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수많은 은혜와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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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수많은 은혜와 축복이
[사도행전 9장 1절~22절 - 2023. 3.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5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3.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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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삶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 들은 헨델의 메시아 찬송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곡인데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연주해서 더 의미가 깊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9장의 사도 바울에 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음 전하게 하려고 어머니 태로부터 택정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사울은 사단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핍박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어느 날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잡아 오려고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그를 비추어 앞을 못 보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다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이후

저는 구원받은 지 60여 년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장로교회를 다니면서 선하게 살고 율법을 지켜보려고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가난 속에서 도둑질과 거짓말을 하다 보니 죄가 많아져서 제가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옥 가기는 너무 싫었고 죄를 지을 때마다 부끄럽고 고통스러워서 새벽마다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습니다. 저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삶을 반복하면서 성경을 계속 읽다가 1962년 10월 7일 처음으로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성가대 연습이 있었는데 하루는 제가 연습을 마치고 앞에 나가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가량 지나자 교회에서 점점 저를 따돌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박옥수 선생은 주일에 차를 탔기 때문에 수찬정지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사님께 “목사님, 수찬정지가 뭡니까?”라고 묻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장로님이나 목사님도 다 죄인이라고 하는데 저 혼자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 당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죄 사함 받을 수 있는가를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교회 장로님의 소개로 저는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선교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

영국의 웩(WEC)선교회 회장이었던 ‘놀만 그랍(Norman P. Grubb)’은 1950년대 중반 일본 도쿄(東京)에 왔다가 우연히 공항에서 세계청소년선교 전도자를 만나 그의 권유로 한국에 들렀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한국은 6·25전쟁 이후 영적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거듭나 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한국 선교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만 그랍이 약 3천 명 모인 대구 주암산기도원 집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 교인들이 대부분 졸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상해서 다음 시간에 그는 “여러분 가운데 확실하게 거듭난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저녁마다 산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서너 명만이 손을 들었다가 눈치를 보며 내렸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영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외국 선교사와 만남

놀만 그랍 회장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을 다녀간 이후 한국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웩 선교회의 선교학생으로 훈련 중이던 케이스 글라스(Kays Glass, 한국 이름 길기수)의 구원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없는 교회에서 고통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다 구원받은 케이스 글라스를 한국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케이스 글라스는 네팔로 선교를 가기 위해 비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비자 신청이  거부당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뒤 케이스 글라스는 웩 선교회의 첫 번째 한국선교사로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북 선산의 한 작은 장로교회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영어도 가르치셔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분과 교회에서도 만나며 가까워졌습니다.

선교학교에 입학하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전도하려고 전단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오늘 시장에 전도하러 갈 때 따라가도 됩니까?” 그분이 가만히 계시다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예? 죄 사함이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겠습니까?” 그때 저는 난생처음 받은 질문으로 제 신앙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을 통해 저의 모든 죄가 씻어진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니던 교회에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가 따돌림을 당하던 중, 선교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선교학교는 당시 행위에 매이고 교파와 교리 위주의 한국교회 실태를 안타까워하던 거듭난 선교사들이 한국인 전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들은 선교학교를 열고 학생들을 모아 신앙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저는 선교학교를 졸업한 후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압곡동과 장팔리에서 사역했는데 정말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저를 지키시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군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전역하고 김천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를 스물다섯 개 교회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충북 보은장로교회 장로님의 따님이 구원받게 되면서 얼마 후 그 교회에서 저를 부흥회 강사로 초청해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첫날 저녁부터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해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진천감리교회, 성주이곡교회, 산청생초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저를 강사로 초청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집회를 통해 정말 많은 사람이 구원받아 행복했습니다. 특히 보은장로교회는 제가 대전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좋아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죄 사함을 받았어도 구원받지 않은 목회자 밑에서는 신앙이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신앙훈련

1971년 결혼을 한 저는 대구 파동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25명 정도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선교학교 운영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외삼촌이신 임영빈 박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 대한성서공회 설립자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제 이야기를 듣더니 “자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너무 좋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함께하고 싶지만 나이가 많아서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네. 나는 뒤에서 자넬 돕겠네” 하시면서 서재에서 신학 관련 원서들을 한아름 챙겨주셨습니다.
교회로 돌아와서 막상 선교학교를 시작하려고 보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 선교학교 운영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1976년에 제1회 선교학교 학생으로 여학생 두 명, 남학생 세 명, 총 다섯 명이 입학했습니다. 한국에서 거듭난 사람만 모아서 신앙훈련을 하는 선교학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개교 47년이 된 선교학교

올해 선교학교를 시작한 지 47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교학교를 통해 수많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전 세계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교지를 다녀보면 다양한 단체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 기쁜소식선교회의 거듭난 선교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선교회 선교사님들은 주님과 복음만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고 믿음으로 달려가면서 그들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 목회자들이 우리 선교사들을 만나 말씀을 들으면 모두 깜짝 놀라 함께 일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수많은 미국 목회자가 우리 선교회와 교류하며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선교사님들이 인도 현지 목회자와 함께 집회를 열어 제가 10만 명이 모인 가운데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아프리카 6개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출국합니다. 4월에는 미국에서 집회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서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놀랍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은 로마 시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 전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이 쓴 로마서를 보면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로마에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죄수가 되어 로마의 황제에게 재판받는 형식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한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자신이 핍박했던 그 복음을 위해 감옥에도 가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몸을 지키려 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서 종종 핍박과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그 어려움 앞에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복음으로 힘있게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을 생각하면 참 감사합니다. 선교사님들은 해외에서 선교하시고, 한국에 있는 우리는 주일 예배 마치고 전도지를 들고 나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길 바랍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에 놀랍게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업의 어려움을 겪다가

예전에 한 자매님이 저에게 “목사님, 제 친한 언니가 있는데 한번 만나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만나게 된 분이 구원받고 지금은 복음의 일을 하고 있는 김 자매님입니다. 과거에 그분은 부산에서 의상 디자인을 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 어린 딸을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혼해서 혼자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가까이 지내던 점쟁이가 딸과 떨어져 있어야 좋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딸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얼마 후에는 사업을 도와주고 있는 친정 엄마와 친정 오빠도 내보내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해서 내보내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혼자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고민하는데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 힘들지? 이제는 좀 쉬어도 돼. 딸은 엄마가 잘 키워주실 거야. 창가로 가.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뛰어내려. 사람은 어차피 죽어. 죽으면 편안해. 다 끝나.’ 그 부인이 아파트 38층에 살고 있었는데 만약 그날 자신이 신경안정제나 술을 마셨다면 분명 뛰어내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밤중에 그 부인은 무서워서 정신과 상담전문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는데 때마침 우리 교회 자매님과 통화하게 되면서 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영에서 벗어나 

그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악한 영이 그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것이 분명히 보여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부인은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나중에 천천히 믿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악한 영이 그 부인을 죽이려고 계획적으로 남편, 딸, 친정엄마와 오빠까지 모두 멀어지게 했습니다. 주변에 누가 가까이 있으면 자살하지 못하니까 그 부인 주변에 아무도 없게 해서 자살하도록 이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예수님 믿으셔야 합니다!” 그날 그 부인이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구원받고 부산으로 돌아가는데 악한 영이 ‘넌 조상신을 버렸어. 네 딸이 사고를 당할 거야’라는 생각을 주어서 괴로웠는데 ‘아니야,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이 내게 그렇게 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하자 평안했다고 합니다. 그 부인이 이제 서울에 올라와 딸과 함께 복음의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

여러분, 이것은 전쟁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사단은 한 사람이라도 빼앗아서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해 복음을 방해하는 일을 합니다. 이 전쟁은 정말 치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담대히 일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복음의 문을 활짝 여실 것입니다. 우리 선교학교를 나온 선교사님들은 외형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귀하게 복음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전 세계로 복음 전하는 일을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 하늘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사단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도 구원받은 우리가 그냥 어영부영 살면서 세상에 빠지고 육신을 따라가도록 만듭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모든 일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건강을 주신 이유

저는 자주 해외에 나가는데 잠자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나라 시각에 맞추어 밤낮없이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렇게 살았는데 아주 건강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머리카락도 희고 주름살도 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주셨습니다. ‘그래,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자. 내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겠나?’ 하고 저는 막 뛰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전부 전도지 들고 날만 새면 집을 나서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주시겠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하고 복되게 살 수 있는 이유도 매일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

여러분, 이제 우리의 남은 생을 복음을 위해 살게 되길 바랍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입을 열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이야기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훨씬 더 건강해지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위장이 안 좋아서 고생했고, 심장이 안 좋아서 어려웠는데 하나님은 다 고쳐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할 때 많은 대적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이 다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 온 도시를 복음으로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생각하며 직장에 다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을 마음에 두고 살아봅시다. “나는 나이가 많고 늙었어. 복음도 못 전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몸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아프지만 일어나서 복음을 전해 보십시오. 어느 순간 병이 다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까? 복음을 위해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을 천 가지, 만 가지로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23. 3.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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