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동포법’ 개정 요구가 계속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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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동포법’ 개정 요구가 계속되는 이유는?
줌인 일제강점기 한국인 4~6만명 사할린 이주 종전 이후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 정착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2.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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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최근 사할린동포들을 중심으로 ‘사할린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할린동포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할린동포 2세 이수진(남, 81) 씨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망국의 한(恨)이 서린 사할린동포들의 역사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얼마 전 어느 언론사 유튜브 채널에 사할린 동포 1세 박화자(102)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박화자 할머니는 현재 가족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지만 아리랑만은 또렷하게 부른다는 것이 딸 박점이(72) 씨의 말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 위치한 사할린은 남한 면적 3분의 2에 달하는 큰 섬(72,492㎢)이다. 현재 약 50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약 2만 6천명이 우리 사할린동포다. 사할린동포들의 역사는 망국의 한이 서린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사할린 절반에 달하는 영토의 지배권을 가져왔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는 일본이 사할린 전체를 사실상 지배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사할린의 풍부한 목재와 광물을 전쟁물자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척박한 땅으로의 이주를 꺼려했고, 일본은 당시 식민 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켰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국인은 약 4~6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전하자 사할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일본과 한국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한 채 사할린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故송해 선생님과 함께(왼쪽이 이수진 씨) | 이수진 씨의 빛바랜 가족사진

사할린→日군함도, 3000여명 이중징용 당하기도 

기자는 지난 주말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 중인 사할린동포 2세 이수진 씨를 만났다. 2011년 아내와 함께 영주 귀국한 그는 과거 러시아 국영전력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으며 사할린 한인 이산가족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러우전쟁의 여파로 하늘길과 바닷길이 막혀 사할린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국민들 중에서 러우전쟁의 실상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 정부의 통제가 심하고 아직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지역이 많기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수진 씨에게 어린시절 사할린동포 1세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1944년 일본으로부터 이중징용을 당해 사할린에서 일본 하시마 탄광(군함도)으로 끌려갔다.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는데, 아버지는 도둑 배를 타고 몰래 탈출 우여곡절 끝에 사할린으로 돌아왔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 이수진 씨 아버지처럼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으로 이중징용을 당한 사할린동포는 30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조사된 바가 없다.
 

이수진 씨(왼쪽 세번째)와 사할린동포들

사할린동포의 후손 범위 확대 필요

이수진 씨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남은 여생을 고국에서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몸이 아플 때 언제든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아직 자신에게는 두 가지 바람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첫번째는 사할린동포법 개정이고 
▲두번째는 사할린동포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마련이었다.
현행 사할린동포법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하였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만이 사할린동포로 인정받아 동반가족 영주귀국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사할린 한인이라도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사할린동포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처럼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사할린동포를 규정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 맞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이수진 씨를 포함한 사할린동포들의 주장이다. 
역사학자 임용한(61) 박사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4408명, 2021년에는 334명의 사할린동포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토 및 국민 보호는 국가의 의무이다. 과거 국가가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그들에게 이제라도 우리가 힘과 성원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인구위기를 타계할 방법의 일환으로 사할린동포를 포함한 750만명의 재외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문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강민수 차장대우 mska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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