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어야 하는 탈북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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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어야 하는 탈북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기획 [기획특집] 탈북 후 한국에 뿌리내린 이애란 박사의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1.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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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출처/ 이애란tv 캡처 (중)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전통 북한식 레스토랑 능라밥상
(하)SBS ‘꼬꼬무’에 방송된 이애란 박사의 사연과 채널A ‘이만갑’에 출연한 이애란 박사
북한 전통음식을 차린 상차림  사진/ 홍용학 기자

새해 첫날부터 시작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특히 설 명절을 앞두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탈북민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탈북 이후 다양한 활동으로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능라밥상’의 이애란 대표를 만나보았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애란 박사 가족의 탈북기

지난해 10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 탈북자 이애란 박사 가족의 탈북 스토리가 재조명됐다. 6.25 전쟁 당시 부모님과 헤어져 홀로 북한에 남아 있던 이용운(이애란 대표의 아버지) 씨에게 어느 날 미국에 사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소식이 닿았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을 탈출하라는 메시지를 녹음테이프에 담아 아들에게 보냈고, 당시 이용운 씨와 그의 딸 이애란 씨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탈북이었지만, 희망 없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고 전했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또 다른 이산가족이 생기기도 했고, 압록강 국경수비대에 걸려 무차별 폭행을 당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오기도 했다. 중국 장백에서 700㎞를 달려 심양에 도착한 후 국경을 지나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에서 망명 신청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나머지 가족들도 대부분 마음을 바꿔 1997년 12월 30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모두 만났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의 탈북 과정이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과정이지만 이애란 대표 가족 
9명의 탈북 스토리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최근 기자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서 전통 북한식 레스토랑인 ‘능라밥상’을 운영하는 이애란(58) 대표를 만났다.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넘길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벌써 4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몰리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의연하게 말했다. 
 

핵으로 협박 후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이 北의 속내

최근 빈번해지는 북한의 도발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개가 불안할 때 짖듯 불안함의 증거라고 본다. 지금 북한은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김정은의 배급을 먹고 자란 것이 아닌 부모가 장사해서 번 돈으로 자란 세대라 육탄정신이나 자폭정신과 같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지금 병사들은 김정은을 위해 절대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며 북한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과거 김일성이 최고의 전쟁 준비는 인민생활의 향상이라고 말해온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인민의 삶은 김일성 때보다 훨씬 열악해져 주민의 48%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김정은을 따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폭정신을 무인기에 담아 협박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국사회는 굉장히 다이나믹하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이나믹한 변화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 무인기에 생화학 무기를 탑재하거나 폭발물질을 터뜨릴 수도 있는데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우리 경찰과 군인 대응이 엉망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된다며 개탄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핵으로 협박하면서 우리 정부를 이용해 돈만 빼내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그것도 모르고 평화를 운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빨리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대북방송을 재개해 북한 내에 스스로 김정은을 타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절이 되어도 배급조차 못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

국내 거주 탈북주민은 현재까지 3만여명이다. 이들이 한국에 살면서 듣는 이같은 북한의 소식은 언젠가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지게 한다. 요즘같은 명절엔 고향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더 무겁다. 이 대표는 “지금은 식량난이 심해져 명절에도 배급을 주지 않는다. 김일성 사망 이후 미신을 많이 섬겨 제사에 신경쓰는 분위기”라고 알려주었다. 탈북 이후 이애란 대표는 호텔청소부를 시작으로 연봉 1억의 보험왕까지 올랐고,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취득, 美 국무부로부터 ‘용감한 국제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북한음식문화원과 자유통일문화원, 이승만 학당을 설립해 문화적 통일과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활동을 많이 해왔다. 이 대표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운명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통일문화원을 통해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급선무”라고 당부했다.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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