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법을 내려놓고 말씀을 좇아 고기를 잡은 『베드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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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법을 내려놓고 말씀을 좇아 고기를 잡은 『베드로』처럼
2007.6.3 주일 낮 설교 (요약) - 15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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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지 않는 고아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몇 십년 전에 부산에 있는 작은 고아원을 맡아서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 목사님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 고아원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전부 나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친아들과 고아는 너무 차이가 나요. 친아들은 때리고 야단쳐도 마음을 여는데, 고아들은 아무리 잘 대해줘도 마음을 열지 않아요.”
고아들은 정부에서 혜택을 받기 때문에 중・고등학교는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는데도, 그 고아원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이 목사님이 원장이 된 이래로 졸업하는 아이들 13명을 불러다 놓고 “너희는 중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난 학교 안 가고 공장에 취직할 거예요”라고 하는 겁니다. “시내 가면 도로 표지판이 영어로 쓰여 있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영어 하나도 몰라가지고 세상 어떻게 살래? 중학교는 나와야 돼”라고 해도 원장이 시키는 대로 하면 손해 볼 줄 알고 청개구리처럼 정반대로 살아서 목사님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남을 믿지 않기 때문에

보조받는 데도 없어서 아이들과 지내는 삶이 너무 어려웠지만 이 목사님은 아이들을 매우 헌신적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13명 중 5명이 중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후 고아원 예산이 없지만 책상도 사주고, 멋진 가방도 사주고, 교복도 맞춰주고, 시내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도 한 그릇씩 사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하면서 그 이듬해부터는 전부 중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아들이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과 다른 것은 남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아들은 자기 혼자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보다 훨씬 잘하지만, 남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각박하고 여유없는 현대인

정신이 약한 사람은 사단이 그 마음 안에 들어와서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게 하기 때문에 자기주장만 계속 내세웁니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듣는 척만 하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절대 남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마약 중독자들도 그렇습니다.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하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 마음이 없어질 것인데도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사단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만 가지고 있지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여유는 믿음에서 오는 것인데,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는 믿음이 없으니까 점점 각박하고 여유가 없게 됩니다.

믿기 때문에 누리는 행복

제가 아는 장로교 목사님 한 분이 저한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부산에서 어느 교회 부목으로 있었을 때인데 원목이 “방을 얻되 예배당 4km 밖에서 얻어라. 어떤 성도에게든지 부목의 사택을 알려주지 말라”는 등 ‘부목 십계명’을 정해 놓고는 부목과 교인들 사이를 단절시켜 놓는답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부목이 교인들을 어떻게 할까봐 원목이 일주일 이상 교회를 비운 적이 절대 없다고 합니다. 원목이 한 달 정도만 교회를 비우면, 부목이 교인들을 다 데리고 다른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부목을 믿지 못한답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믿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님을 믿으며 살다 보니 행복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에 부목사님인 김성훈 목사님이 계시는데, 저는 외국에 갈 때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갑니다. 외국에 2주나 3주 동안 있어도 김 목사님이 교인들을 끌어내가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김 목사님을 믿고, 김 목사님이 저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격이 굉장히 비뚤고 모질고 야비해서 구원받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믿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사람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속이려고 해도 주님이 막아주셔서 안 속게 되고, 또 제가 남에게 안 속으려고 사람 사이에 담을 쌓지 않고 살게 되어 무척 행복합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신 예수님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5장을 읽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베드로도 처음부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믿음으로 이끌었는지가 1절에서 11절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눅 5:1~3)
그날 밤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빚을 졌는지 돈이 급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모두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게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됐을 때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호숫가에 있는 두 배 중에 시몬 베드로의 배에 타셨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습니다. “다른 사람도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날 왜 하필 시몬 베드로의 배에 타셨습니까? 그냥 말씀만 전하시지 왜 베드로에게 관심을 두셨습니까? 또 베드로에게 어떤 마음으로 그물을 깊은 데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베드로를 이끄시려고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이 지나가셨다면 분명히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지나간 뒤에 장난치고 어지럽혀 놓은 흔적이 남듯이, 예수님이 지나간 뒤에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분명히 보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그날 밤 베드로를 이끌고 싶으셨습니다. 베드로도 여느 사람처럼 자기를 믿는 사람이었고, 더욱이 고기를 잡는 것은 누구보다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생각과 주관대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기 때문에 깊은 데에 고기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낮에는 깊은 데에 가 있고, 밤에는 물가로 나와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날 밤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한 이유는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지 않아서입니다. 왜 그가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지 않았냐면 자기의 경험과 지식으로 볼 때 깊은 데에는 고기가 없고, 얕은 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그물을 던져라”고 했다면 그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고기를 어느 정도 잡은 상태에서 그 말을 들었다면 예수님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밤새도록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하자 자기에 대한 회의가 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내 방식으로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수영장이 있어서 종종 그곳에 수영을 하러 갑니다. 형제님들이 저에게 조깅은 나이 많아서 관절에 나쁘니까 그만 하고 수영하는 게 좋다고 권해서 요즘엔 수영만 합니다.
그런데 그 수영장에는 수영을 제대로 배운 사람들만 하러 오기 때문에 다들 잘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저는 어릴 때 낙동강에서 퐁당퐁당 물놀이하다가 배운 수영을 하니까요.
제가 수영하면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옆에서 수영하던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래도 잘 나가네요”하고 말했습니다. 신기하다는 뜻이죠. 수영을 가르치는 분이 있는데 저만 보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합니다. “수영 좀 배우시죠”라는 말인 것 같아요.
제 며느리가 예전에 수영 선수였는데, 제가 수영하는 것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아버님, 수영 어디서 배우셨어요?” “낙동강에서” “누구에게 배우셨어요?” “나한테” 그랬더니 두말도 안 합니다.
제 아들도 제게 수영을 가르쳐 주겠대요. “아버지, 이렇게 하세요.” 제가 아들의 설명을 듣고 나름대로는 그대로 한다고 하지만, 제 아들이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버지,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나는 힘 다 뺐다.” “아이, 아버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비디오 카메라 한번 찍어봐라.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데 왜 안 된다고 하냐?” 하니까 제 아들이 두 번 시도해 보더니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가서 혼자 수영하고 말더라고요.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

여러분, 가장 미련한 사람은 자기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똑똑한 줄 알았는데 형편없고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며 자기에 대한 회의를 가질 때 지혜로워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를 믿습니다. 실수를 해도, 잘못을 해도, 방탕해도 자기를 믿습니다. 하물며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수십 년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기 잡는 방법, 그물 던지는 방법, 물고기가 다니는 길을 알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믿음의 삶을 살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면 자신이 하나님보다 못하면서, 하나님만큼 모르면서, 하나님만큼 지혜가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고 할 때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의 믿음을 이끌어주시듯, 주님의 손길이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셔야 믿음으로 이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밤에 시몬 베드로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전에는 이러면 고기가 잡혔는데 오늘 저녁에 한 마리도 안 잡히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때

그때 예수님이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타셨습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있었는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람들이 가까이 못 오도록 배를 육지에서 조금만 띄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웠습니다. 베드로가 노를 잡고는 배가 육지에서 너무 멀면 육지 가까이로 노를 젓고, 너무 가까우면 좀 띄우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베드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계속 베드로를 믿음으로 이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 나이가 어렸지만 너무 절망적이고 막막했습니다.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도 저는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는데 말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돼지우리에 가서 자기 자신의 모양을 발견했듯이, 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럽고 악하고 더럽고 추하고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인간인지를 하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겠구나! 난 너무 악하고 더러운 인간이야. 이런 내 생각을 가지고 살면 망하겠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정말 형편없는 인간임을 보여주시려고 여러 번 일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한 채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배에 타셨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는데 베드로가 조용히 배 뒤에서 노를 잡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에게 없던 지혜와 능력, 말씀 속에 담겨있는 진리와 거룩함, 진실함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베드로는 ‘어떻게 저분의 입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우리 인간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는 추하고 더러운, 자기 욕망에 관한 이야기뿐인데 저분의 말씀은 정말 신선하고 힘이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예수님의 마음을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경험과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조용하고 단순한 말씀이었습니다. 깊은 데는 고기가 없는데 베드로가 간증을 했어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자기 지식과 방법을 따라 살았지 한 번도 말씀으로 무엇을 해본 적이 없는 베드로가 정말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된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 지식, 방법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물을 내리고 노를 저었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길을 행하고 말을 하고 생활하니까 이제 베드로는 베드로가 아니라 작은 예수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으로 착한 행위를 하며 사는 것, 정직하려고 하는 것, 돈을 벌려고 하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것은 정말 의미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 자체가 부패하고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각오를 해도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하고 추한 것, 욕망과 정욕이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 채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처럼 자신을 정확하게 알면 ‘내 방법과 경험은 이렇지만 이제는 이것을 따라 살지 않을래. 이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래. 말씀이 이끄는 데로 갈래’라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으로

모형비행기를 만들어서 원격조종기를 가지고 조종하면 모형비행기가 움직입니다.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밑으로 가라앉기도 하고 평평히 날았다가 돌기도 합니다.  
저는 군대에서 무전기를 전투기에 사용할 때 무전기는 다른 쪽에 두고 컨트롤 박스를 가지고 원격으로 무전기를 조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전기는 산꼭대기에 안테나를 세워 전파를 잘 받도록 놓아두고 산 밑의 막사 진지 안에서 리모컨 컨트롤 박스를 가지고 조종합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에 의해 조종을 당합니다. 사단은 여러분의 마음을 원격조종기같이 욕망과 정욕, 쾌락으로 조종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 밤잠을 안 자고 일하며 돈을 벌다가 어느 날 병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서 자기 아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쳐다보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 잘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합니다. 결국 ‘돈을 벌어야겠다. 성공해야겠다’며 사단의 조종에 따라 마음이 흔들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다 패망하고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추하고 더러운 사단의 정체

우리는 오랫동안 사단의 조종을 받아왔기 때문에 쉽게 우리의 경험이나 관습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경험과 지식, 방법이 아니라 시몬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쾌락과 정욕을 위해서는 돈을 펑펑 쓰게 하면서 복음의 일에 쓰려고 하면 아깝게 느끼도록 합니다. 여러분의 욕망을 위해서는 밤을 새면서도 철야기도 하려고 하면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를 조종하는 사단 자체가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악하고 더럽게 살 수밖에 없고 음란하고 가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날 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거기서 무리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베드로의 마음에 있는 생각과 너무 달랐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은 사단이 넣어준 욕망이나 정욕에 이끌려서 만들어진 마음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욕망과 정욕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순수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래, 저 말씀은 거룩해,  저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저 말씀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 지금까지 내가 내 방법으로 했지만 실패했잖아. 이제 내가 내 생각을 버리고 저 말씀을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베드로에게 일어났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주님이 베드로의 입술을 바꾸었습니다. 전에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베드로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끌림을 받으면

주님이 베드로를 바꾸신 것처럼,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방법으로 해왔지만 결국 죄를 짓고 악을 행했습니다. 이젠 내 방법과 내 생각이 아닌 말씀에 의지해서 인생을 살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이끌림을 받으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여러분의 삶과 가족을 바꾸고 여러분 주위 사람들도 복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자세히 점검해 보십시오. 자신이 잘한 것 같았지만 삶에서는 더럽고 거짓되고 순수하지 못한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단이 우리를 조종하면 우리가 하는 것마다 어려움과 어두움이 있고 죄악이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예수님의 말씀이 이끌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주님,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한 베드로처럼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 인생을 살겠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능력이 베드로에게 역사해서 많은 고기를 잡은 것처럼 여러분 인생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 2007.6.3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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