‘의’는

로마서에도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여러분,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새 언약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 우리는 똑같은데 율법 앞에 서면 저주이고, 예수님 앞에 서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1968년, 저는 군에서 제대한 후 김천으로 가서 복음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제게 현금 3천 원이 있었는데 그 돈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 김천으로 갔습니다. 알아보니 당시 김천 지역 전세가는 7만 원이었습니다. 군 생활 동안 경제 상황을 몰랐는데 제 돈으로는 전혀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김천 시내 거리를 걸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기에 양품점, 서점 또 다방도 있습니다. 세상의 신도 저들에게 건물을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저에게도 건물을 주십시오.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시 아무도 저를 도와주는 이가 없었지만, 하나님이 예배당 건물을 주시겠다는 믿음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김천으로 가서 방을 찾아보았습니다.

영국인 선교사를 만나

어느 날 김천에서 버스를 타고 압곡동으로 돌아가는데 한 영국인이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제 영어 실력이나 그분의 한국어 실력이나 비슷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영국에서 온 앤더슨 선교사입니다.” “지금 어디 가세요?” “여행 중입니다.” “전도 여행입니까?” “그냥 여행입니다.” 저는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냥 여행을 다닌다는 말에 화가 나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복음은 안 전하고 여행을 다닌다고요? 우리나라에 당신 같은 선교사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사람은 진짜 신사인지 제 이야기를 그냥 다 듣고 계셨습니다. 
저는 거창 버스터미널에 내려 압곡동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려고 매표소로 갔습니다. 앤더슨 선교사님이 제 곁으로 다가와 물었습니다. “미스터 박, 내가 오늘 당신 집에서 하룻밤만 자도 되겠습니까?” 제가 있는 곳이 산속이라 누추했지만, 같이 압곡동으로 갔습니다. 제가 사는 압곡동에는 수도 시설이 없어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냥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그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고생했습니다. 

1년 동안 같이 살기로

그 후로는 물을 끓여드렸는데 선교사님은 나흘 동안 우리 집에서 누워 계시다가 몸이 회복되신
5일째 되는 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수많은 목회자를 만나 보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일 년만 여기서 살면서 당신의 삶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약속을 합시다. 당신은 영국에서 선교비가 오지만 저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돈이 있어서 빵을 사서 먹을 때 굶고 있는 제게 빵을 하나라도 준다면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덜 하게 됩니다. 그러니 제가 아무리 굶더라도 음식을 주지 않기로 합시다.” 제 얘기를 들은 선교사님은 “그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라며 기뻐하며 우리 집을 나섰습니다.

어렵게 사는 것도 좋아

일주일 뒤에 선교사님이 압곡동으로 찾아왔습니다. “미스터 박, 김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돈을 주셨어요.” 저는 ‘하나님, 영국인이 기도하면 금방 들어주시고 제가 기도하면 왜 늦게 들어주십니까?’라고 생각하면서 그 돈으로 먼저 집을 얻으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께서는 집이 넓으니 같이 살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렇게 순간순간 저를 도우셨던 간증을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 생각을 다 버리게 하시고 오직 말씀만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려우면 어렵게 살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움은 여러분과 하나님을 더 가깝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역사하실 주를 믿어야

요나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예수님이 제 안에 역사하실 기회가 됐습니다. 저는 아무 한 것 없이 그냥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믿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날 이후부터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십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김천에 있을 때도, 대구에 있을 때도, 외국에 갈 때도,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한 번 두 번 하게 되면 ‘하나님이 정말 내게 역사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놀라운 삶을 살게 되시길 바랍니다.
 - 2023. 6. 25. 주일오전 예배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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