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로마에 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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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로마에 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도행전 27장 18절 ~ 44절] 2022. 12. 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4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12.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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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중심지, 로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은 로마시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 전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이 쓴 로마서를 보면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로마에도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죄수가 되어 로마의 황제에게 재판을 받는 형식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다른 일을 할 때는 가만히 있는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 대적하고 반대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서 모든 문제를 이기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속죄제사

저는 1962년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배고픈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교회는 다녔지만 배가 고파서 남의 밭에서 밀도 꺾어먹고, 참외도 따먹는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죄를 씻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죄 사함 받는 방법을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기 4장을 읽는데 속죄제사에 대해 기록된 말씀이 보였습니다. 속죄제사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둘째,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셋째,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저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의 속죄제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성경을 보면 염소를 끌고 간 후 그 머리에 안수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이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될 때 안수를 받던데 왜 염소가 안수를 받지?’ 저는 안수의 의미를 알기 위해 성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안수(按手)의 의미

한국어 성경은 1800페이지 쯤 됩니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2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3600분, 즉 60시간이면 성경 한 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10시간씩 성경을 읽으면 6일 만에 일독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경을 30번, 60번, 100번 이상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가 짝이 되게 하신 것처럼 성경 말씀에도 짝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짝을 찾아서 읽어보면 성경의 의미가 풀립니다.
어느 날 레위기 16장 21절을 읽으면서 제가 궁금해 하던 안수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여기 말씀을 보니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죄가 염소에게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염소에게 넘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속죄제사에서 나오는 안수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죄를 넘겨받은 염소가 죽을 때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속죄제의 희생은

구약의 속죄제사에 기록된 속죄제의 희생, 즉 양이나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속죄제사에서 죄지은 사람을 대신해 양이나 염소가 죽어 그 사람의 죄를 씻듯이 예수님은 온 인류의 어린 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려면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옮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그 말씀이 마태복음 3장에 나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3~15)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예수님을 말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야 모든 의를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고 세례를 베풀면서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넘어가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푼 이튿날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외칩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과도 연결이 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이사야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의 죄를 넘겨 받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고, 창에 찔리며,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 죄의 값을 모두 치루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예수님의 고난으로 인해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온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끝이 난 것입니다.

영원한 속죄

히브리서 9장을 보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1~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뿌린 곳은 이 땅에 있는 성전이 아니라 하늘나라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시간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속죄제사는 미래의 죄는 씻지 못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죄만 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로 인해 성막의 재단 밑에는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연기가 구름처럼 올라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하시고 우리가 온전케 되길 원하셨기 때문에 이 땅의 성전이 아닌 영원계에 속한 하늘나라 성전에서 자신의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2절에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는 ‘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단번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단 한 번에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교회

성경에 이렇게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한다며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날마다 죄를 짓는데 어떻게 의로워. 의롭다고 말하는 박 목사는 죄 안 짓나?”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면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영원히, 완벽히 씻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우리는 죄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건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美 50여 개 방송국에서 설교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속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사했다면 죄 막 지어도 되겠네?”라며 비난을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죄를 짓지 않습니까?”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고 의로워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죄는 안지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과 동행할 때 죄와 멀어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원한 속죄의 복음을 전한다고 비난받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방송국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일 큰 기독교 방송국인 CTN에서 작년부터 제 설교가 방송되고 있고 지금은 50여 개 방송국에서 중계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도 수많은 방송사에서 저를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제 설교가 정기적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14일간 태풍이 계속되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씻어졌다는 이 복음을 들고 로마에 갔습니다. 사단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큰 풍랑을 일으켰습니다. 태풍은 주로 적도 부근 열대지방에서 발달하여 편서풍을 타고 이동합니다. 그런데 이 광풍은 바울이 탄 배가 있는 지중해 연안에서 14일 동안이나 머물렀습니다. 그 배에 탔던 276명은 모두 절망했고 살 소망이 없어진 선원들은 배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버리고 나중에는 배의 기구마저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결국 바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로마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신앙의 도시로 만듭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동안 로마가 행했던 기독교 박해를 금지하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했을 때 로마 시민의 삼분의 일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까지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로마 전 도시에 복음이 가득 찬 것입니다. 바울이 태풍 때문에 좌절하고 핍박을 피하기 위해 복음을 중단했다면, 바울을 통해 이러한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스와티니 국립대학 졸업식

아프리카 중에 에스와티니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국가 중 하나입니다. 수년 전에 우리 음악학교 학생들이 에스와티니에 봉사하러 갔는데 국립대학교 졸업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담당자를 찾아가 음악 공연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담당자가 국왕께서 참석하시는 졸업식이라 이미 행사 프로그램을 국왕께 드려서 변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졸업식에만 참석해 식이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행사 담당자가 학생들을 찾아왔습니다. “아직 국왕께서 오시지 않아 시간이 좀 남습니다. 그 시간 동안 공연해 줄 수 있나요?” 그래서 학생들이 공연을 시작했는데 공연 중간에 국왕이 도착하셨습니다. 행사가 끝나자 국왕께서 음악학교 학생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때 학생들이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인 저를 소개하면서 며칠 뒤 제가 에스와티니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국왕께서 제가 도착하는 날 공항으로 장관을 보내시고 저를 왕궁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국왕에게 복음을 전해 

국왕을 만나기 전에 면담 시간을 확인하니 40분이라고 했습니다. 국왕을 만나 인사를 나누니 10분이 흘렀습니다. 남은 30분 동안 국왕께 바로 성경 말씀을 전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설교를 마치자 국왕께서 “목사님, 말씀을 좀 더 전해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30분 더 말씀을 전하고 마치려는데 다시 국왕께서 더 전해달라고 하셔서 총 90분 동안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국왕께서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목사님은 참된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제가 땅을 드릴 테니 거기에 교회와 IYF 센터를 짓고 목사님 집도 지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며 정말 좋은 위치에 3만 평의 땅을 주셨습니다. 한참 공사를 진행해 이제 센터가 완공단계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국왕과 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국왕께서 우리를 돕게 되면서 에스와티니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 3월,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에스와티니에서 기독교지도자모임을 가졌습니다. 에스와티니에는 약 2천 개의 교회가 있는데 행사장에 2500여 명이나 되는 목회자가 참석했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제 우리도 굿뉴스미션에 속해서 일을 하자”라고 하면서 우리 선교회와 함께 복음의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새해부터는 그분들에게 정기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하셔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사는 삶보다 더 복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바울의 여정에 풍랑을 일으키고, 겨우 한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도 독사에 물리게 하는 등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사단이 방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기독교계가 깜짝 놀란 일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린 강해집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형편과 어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복음 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피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삶을 살다가 오히려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평생 복음만 전하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이 강대상에 서지 못하게 하시면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하는 인생인데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복된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한국의 기독교 목회자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공식 초청되고 최고 랍비를 만난 사실에 온 기독교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에 대해 증거하자 많은 분들이 우리 선교회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오늘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삶을 살 때 돈을 버는데 많은 기대를 두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가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믿을만한 분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복음 전하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우리를 가장 안전하고 복되게 인도하십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단은 그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저도 사역을 하면서 어려움과 문제가 많았지만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면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복음의 터전을 넓혀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10년 전에 저를 도우셨던 하나님, 20년 전에 저를 일으켜주셨던 하나님. 그 변치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이끄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위해 사십시오. 주님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22. 12. 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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