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이 예수님께 속해 있는가 세상 편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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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예수님께 속해 있는가 세상 편에 있는가
2007.6.24 주일 낮 설교 (요약) - 16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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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부르는 찬송

어제 저녁 춘천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원인 조은혜 자매의 독창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독창회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창단된 후 네 번째로 갖는 것인데, 독창회를 가진 형제 자매들이 그 후로 음악의 세계도 깊어지고 마음도 넓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은혜 자매는 중학교 2학년 때 구원을 받고 그동안 성악 공부를 해오다가 몇 년 전 러시아의 ‘라리사’라는 성악교수를 만난 뒤에 잠재돼 있는 음악성이 계발되면서 굉장히 놀랍게 변했답니다.
한번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전도여행을 갔을 때 러시아 정교회 소속의 예배당을 들러봤습니다. 금으로 찬란하게 꾸며 놓은 예배당 안에서 저같은 관광객들만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데, 중간 중간 어디선가 들리는 성가대 노래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천장 뒤에 성가대 자리가 있는데, 국립음악원 학생들을 돈을 주고 데려와 노래를 부르게 한답니다.
그런데 그 성가대의 찬송과 어제 독창회에서 들은 노래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참 많지만 주님 앞에 감사해서 부르는 노래와 돈을 받고 부르는 노래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

참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오늘 에스더서를 읽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제가 에스더서를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에스더 1장부터 ‘하나님’이란 단어를 찾아봤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이 구절에서도 금식했다는 단어는 있는데,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이 구절 속에서 살아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주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성경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을 죽이려는 모략

또, 에스더서는 전쟁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에 3:1)
하만이 지위가 굉장히 높아지면서부터 그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꿇어 절하지 않는다고 그를 괘씸하게 여겼는데, 그가 유다인인 걸 알고는 그만 죽이는 게 경하다면서 모든 유다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왕이여 우리 나라에 한 민족이 있는데 무익하니까 죽이소서. 그러면 그 일에 필요한 재정 일만 달란트를 제가 국고에 내겠습니다”라고 왕에게 말하자, 왕이 자기의 인장반지를 하만에게 주었습니다.
인장반지는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찍는 도장과 같은 반지인데, 그것으로 한 번 찍으면 어느 누구도, 왕이라도 그 문서를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만이 조서를 쓰고 왕의 인장반지로 인을 쳤습니다. 이제 아하수에로왕이 다스리는 전국 127도에 이 조서가 법으로 공포되었습니다.

그에 맞선 모르드개

하만과 다른 또 하나의 세력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입니다. 3장의 유다인을 전부 죽이라는 공문은 왕의 어인을 찍어서 공포한 것으로, 왕 자신도 변경할 수 없는데, 그 법에 의해서 유다인은 12월 13일 다 죽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죽어가는 유다인을 살리기 위해 하만에 맞서 싸우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신앙의 세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그 나라의 왕비이지만 유다인이니까 모르드개가 “너는 왕 앞에 나아가서 왕에게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이야기를 하라”며 에스더에게 시켰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이 나라 법에는 왕이 부르지 않는데 왕궁에 나아가면 누구든지 죽인다. 왕이 금홀을 내밀면 죽지 않지만 내가 왕에게 부름을 받고 나가지 못한 지가 30일이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회답합니다.

말석에 있는 나를 높이시고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단계를 넘을 때마다 하나님이 한없는 복을 주셨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너희가 잔칫집에 가거든 말석에 앉아라. 네가 상석에 앉았다가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왔을 때 너를 청한 사람이 자리를 그에게 내어 주라고 하면 네가 부끄러워하면서 말석에 가지 않겠느냐? 차라리 네가 말석에 앉아라. 그러면 주인이 와서 올라앉으라고 할 테니 큰 영광이 되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보다 잘되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내가 제일 밑바닥에 있으면 주님이 나를 끌어올리겠구나! 이게 주님의 마음이구나!’제 방법은 제가 남들 위에 올라가야 잘될 것 같았지만, 주님의 방법은 제가 말석에 앉으면 주님이 저를 높이는 것임을 그날 정확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 방법보다 주님의 방법이 옳기 때문에 내 방법을 버리고 주님의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으로 말석에 앉았고 주님이 정말 저를 높이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싶지 않아

제가 장팔리에서 사역했을 때, 물질적으로 아주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대구에 가야 하는데 돈 한푼 없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우리 교회 재정을 맡은 형제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 형제님 집에 가서 여비 좀 달라고 이야기해볼까? 아니야, 그건 안 돼.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혹시 그 형제 집 근처로 지나가면, 그 형제가 나를 보고 불러서 대구 갈 여비를 주지 않을까?’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한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돈 있는 형제 쳐다보고 살기는 싫습니다. 하나님, 대구 못 가더라도  지금부터 사람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제 마음의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형제 집을 피하여 둘러서 갔습니다.
걸어 가다가 대구 가는 버스가 와서 제 앞에 서기에 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이, 모르겠다’ 하고 얼른 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우리 교회 자매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박 전도사, 빨리 와요” 하며 버스비를 내주시고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가진 돈을 친정어머니에게 드리려다 자기도 모르게 다시 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제가 대구 가려고 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하나님이 박 전도사 여비 주라고 그랬구나’ 싶어서 차를 세웠다는 겁니다. 그날 그 형제님 집에 들렀다면 하나님이 저를 위해 준비한 버스는 그냥 지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어렵고 힘들고 가난해도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거나 가난하다고 암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에스더를 읽어보면 두 개의 큰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만으로 그는 죽이는 일을 합니다.  사람이 지위를 가지면 그 마음이 이상한 힘에 끌려 다닙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공산주의 낙원을 만든다면서 약 2백만 명을 학살하여 지금도 캄보디아에는 가는 곳마다 해골로 쌓여 있습니다. 공산주의자가 가장 무서운 것은 낙원에 대한 이상에 젖어 자본주의 때문에 낙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욕망을 이루려다 보면 그 나라는 다 망해버립니다.
스탈린이 공산주의를 시작하려고 할 때, 수백만 명이 기근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는 나무를 베지 않고는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이 정도의 희생 없이는 낙원을 이룰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중국 대륙으로 진출할 때 그들은 마치 전세계를 장악할 것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진주만에서 아리조나 호를 폭파시켰지만 자신들은 결국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을 맞아 십만 명이 그 자리에서 다 죽었습니다. 너무 무서운 일인데 인간들은 정권을 잡고 힘을 얻으면 그렇게 흘러가 버립니다.
여러분이 권력을 잡았을지라도 냉정을 찾을 수 있는 상태, 돈이 많아도 검소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들에게는 무서운 일을 할 수 있는 독성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돈이 없고 권력이 없고 힘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 왕이 된다거나 여러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형편이 된다면 여러분 속에서 나오는 악은 정말 무서운 악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이 인간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모르드개

에스더에는 또 하나의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 쓰고 있는 모르드개의 힘입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에스더는 왕궁에 사는 왕비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 줄 몰랐는데 자기를 지금까지 길러준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에스더가 궁중에 들어올 수 있도록 옷을 보냈지만 그는 옷을 안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12월 13일, 유다인들을 다 멸하기로 하만이 조서를 써서 붙였다. 왕의 어인도 찍었다. 그러니까 너는 왕 앞에 나아가서 유다인을 살려달라고 구해라”는 말을 에스더에게 전했습니다.
에스더가 “이 나라의 법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을 때 왕에게 나아갔다가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내가 왕에게 부름 받고 나가지 못한 지가 벌써 30일이 되었는데 어떻게 왕 앞에 나갈 수 있으랴?”고 전했습니다.
이에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단의 힘 vs 하나님의 힘

지금 에스더는 유다인이지만 왕궁에 있는 왕비니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도 없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과 하나 되어서 유다인을 살리기 위하여 왕에게 이야기한다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면 누구든지 죽이니까 왕에게 나갔다가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아 죽게 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비하게도 두 가지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하나는 마지막에 멸망받을 사단의 힘이고 하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를 속여서 하나님 편에 서면 망할 것 같고 사단 편에 서면 잘될 것처럼 믿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마음에서 정확한 선을 긋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궁에 있는 나를  누가 죽이랴? 내가 유다인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하며 그냥 그대로 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정확하게 “이 때에 만일 네가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께 속했는가?

여러분, 이것은 여러분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교회 나가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신앙은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과 하나인지, 세상과 하나인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살아왔던 인생이 너무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실패뿐인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저는 말씀을 배우면서 예수님 편에 섰습니다. 제가 예수 편에 설 때마다 예수님이 저를 주관하시면서 모든 일을 은혜롭게 이끌어가시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냥 부담 없이 교회 와서 말씀 들으면서 ‘오늘 말씀이 은혜로웠어. 이렇게 지내면 되겠지’ 하면 안 됩니다. 위로를 받으러 교회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 편에 속하지 않으면 자연히 아하수에로왕 편이 되고, 아하수에로왕이 하만과 가까우니까 자연히 하만의 편이 됩니다. 분명히 모르드개는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며 에스더에게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부담을 넘지 않으려면 박쥐 같은 신앙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가면 세상 사람이 되고 교회에 오면 교회 사람이 됩니다. 사단은 형편을 보면서 적당히 사는 게 평안한 것처럼 보이도록 속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편에 정확하게 옮겨져 있으면 그때부터 여러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내 방법을 버리면

하나님은 저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천 가지 만 가지로 저를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사단은 에스더가 ‘왕에게 나가도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는데…. 내가 유다인에게 속하면 위험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정확하게 하나님 편에 서면 교회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달라집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여 내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해도 예수님과 하나가 아니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아니면 교회가 마음에 들면 교회에 속하고 교회가 마음에 안 들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 되면 교회가 내 모든 것이 되고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 전부를 하나님이 맡아서 주관하실 때 여러분은 가장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내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내 전부를 맡기면 여러분의 노후, 건강, 자녀, 가정 등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하게 주관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이 악한 세상에서 자기를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 선 에스더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그러면 모르드개 당신은 수산 궁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아 사흘 동안 밤낮 금식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소서. 나도 내 궁녀로 더불어 삼일 동안 금식한 후 왕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면서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위험해 보이고 유다인 편에 서면 죽을 것 같았는데 에스더가 사흘 금식한 뒤에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왕이 어전에서 정문을 바라보고 앉았다가 깜짝 놀라며 에스더를 향해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 소청이 무엇이뇨? 나라 절반이라도 주겠노라.”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은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멸망을 당한 하만

하만은 왕비 에스더가 잔치에 자기만 초대했다고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절을 안 해서 기분이 상해 모르드개를 달려고 50규빗 되는 장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안 와서 궁중일기를 보니까 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죽이려고 했는데 모르드개가 살려 줬던 내용이 나왔습니다.
‘아. 그때 내가 죽을 뻔했는데 모르드개가 살려 줬지.’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모르드개에게 무슨 존귀와 관작을 베풀었느냐?”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무슨 상을 주면 좋을까? 밖에 누가 있느냐?” “하만이 있습니다.” “내가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만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며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왕관을 씌우고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성중에 두루 다니면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하기를 원한다고 외치도록 하십시오” 하자, 왕이 하만에게 “네가 한 말 그대로 모르드개에게 가서 옷 입혀서 그렇게 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려고 만들어 놓은 장대에 하만이 달려 멸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속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길 때

저는 제게 있는 모든 것을 주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주의 모든 것이 제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돈 쓸 일이 참 많고 어려울 때는 부담 없이 헌금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주를 사랑하면 자기 쓸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마음을 배워 주의 것이 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 내 방법으로 나를 지키고 세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주를 못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렸을 때 주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돌보시고 이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오늘 아침 마음을 정하셔서 여러분 자신을 전부 주에게 맡기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것이 주의 일이 되므로 주님이 매우 복되고 은혜롭게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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