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 자신의 생각을 좇은 사울왕의 비참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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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앞에 자신의 생각을 좇은 사울왕의 비참한 최후 
[사무엘상 15장 10절~11절 ] 2023. 2.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5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2.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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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울왕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무엘상 15장 10절과 11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사울은 아주 키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품위도 있고 정말 다방면으로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도둑질을 했다거나 다른 어떤 죄를 지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후 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며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 사람을 다 죽이라! 짐승을 다 죽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정확하게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라며 사람을 3가지로 나누고, ‘우양과 약대와 나귀’라며 짐승을 3가지로 나누어 총 6가지로 나누면서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진멸하러 갔다가 자기 생각대로 했습니다.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15:9) 이 말씀처럼 사울은 모든 아말렉에 속한 것을 진멸했으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의 좋은 것은 남겼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 했지만

여러분,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인간에게 먹도록 유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아닌 사단의 지혜를 인간이 사용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긴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말씀하시면서 ‘남녀’, ‘소아’, ‘젖먹는 아이’와 ‘우양’, ‘약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멸하라고 하신 종류가 총 6가지 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숫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6이란 숫자는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6가지를 멸하라는 것은 말그대로 6가지를 모두 멸하라는 말이지만 인간적인 것을 다 멸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이 볼 때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는 것은 멸한 후 남긴 것들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제사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생각이었습니다. 

춥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제가 어렸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와 형님은 전쟁에 참여해서 집에 어른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큰 누님이 열다섯 살, 작은 누님이 열세 살, 동생이 네 살, 저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저희는 참 많이 굶었습니다. 겨울은 무척 추웠는데 난방도 제대로 못하니까 자고 일어나면 거리에 얼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습니다. 그리고 굶어죽은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저는 열다섯 살 정도 되면서부터 남의 밭에 들어가 밀을 꺾어 먹거나 사과를 서리하는 등 도둑질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이렇게 매일 죄를 짓게 되니까 분명히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씻고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서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 목사님께서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해서 계속 회개했지만 여전히 죄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부터 자세히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에 대해 기록된 말씀이 보였습니다.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에서는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은 성경과 달랐습니다. 
속죄제사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둘째,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셋째,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저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의 속죄제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성경을 보면 염소를 끌고 간 후 그 머리에 안수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이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될 때 안수를 받던데 왜 염소가 안수를 받지?’ 하며 저는 안수의 의미를 알기 위해 성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짝이 있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가 짝이 되게 하신 것처럼 성경 말씀에도 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짝을 찾아서 읽어보면 성경의 의미가 풀립니다. 레위기 4장 29절에는 안수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레위기 16장 21절에는 그동안 궁금했던 안수하는 의미가 정확히 나왔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여기 말씀을 보니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죄가 염소에게 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염소에게 넘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넘겨받은 염소가 죽을 때 그 죄가 사해지는 것이 바로 구약 성경의 속죄제사입니다. 속죄제사에서 대속물이 되는 그 양이나 염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저는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서 죄 사함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을 남기고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있고 인간에게는 생각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인간의 지혜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생각이 신앙의 길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불러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을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에 좋은 것과 가치 있는 것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해도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판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더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도 참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달라서 우리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아말렉을 치러 가서 아말렉에게 속한 모든 것을 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아 두었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을 남겼다가 하나님께 제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인간의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생각이 좋아 보이면 그것을 그냥 따라갑니다. 

큰 죄악에 빠진 다윗

어느 날부터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왕궁 지붕 위를 거닐었습니다.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이 보였는데 그 여자가 무척 아름다왔습니다. 그 여인은 왕궁 아래 사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밧세바가 다윗이 왕궁 지붕 위를 거닐 시간에 맞춰서 담 밑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한 것입니다. 제 추측에는 남편이 군에 있어 남자 생각이 나서 다윗을 유혹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신하에게 그 여자를 데려오라 한 후 동침을 했습니다. 얼마 후 그 여자는 임신을 했다고 연락했습니다. 다윗은 그 여자와 같이 하룻밤 잔 것 뿐인데 임신을 했다는 소식에 심각해졌습니다. 궁리 끝에 요압 군대장관을 시켜 그 여자의 남편 우리아를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그에게 군사의 안부와 전쟁이 어떠한지를 묻고 이왕 이곳에 왔으니 집에서 며칠 쉬었다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아는 아주 충성된 사람이라서 다른 병사들이 전쟁 중이기 때문에 자기만 집에서 편히 쉴 수 없어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다윗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결국 우리아 손에 군대장관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를 쥐어주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우리아는 맹렬한 전투에서 적군의 칼에 맞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후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큰 책망을 들었으며 그일로 말미암아 일생동안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일을 통해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을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그럴 때가 있었지만 그 일 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다윗이 인간적인 생각을 하거나 교만한 생각을 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다윗은 ‘나는 단순히 마음에 드는 여자와 하룻밤을 지내면 좋을 거라는 내 생각을 따라갔는데 결국 큰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어’라고 생각하며 자기 생각을 따라갔던 일이 너무나 지긋지긋하고 싫어서 말씀만 좇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이런 일이 없었다면 다른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인간적인 생각에 이끌려 얼마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일을 통해 자기 생각을 따라갔을 때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울
 
하지만 사울은 달랐습니다.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출중했고 성실했기 때문에 자신의 악을 발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각 왕은 살려두면 써먹을 데가 있겠다. 기름진 양과 소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좋겠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이것쯤은 괜찮겠지’라며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습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입니다. 사단은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종종 그 선악과의 지혜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따라간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자기 생각을 따라가지 않았을 텐데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자기 생각을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장인인 라반이 결혼식 날 몰래 첫째 딸 레아를 야곱에게 들여보냅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닌 레아가 자기 곁에 있어서 라반에게 따집니다. 그러자 라반이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하며 칠 일 후에 라헬을 줄 테니 칠 년을 더 봉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게 됩니다.
문제는 야곱이 사랑한 라헬은 아기가 없었는데 레아는 자녀를 잘 낳았습니다. 레아가 첫아들을 낳자 너무나 기뻐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은 아기를 갖지 못하자 여종을 통해 야곱에게 자녀를 얻게 했습니다. 그러다 늦게 라헬도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헬은 아이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는데 요셉은 ‘더함’이라는 뜻으로 라헬이 아이를 더 갖기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몇 년 후 라헬의 바람대로 또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출산 때가 되었는데 야곱 가족들이 벧엘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라 라헬이 난산을 하게 되면서 아이를 낳고 죽었습니다. 라헬이 죽으면서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고 지었는데 야곱이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다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요셉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엄마가 있어서 어디 갔다가 돌아오면 엄마가 씻겨 주고 챙겨 주는데 요셉은 그런 엄마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엄마가 너무나 그리웠을 것입니다. 저도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손톱을 깎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손톱깎이가 있는 집이 드물어 가위로 손톱을 잘랐습니다. 제가 오른손잡이라 왼손 손톱은 자를 수 있는데 오른손은 아무리 해보려 해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왼손 손톱만 깍은 상태로 등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손톱 검사를 하시는데 제 손을 보시더니 “넌 왜 왼손만 깎고 오른손은 그대로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오른손잡이라 왼손으로는 가위질이 안 되어 못 깎았습니다”라고 하자 선생님께서 “그럴 땐 엄마보고 깎아달라고 하면 되지. 다음부터는 엄마에게 부탁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엄마가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엄마가 너무나 그리웠던 기억이 납니다. 요셉은 엄마가 없어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외롭게 자랐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으로는 요셉의 삶이 불행한 것처럼 보였지만 대신 그는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나라를 살리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하나님이 제 인생에도 많은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려서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굶기도 했는데 그것이 꼭 나쁜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재앙과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자기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내 생각을 보태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었지만 자신을 낮출 수 있었고 평생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겸비한 삶으로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나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 우리가 가진 인간적인 생각을 다 뽑아 버리십니다. 평소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 어느 날 사울처럼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큰 죄를 짓고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하나님 앞에 다윗을 겸비케 해서 죽을 때까지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울은 자기 생각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 사울을 향해 하나님이 너무 섭섭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사울을 버렸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는 어려움이 없는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문제와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자기 생각을 따라 그대로 흘러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사울처럼 되지 않길 바랍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일꾼이 되십시오.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뛰어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사는 귀한 일꾼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마음껏 역사하시는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23. 2.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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