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해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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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의지해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의 믿음
[사무엘상 17장 26절 ~ 49절] 2022. 8. 1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2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8.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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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마음의 세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세계와 전혀 다른 마음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눈을 주셔서 물질적인 세계를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마음을 주셔서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도록 하셨습니다. 
1987년에 저는 위궤양으로 무척 고생했습니다. 한번은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전대로 약을 먹었더니 속이 너무 편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약을 먹기 전과 마찬가지로 속이 쓰렸습니다.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아내가 속이 편한 음식을 만들어 줘서 아주 조금씩 먹었습니다. 그래도 설사를 하니까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3개월 만에 체중이 7㎏ 가까이 빠지면서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어지러웠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배가 아픕니다. 제 위장을 낫게 해 주십시오’ 하며 기도를 마치는데 마치 예수님이 제게 말씀하시듯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쉬운 말씀이

여러분, 이 성경 말씀을 분석해봅시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내 배가 아픈데 배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구했으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실 것을 믿으라. 지금 아픈 배가 낫지 않았지만 다 나았다고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안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제가 하나님께 배가 아픈데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 나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세상에 이렇게 쉬운 말씀이 성경에 있었구나’ 하며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라는 이 말씀을 백번도 더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정말 기도하면 아픈 배가 나을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지금 이렇게 배가 아픈데 기도하고 믿기만 하면 낫는다? 너무 쉬운데 진짜 그렇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형편을 쳐다보니 절대로 말씀처럼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은

그때 제가 하나님 앞에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의 종이고 목사였지만 믿음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도 있었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 줄로 믿으라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하거나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마음속으로 받은 줄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데 돈이 듭니까? 힘이 듭니까? 이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를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하듯이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안 나으면 어떡하지?’ ‘그게 말이 돼? 아니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뭐 때문에 나 같은 인간에게 거짓말을 하시겠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돼!’ ‘하나님, 믿습니다. 제 배가 다 나았습니다. 아멘.’ 그날 아침에 저는 말씀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배가 나았다고 믿는다면 김치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지만 물만 먹어도 설사가 나오는데, 이런 배에 김치를 먹으면 위장이 견뎌낼까? 그러다 진짜 위장에 구멍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며 다시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게 나은 거야?

하지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게 서툴러서 그렇지 정확하게 말씀을 믿었다면 하나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내 배 다 나았다. 김치도 먹자’ 하며 다시 마음을 바꾸고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날 집에 손님이 많이 오셔서 아내는 아침에 음식을 식탁 위에 가득 차려 놓았습니다. 제겐 흰죽을 먹으라고 갖다 놓았지만 저는 김치와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음식을 나르던 아내가 저를 보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걱정하지 마. 배 다 나았어”라고 말한 후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손님들은 아직 식사 중이고 저는 식사를 일찍 마쳤는데 갑자기 배가 ‘싸~아’ 하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아이고, 배야. 왜 배가 아프지? 다 나았다고 믿었으면 믿은 대로 나아야지. 왜 설사를 하지? 이게 나은 거야?’ 이렇게 생각하다가 저는 배를 낫게 해달라고 다시 기도했고 성경 말씀대로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배가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여전히 아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무슨 믿음이 있다고 그 배에 김치를 먹어? 죽으려고 환장했지.’ ‘사단아, 물러가라. 배가 다 나았다.’ ‘배가 다 나았으면 안 아파야지. 너 지금 속이 쓰리잖아? 따갑잖아. 아프잖아? 그게 나은 거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고 했는데? 난 기도했어. 믿었어. 다 나은 거야!’ ‘다 나았으면 배가 안 아파야지? 지금 네 배 아프잖아. 설사 하잖아. 그게 나은 거야?’ ‘그러네. 안 나은 건가? 말씀에서는 나았는데?’ 분명히 성경에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해서 기도했고, 제 배가 나았다고 믿었는데 왜 계속 배가 아픈지 생각했습니다. 

‘배가 아프지만 나았다’

여러분, 그때 제게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어갈 때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여 예수님이 그 집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온 많은 사람이 야이로의 딸을 보더니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은 슬픔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는데 예수님이 들어오시더니 그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눅 8: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아이고, 우리가 죽은 것과 잠자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까 봐? 잠든 사람은 누웠어도 숨을 쉬는데 이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몸도 싸늘하게 식었잖아’ 하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눈에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의 눈에는 살아서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는 여전히 배가 아파서 안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저를 보실 때는 이미 나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배가 아프지만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떤 분의 초대를 받아 호텔 뷔페식당에 갔습니다. 저는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배가 아프니까 죽이나 좀 먹고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내 배가 다 나았지!’ 하고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날 정말 많이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기하게도 그동안 아팠던 제 배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물에 물을 섞으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결코 거짓말을 안 하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었는지를 먼저 보십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느냐 하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입니다. 여러분, 물에 물을 섞으면 물입니다. 간장에 간장을 섞어도 간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섞으면 말씀입니다. 이렇게 같은 것을 섞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그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든지 불문하고 지금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는데 그것을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마치 휘발유로 운행하는 가솔린 자동차에다 경유를 주유하면 문제가 생기는데 휘발유를 주유하면 문제가 없듯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받아들인 우리 마음을 섞은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능력이 똑같이 우리 속에서 살아 역사를 합니다. 

어느 대학생 해외봉사단원

몇 년 전 일입니다. 라이베리아에서 대학생 해외봉사활동 중이던 최요한 학생이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다가 한쪽 발을 전갈에 쏘였습니다. 새벽에 누군가 바늘로 찌르는 듯해서 “아!” 하며 잠이 깨었다가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단원들에게 “새벽에 누가 내 발을 바늘로 찌른 것 같았어”라고 말했습니다. “형, 그것 전갈 아니야?” “무슨 방에 전갈이 있어?” 그런 뒤 그날 오후에 요한이가 화장실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의사가 진찰하더니 이미 온몸에 독이 퍼져서 죽는다며 그냥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곳을 헤매다 한 병원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요한이는 이미 심장이 멎었다가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맥박이 뛰는 정도였고 그의 혈압은 30mmHg, 체온이 17℃이니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갈에 쏘여 죽어갔지만 

라이베리아 지부장이 울면서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세요?” “목사님, 여기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인데요.” “예.” “목사님, 최요한이가요. 최요한이가요.” “진정하고 이야기를 해요. 무슨 일이에요.” “요한이가 전갈에 쏘여서 죽어가고 있어요. 두 시간도 못 산대요.” 제가 지부장에게 요한이와 통화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요한이를 바꿔 주었습니다. “요한아, 너 내 목소리 들려?” “예, 목…사…님.” “요한아, 너는 지금 아프리카산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대. 내가 오늘 아침 성경을 읽었어. 이사야 40장 31절이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성경 66권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하셨어. 요한아!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해! 네가 전갈의 독을 이기려면 새 힘이 필요해.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분명히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실 거야. 그럼 너는 전갈의 독을 이길 수가 있어.” 

기적이 일어났어요!

최요한 학생은 전화를 끊은 후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녘에 간호사가 병실을 순회하다 ‘아, 그 학생 지금 어떻게 됐지?’ 하며 병상에 있는 모니터를 봤습니다. 그런데 혈압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이 환자는 벌써 죽었을 사람인데 혈압이 올라가네? 의사 선생님! 이리 와 보세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 환자의 혈압이 올라가고 있어요!” 의사가 뛰어왔습니다. “이 환자에게 무슨 조치를 한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 해가 뜰 무렵 요한이가 깨어났습니다. “아, 잘 잤다.” “형, 괜찮아?” “응, 괜찮아.”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형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어.” “그랬어?” 의사는 의무기록 카드를 들고 깨어난 요한이를 보며 “전갈에 쏘여서 죽던 사람인데 뭐라고 기록해야 하나?”라고 했습니다. 최요한 학생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갈에 쏘인 그의 발이 처음에 시커멓게 되더니 두 달 후 깨끗이 낫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전갈의 독을 이기는 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 생각에 익숙합니다. 최요한 학생이 전갈에 쏘여 죽어갈 때 ‘이건 어쩔 수 없어. 이젠 안 되겠구나’ 하는 우리의 익숙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최요한 학생에게 전해줬는데 최 형제가 그걸 믿은 뒤에 바로 전갈의 독을 이기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전한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악한 사람, 추한 사람, 사기꾼 그 누구든지 간에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살아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으면 차가 망가지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혹시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었다면 시동을 걸지 말고 기름통에 있는 휘발유를 다 뽑아 완전히 씻어낸 후에 다시 경유를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차를 운행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생각으로 가득할 때 그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넣으면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

저는 죄 사함을 받기 전에 악하고 거짓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 하나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니 그때부터 하나님이 제 인생에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도둑질이나 거짓말, 음란한 생각보다 하나님과 다른 우리 생각이 죄요,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우리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삼상 15:3)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없고 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을 좇은 사울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입니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긴 사울의 행동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 행동은 전부 마음을 따라 나타납니다. 우리 마음에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육신적인 행동이 나타나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하나님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면서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아, 내가 이런 잘못을 해서 사업에 실패했구나. 내가 이런 부족함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구나.’ 하나님은 이런 사고(思考)를 통해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옳든지 틀리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달려 나아가면 우리는 굉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1962년 죄 사함을 받고 난 뒤 하나님은 참 많은 방법으로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저는 참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제가 가진 생각과 하나님 말씀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여러분, 더 이상 뭘 잘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 결국 자기 방법대로 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3미터가 되는 골리앗 앞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는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 교류하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봤을 때 큰 골리앗과 자신의 싸움이 아니라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6) 다윗의 이 외침은 허풍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다윗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다윗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달려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우리의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이 일하시고 해결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 2022. 8. 1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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