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상태바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2007.6.17 주일 낮 설교 (요약) - 15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6.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앙에서 얻는 즐거움

성경은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가 ‘이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면 기쁘고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마음이 제 마음에 흘러 들어오니까 제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흘러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없이 행복합니다.
때때로 밤에 자다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다 보면 처음 기도할 때에 갖지 못했던 새로운 마음이 저를 감싸주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이건 분명히 주님의 마음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게 이런저런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그 문제가 주님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매우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자매를 심방했습니다. 그 자매는 천식이 너무 심해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는데, 제가 갔을 때는 몸이 굉장히 좋아졌다면서 대문까지 나와 인사도 했습니다. 그 자매가 간증하길 천식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김성훈 목사님이 찾아와서 말씀을 자세히 전해주었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구원을 받았답니다. 그 후 몸이 굉장히 좋아져서 이제 우리 교회에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구원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하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극심한 복통으로

수십 년 전, 저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며칠 동안 잠을 거의 못 자면서 장례를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그날 저녁부터 전도집회가 있어서 집회까지 마치고, 토요일 아침에 선교학교 수업을 하려고 나가려다 배가 너무 아파서 엎드려 주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배가 괜찮다가 조금 지나면 또 찢어지게 아파오는데 몇 번 그러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를 깨워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배가 불룩해서 X-lay를 찍어보니 장이 꼬여서 막혔다는 겁니다. 처형이 그 병원 보급과에 있어서 수술할 의사가 누구인지 물어봤더니,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라 전부 수련의들만 있으니까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해서 월요일까지 미루었습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주일 예배까지 못 드린 채 침대에 누워서 아내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제 아내도 근심스러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데, 생각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아내의 얼굴이 희미해지고 자꾸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정신을 잃고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아내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꼭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죽어가고 있다면 죽기 전에 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할 말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교회 일도 내가 이래저래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른 목사님들이 다 잘 할 텐데’라고 생각하니까 교회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그때 느꼈습니다.

평안함을 느끼고

제가 죽고 난 뒤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될지도 생각해봤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렵고 가난할 때, 외롭고 힘들 때 나를 도와주신 그 주님이 내가 없다고 해서 우리 가정을 소홀히 하실까? 아니야,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과 아내를 돌봐주실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전에는 죄 사함 받고 천국 간다고 해도 아직까지 이 땅에 사니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니까 ‘내가 이제 이 세상을 떠나 그 나라에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마음에 하늘나라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전까지는 구원은 받았지만 그래도 죽음이 두렵고 고통스러울 것 같았는데, 죽음 앞에 서보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정말 좋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이제 이 세상의 삶을 벗은 후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까 죽음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어겼다는 비난

오늘 아침에는 마태복음 12장 안식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사이로 가실 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마 12:1) 유대나라 율법에는 남의 포도원에 가서 포도를 따 먹으면 죄가 안 되지만 포도를 따서 그릇에 담아 나오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남의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으면 죄가 안 되지만 낫을 대면 죄가 됩니다.
제가 어릴 때는 먹을 게 별로 없어서 배가 자주 고팠습니다. 그래서 동네 밀밭에서 밀 서리를 자주 했습니다. 밀을 비비면 껍질이 벗겨지는데 그것을 호호 불어 다시 비벼서 속껍질까지 날린 후 먹으면 아주 고소합니다.
제자들이 시장하니까 안식일 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 그것을 유대인들이 보았습니다. 밀을 자르는 것은 추수하는 것이고 비비는 것은 타작이니까 안식일에 추수하고 타작했다고 유대인들 사이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알아야

한번은 안식교회의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이 제게 “박 목사님은 왜 안식일에 예배를 안 드리고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성경적인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닙니다. 유대나라에서는 하루가 저녁 해질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안식교회 교인들은 토요일에 절대 일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율법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자기는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논리를 펴기에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안식일을 잘 지킵니까?” “예.” “안식일에 전깃불도 안 켜요?” “켜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에 어떤 불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리도 하면 안 되고 차도 타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안식일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림자, 구약성경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다가 나와서 많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는 총리가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윗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에 어떤 적이 와도 다윗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신다면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시대에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양의 각을 뜨고 껍질을 벗겨서 불에 태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하시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그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다리며

그러면 안식일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유대나라에서 안식일, 즉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 남종이나 여종이나 무리 안에 거하는 객이나 누구든지 그에게 어떤 짐도 지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종들이 일주일 내내 무거운 짐을 지고 일을 하면서 “아이고! 너무 피곤해. 이러다가 병들지도 몰라” 하며 힘들어하다가도 안식일이 되면 그 때부터 짐을 다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면 법에 걸리니까 주인이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는 하루 종일 편안하게 쉴 수 있으니까 일로 피곤하고 지친 종들이 그날을 얼마나 기다리겠습니까? ‘이번 안식일이 되면 쉴 수가 있는데 안식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며 자유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의인이 되어

저는 구원을 받기 전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장차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하며 걱정하고, 하는 일이 잘 안 되어서 늘 고민하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면서 죄도 짓고 주일도 못 지키고 기도도 잘 못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늘 마음이 눌려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 10월 7일, 그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다 돌아간 후 혼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전에는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기도가 끝나고 나면 마음에 죄가 남아있었는데, 그날 아침 기도를 하고 난 뒤에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사해졌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날 제가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나같이 더러운 죄인이 어린 양 예수님의 피로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의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에서도 벗어나

너무 신기한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온 뒤에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과 근심에서도 벗어났다는 겁니다. 저를 누르는 죄에서만 벗어난 게 아니라 인생에서 생기는 많은 근심과 염려에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벗어났습니다. 그날부터 예수님이 나를 이끄시면서 제 마음의 문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들이 엿새 동안 고달프고 피곤하게 일을 하다가 제 칠일 안식일이 되면 헛간 한 구석에 벌렁 누워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는 것처럼 제 영혼에도 그런 쉼이 찾아 왔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할 수 없어서 고통하고 고민했는데 이제는 전능하신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하시니까 두렵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8)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편히 쉴 수 있도록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제 안에 계시니까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번에 멕시코 캠프를 준비하는 일도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작년에 하와이 글로벌캠프를 할 때도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비행기 좌석을 얻는 일이나 미국 비자를 받는 일이 불가능했지만 결국 모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나 책을 출판하는 일, 방송하는 일도 가능해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짐을 지려고 하지만, 예수님이 안식의 주인이 되시어 우리가 쉴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일을 하셨습니다. 병자들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도 고치시고, 불구자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비난을 하자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는 안식일을 범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 12:9~12)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상관없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자체가 안식이라는 거지요.
골로새서 2장 16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라는 말은 안식일 자체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가다 안식일이 되면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죄의 짐뿐만 아니라 어떤 어려운 짐을 지고 있어도 안식일의 주인 된 예수님 안에 오면 다 내려놓고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무거운 짐을 이고 힘들게 가고 있는 할머니를 태워드렸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더니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그대로 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할머니. 왜 그걸 이고 계세요? 내려 놓으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내가 탄 것도 미안한데 짐까지 어떻게 내려놔?”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차에 짐을 들고 탔을 때 할머니만 탄 게 아니라 이미 짐도 태운 것인데도 그걸 모르고 자기가 이고 있으면 차가 더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들어올 때에 여러분의 죄뿐 아니라 어떤 문제도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고 있다고 해서 십자가가 더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죄 때문에 고통하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덜 찔리는 게 아니고, 못을 덜 박히는 게 아니고, 고통을 덜 받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기 죄의 짐을 내려놓든 내려놓지 않든 십자가에 당하신 그 고통으로 죄는 이미 해결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을 지고 고통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죄는 다 해결되었어. 더 이상 죄의 짐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넘어갔어’ 하고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죄뿐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그렇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만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전부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이제 이건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야.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어’ 하며 마음에 쉼을 얻는 그게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주님이 짐을 져 주시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이 우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어떤 사람은 저를 보고 “박 목사님, 안 피곤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어제는 말할 수 없이 바빴습니다. 오전 9시에 선교학교 수업하고, 10시에는 신문사 기자들 만나고, 12시와 2시에 결혼식 주례하고, 3시 40분부터 영상교제 녹화하고, 마치자마자 안양에 가서 그라시아스 정기연주회 참석하고, 말씀 전하고….
그러다보니 밤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일이 아주 가볍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면 예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습니다.
6.25 사변 때 저는 일곱 살이었는데 피난 갈 때 어머니가 떡을 해서 말린 것을 제가 지고 갔습니다. 우리 집에서 낙동강까지 십 리쯤 되는데, 그걸 메고 낙동강까지 가려니까 너무 무거웠습니다. 형님이 지게에다 솥이랑 잔뜩 지고 가다가 제가 그 앞을 기우뚱거리면서 걸어가니까 “우리 옥수, 잘 걸어가네” 하면서 뒤에서 손으로 떡을 받쳐주니까 아주 가벼웠습니다.
이처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는 말은 내가 지고 가는 것 같지만 예수님이 손으로 들어주시니까 가볍다는 것입니다.

안식할 모든 조건을 갖추시고

저는 돈이 많을 때도, 없을 때도 연보를 합니다. 제게 있는 것을 다 드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면 더 가난해져야 하는데 드릴수록 더 부유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주의 짐이고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안식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어주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저는 모든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제 아들이 어렸을 때 하루는 아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등을 밀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아빠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야.” “뭔데요?” “뭐긴 뭐야. 네가 장차 커서 하나님의 종이 될 테니까 너 때 밀어주는 것도 하나님의 종을 키우는 것이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일이야.” 여러분이 욕망으로 자식 키워서 훌륭한 사람 만들려고 하면 여러분의 일이지만, 여러분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 안의 참된 쉼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느라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식일이 오히려 짐이 되니까 그게 참 우스운 이야기지요.

안식을 누리는 복된 신앙

여러분, 이제 예수님 안에서 편히 쉬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시고, 모든 문제를 담당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있는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손으로 넘어가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하시지만 여러분이 쥐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동안에는 주님이 가만히 계십니다. 그러다 ‘아이고 주님,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하고 주의 손에 맡기면 그때부터 주님이 여러분 가정을 놀랍게 이끄실 겁니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나이 많다고 한탄하지 마시고, ‘예수님, 내 노년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이제 주님이 내 남은 생애를 붙잡고 계셔서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건강하게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복음 전하다 주 앞에 서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의 노년을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사위나 며느리나 아들이나 딸도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러면 기도할 게 많아질 것입니다. 나이 많으면 왜 자손들이 많은지 아십니까? 젊을 때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면 되지만, 결혼하면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식 낳으면 자식 위해서 기도하고, 나이가 들면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의 안식 안에 들어왔다면 주님이 쉴 수 있도록 모든 장치를 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짐을 지고 고생하고 고민한다고 절대 더 잘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돌보시도록 하고 여러분은 편히 쉬면서 기뻐하고, 주름살도 펴고 찡그린 얼굴도 펴서 밝고 복되고 아름답게 사시길 바랍니다.

- 2007.6.17 주일 낮 설교 (요약)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