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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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믿어야
2007.6.10 주일 낮 설교 (요약) - 15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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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상담을 통해

어제 오후에 우리 교회에 손님이 오셔서 그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거듭나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로마서 3장을 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그분도 교회에 나가는 분인데 저한테 “그러면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해서 제가 또 히브리서를 펴서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그분의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죄를 속한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교리에 빠져

오늘날 참 많은 목사님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원죄는 씻었지만 매일 짓는 자범죄는 우리가 고백해야 씻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원죄는 씻으시고 자범죄는 못 씻었다는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못 씻는 죄를 우리가 고백해서 씻을 수 있다면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능력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속아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죄 사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죄 사함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서 하신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넘어지니까 힘이 없고 어려워하는 걸 봅니다.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제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의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그 사실을 마음에서 알고 받아들인 뒤에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내 죄가 남아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가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가 내 모든 죄를 흰 눈처럼 완벽하게 씻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우리 죄를 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죄가 눈과 같이 깨끗해졌다. 나는 의롭고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1~2)
저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기념했던 유월절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마음의 문설주에는 피가 뿌려져 있는지와 마음의 문설주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가끔 제가 구원받았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구원을 받고 나니 출애굽기 말씀과 같이 해의 첫 달이 된 것처럼 아주 좋았지만, 구원받기 전에 죄 때문에 고통하고 괴로웠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1962년 10월 7일, 분명하게 내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전에 저는 더럽고 추하고 가증스럽고 야비하며 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제 능력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이 죄에 눌려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괴로운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사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저는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은 이론이지 여전히 죄가 저를 짓눌러 부끄러움과 괴로움, 두려움이 저를 이끌어갔습니다. 저는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새벽마다 기도를 하러 교회에 갔습니다. 거기서 죄를 고백하고 나면 좀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했는데 부흥강사 목사님을 어렵게 만나 면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죄가 참 많습니다.” “회개하세요.” “새벽마다 회개기도를 했지만 뭔가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회개의 열매를 맺으세요.”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다 갚아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려고

그래도 그냥 물러가기가 너무 억울하고 섭섭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회개의 열매를 한번 맺어 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에게 거짓말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낮에는 못하고 저녁이 되어서 제 친구를 불렀습니다. “친구야, 지금 나와 줄래?” 밝은 전등 아래에서 고백할 수 없어서 어두컴컴한 곳으로 가자고 하니까 그 친구는 제가 자기를 때릴까봐 바짝 얼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얘기해.” “아니, 조금만 더 가자.” “여기서 얘기해.” “조금만 더.” “아니 뭔데?”
결국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볏짚이 쌓여있는 곳으로 가서 “너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뭔데?” “그저께 내가 너한테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 “그 얘기 하려고 그랬나? 이 바보 같은 자식” 하며 욕을 하는데 저는 너무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기가  너무 어렵구나. 이게 가장 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할 수 없으면 난 지옥갈 수밖에 없구나’ 저는 거짓말을 수없이 했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다 찾아가서 거짓말했다고 고합니까?
그러다가 제가 1962년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라는 말씀처럼 제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온 그날부터 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제 자신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날 이후로는 사랑하는 주님이 저에게 기도하고 성경 읽게 하셨 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옛날에 전기가 들어오는 집과 전기가 없는 집은 삶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기가 있는 집은 조그만 등불을 켜도 환하지만 전기가 없는 집은 아무리 호롱불을 켜도 어두침침합니다. 이처럼 전기나 냉장고, 세탁기 하나만 집에 들어와도 삶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 능력 많은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에 주인이 되시면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에 의해서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이며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예수님에 의해서 모든 일이 아름답게 진행될 것입니다.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니”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정강이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3~13)
‘유월’이라는 말은 ‘지나간다’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사망의 칼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장자를 죽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양을 구워먹을 때 고기와 쓴 나물을 같이 먹는가, 정강이와 내장도 먹는가, 지팡이를 잡고 허리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먹는가? 등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설주에 피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으로 모든 게 결정됩니다.

행위를 보시지 않아

한번은 제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종탑을 새로 지었습니다. 철 공사를 하는 집사님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은 것은 종탑을 만들 때 철근을 사다가 페인트칠을 해서 만들면 될 것을 종탑을 높이 세워놓고는 페인트칠을 하라고 했습니다. 꼭대기가 까마득하게 높으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제가 나섰습니다.
‘난 죄가 많은 놈이니까 종탑에 페인트칠하다  떨어져 죽으면 하나님 일하다가 죽었으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좀 낫게 봐주시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그런 쓸데없는 것에 기대를 했습니다. 페인트칠을 잘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천정을 쳐다보고 페인트칠을 하니까 온 얼굴에 페인트가 뻘겋게 묻어서 휘발유로 세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들어간다면 그때부터 구원은 이지러지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행위가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아무것도 안 보시고 ‘피’만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악하고 더럽지만 하나님은 문설주에 피가 발려 있으면 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심판대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vs 뱀의 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니까 우리 모두 구원 받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하와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에 뱀은 즉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속삭입니다.
자, 뱀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같습니까? 다르지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지만 뱀은 안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세상 지식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에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둘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인다면 뱀의 말은 자연히 거부하게 됩니다.

“다 이루었다”는 뜻은

저는 1971년에 결혼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몇 백만 명의 처녀가 있었지만 제 아내 될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여자가 둘이라면 고민스럽고 문제가 되겠지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다른 여자를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가 결혼할 여자와 비추어 볼 수도 있고 누구를 아내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지만, 결혼하려고 마음을 정하면 그때부터 자기 아내만 봐야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준다면 그것은 부정한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면 마음을 정하고 한평생을 사는 겁니다.
신앙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외에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죄는 사했지만, 자범죄는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사단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무 힘들어서 원죄만 겨우 사했으니까 자범죄는 너희가 어찌 해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의 문에 예수님의 피가 발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이론과 논리가 있지만 여러분의 죄를 사하고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피 밖에 다른 게 없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원죄는 사했지만 자범죄는 우리가 회개해서 씻어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 십자가의 피가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 피 외에 이 세상 어디에도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피 외에 다른 방법으로 죄를 씻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죽으신 것 외에 ‘내가 선한 일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내 죄를 사했다고는 하지만 그 십자가의 피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은 하지만 그 마음에 온전한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으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완벽하게 씻어졌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을 위해 마음을 정리해야

오늘 아침, 여러분의 마음을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신앙을 하려면 마음을 정리해야 합니다. 신앙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할 때보다 말씀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저는 제 마음을 정리하면서 많은 복을 입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과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복된 것인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정리가 안 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위해 사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살면 주님께서 저를 위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저에게 천 가지 만 가지 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 앞에서는

저에게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성경에는 주님께서 저에게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말석에 앉는 것이 복이야”라고 대충 말할 수도 있지만, 깊이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낮은 위치에 있을 때, 주님께서 저를 올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주님이 저를 높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금전적인 부분도 저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보여주신 다음에는 주님께 아낌없이 연보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드릴 때마다 주님은 주님의 모든 것을 넘치게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빈틈이 없는 분이십니다. 완벽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막연한 생각을 가진 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잘못된 생각 속에서 그냥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어린 양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 앞에서는 그 어떤 죄도 살아나지 못하듯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대신했기 때문에 그 피 앞에서는 어떤 정죄도 당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확실하게 믿지 못할 때 자신이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도하거나 전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회개와 기도, 전도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만 보시고

주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드리고 주님을 찬양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물질을 드리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없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그렇습니다. 물론 기도도 해야 하고 헌금도 드려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지만, 그것을 의지하면 구원의 믿음이 흔들리고 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만으로 내 죄를 사하는 게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때 그때부터 성령이 내게 일하셔서 나를 봉사하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지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아무것도 안 보셨습니다. 우리가 짓는 어떤 죄든 간에 그 죄의 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의 피를 보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피만 하나님이 보십니다. 그 피를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그 피를 보고 내 죄를 사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 피의 능력을 믿는 보신 여러분이 믿음 가운데 서기를 바랍니다.

- 2007.6.10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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