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주의 말씀을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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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주의 말씀을 따라야
[사무엘상 27장 1절 ~ 7절] 2023. 4. 23. 주일오전 예배설교 - 96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4.2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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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다윗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모르거나 하나님의 마음과 먼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만날 때 자신의 생각과 지혜로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립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삶에 찾아온 문제들을 하나님의 뜻과 마음으로 처리할 때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두 인물이 나옵니다. 한 명은 사울이고 다른 한 명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앙심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 인간적인 생각을 많이 포함시켰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러 갔지만 낮고 가치 없는 것들만 진멸하고 기름지고 좋은 것은 남겨두었습니다. 이것은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일 앞에서는 사울처럼 자기 생각을 보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레위기의 속죄 제사

저는 1962년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을 몰라서 매일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당시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그냥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늘 죄 속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레위기 4장을 읽는데 속죄 제사에 대한 말씀이 보였습니다. ‘여기에 이렇게 죄 사하는 방법이 정확히 있는데 왜 많은 목사님이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이야기를 안 하고 죄인이라고만 가르칠까?’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레위기 4장의 속죄 제사에는 제사장, 이스라엘 회중, 족장, 그리고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씻는 네 가지 제사법이 있습니다. 저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의 속죄 제사에 대해 자세히 읽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제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는 부분입니다. 보통 목사나 장로가 될 때 안수하는데 왜 염소에게 안수하는지 안수의 의미를 성경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안수의 의미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사 34:16)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가 짝이 되게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고 살게 하신 것처럼 성경 말씀에도 짝이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짝을 찾아 읽어보면 성경의 의미가 풀리게 됩니다. 
레위기 4장 29절에서 궁금했던 안수의 의미를 레위기 16장 21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죄가 염소에게 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해서 염소가 대신 죽기 전에 죄를 염소의 머리로 옮기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는 죄를 넘겨받은 염소가 죽을 때 그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

그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태복음 3장을 읽었습니다. 그곳에 레위기 16장 21절의 말씀과 짝을 이루는 것이 나왔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3~15)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셨고 그곳에서 요한은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달라고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를 이룬다는 것은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가 없는데 의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

전 세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회개해라 그러면 죄가 사해진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회개해서 죄가 사해지는 게 아니라 양이나 염소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사해지듯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이미 사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6장 21절의 말씀을 다시 봅시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한 뒤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죽인 짐승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릅니다. 예레미야 17장 1절을 보면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단 뿔에 새겨졌거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내가 도둑질했어. 거짓말했어’ 하며 마음판에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기록된 제단 뿔을 보십니다. 죄인이 죄를 씻기 위해 제사를 드리려고 번제단 앞으로 나아올 때 하나님은 죄가 기록된 제단 뿔을 보시고 “네가 도둑질했지” 하며 그 죄를 다 아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어린 양이 죽고 그 피를 들고 번제단 뿔에 발라 죄의 기록을 다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의 그림자입니다. 

새 언약이 필요한 이유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여자를 잡아다가 예수님 앞에 세웠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나와 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이 여자 앞에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손가락으로 십계명 율법을 돌판에 쓰셨는데 그것은 첫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났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 이 말씀에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은 바로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여 파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율법이 아닌 새 언약(New Covenant)이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 언약인 ‘새언약’

첫 번째 언약 십계명은 지키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 언약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언약은 하나님이 바꾼 새 언약으로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입니다. 여기서 ‘내가’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죄를 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죄를 사했습니까? 우리 죄를 예수님의 머리 위로 넘겨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오늘날 십계명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다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가 영원히 씻어진 것입니다. 

회개는 죄 사함을 받는 과정

아직도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지키면 복 받는다고 하고,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합니다. 회개는 죄 사함을 받는 과정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회개밖에 없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찬송가에도 있듯이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씻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앞에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 얼마나 놀랍습니까?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종종 “우리가 죄인이지 어떻게 의로워?”라며 우리 선교회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착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충성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모든 죄를 다 사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못 사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실패했다는 말이 됩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

오늘 우리는 사울과 다윗에 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조금 보탰습니다.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면서 ‘이 소와 양은 튼튼하고 너무 이쁜데. 이것은 참 쓸모가 많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아말렉의 기름지고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진멸했습니다. 사울의 기준이 하나님과 달라진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은 우리는 모두 저주와 사망 아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이건 내가 잘했어. 난 이건 남들보다 나아’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에 잘생긴 소, 기름진 양은 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정하셨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난 후

사울은 불행하게도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고 그를 죽이면 자신의 왕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쫓아다니게 됩니다. 사무엘상 27장 1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다가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삼상 27:1)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사무엘상 28장 1절을 보면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다윗이 있어서 번번이 패하게 됩니다. 블레셋이 키가 3m나 되는 골리앗을 보내도 다윗이 물 맷돌 하나로 이겨버리니 다윗이 있는 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 1절에 나오는 ‘그때’는 바로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난 때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다윗이 없었습니다. 이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서 크게 이기고 사울과 그 아들들은 길보아 산에서 모두 죽게 됩니다.

사울이 멸망한 이유는

여러분, 사울이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다윗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피하게 되었고, 그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온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정말 놀랍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 결국 자신을 해하는 결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죽고 사울도 활에 맞아 중상을 당한 후 결국 자기 칼 위에 스스로 엎드려 죽게 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단에게 속으면 사울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일이며 사울처럼 결국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면 자기 왕위를 지킬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결국 그와 온 가족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여러분, 사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우리 가운데 사울처럼 인간의 방법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방법을 쓸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대신해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사울은 어리석게 다윗을 죽이면 자신의 왕위가 유지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참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깊이 모르기 때문에 사울처럼 자기를 지키려고 인간의 방법으로 흘러가면서 교회나 말씀과 멀어지고 결국 망하는 것을 봅니다.

내 방법이 무익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 방법이 무익한 것을 알기에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이 저를 알고 지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단은 사울에게 어리석은 생각을 받아들이게 해서 그를 멸망케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성경을 잘 모르면 어리석게 인간의 방법을 찾아갑니다. 그것은 우리를 멸망케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속에 세워질 때 행복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사단에게 속아서 교회를 떠나거나 대적하는 사람이 됩니다. 진정 우리를 위하는 것은 복음을 위하고 주님과 교회를 위하는 일입니다. 저는 잘한 것 없이 사람들에게 복음만 전하고 교회를 위해 일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천 가지 만 가지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여러분, 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주일예배 한 번 빠져도 괜찮아. 친구들이랑 술 한 잔 마시는 게 어때.’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인간의 방법을 쓰거나 육신을 따라가는 것이 잘되고 복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교회와 마음을 같이 해서 복음을 위해 살고 주님을 섬기면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제 생애 어려움이 많았는데 주님이 한 번도 저를 잊지 않고 도우시며 지켜주셨습니다. 저도 부족하고 실수할 때가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제가 복음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살면서 인간 방법으로 부유해지거나 나를 높이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인간의 방법을 버려야

여러분, 인간의 방법을 버리십시오. 유혹을 버리십시오. 사울이 ‘다윗만 죽이면 내가 왕위를 다시 뺏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든지 다윗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단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다윗아. 이리 와라. 하나님이 너를 왕으로 세우시는구나. 지금 내가 왕이지만 네가 곧 왕이 될 거야. 앞으로 너를 위할 테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그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도 사단에게 종종 속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면 모든 일이 축복되겠지만 인간의 방법을 쓰면 쓸수록 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는데 사울이 하나님을 이기고 왕위를 뺏으려다가 사울도 그 아들들도 전부 패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사단이 주는 인간의 유혹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주님을 섬기고 주를 기쁘게 할 때 가장 안전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자신을 높이려 하지 말고 주님을 높이십시오. 너무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23. 4. 23. 주일오전 예배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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