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무익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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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익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2007.5.13 주일 낮 설교 (요약) - 15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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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대구에서 대전도집회가 있었습니다. 셋째 날 저녁, 설교 후 개인 신앙상담까지 마치고 11시 가까이 됐는데, 어떤 부인이 저에게 안수를 받으려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부인에게 “왜 안수를 받으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온몸에 안 아픈 데가 하나도 없어요. 특히 머리가 너무나 아파요” 하는 겁니다. “왜 머리가 그렇게 아픕니까?”
그 부인이 울면서 근간에 이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몇인데 이혼을 했어요?” “남편은 65세이고 저는 60세입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귀자 저를 버리고 재혼하려고 해서 이혼 소송을 한 지가 2년이 넘었어요. 이혼 소송을 하는 동안 법을 몰라서 재산 뺏기고 집도 없이 결국 이혼을 당했어요. 2년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세상이 귀찮고 죽고만 싶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주머니 같은 분은 꼭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데요?” “교회 다니더라도 내일 저녁에 한 번 더 오십시오. 그때 오시면 어떻게 죄 사함 받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어려움 속에 받은 구원

이튿날 저녁에 그 부인이 다시 오셨기에 제가 복음을 차근차근 전했습니다. “아주머니 마음속에 죄가 있습니까?” “저는 죄가 많아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죄인입니까?” “죄인이지요.” “아주머니, 하나님을 믿을 때는 아주머니 생각을 가지고 믿으면 안 되고 성경 말씀을 따라 믿어야 합니다. 아주머니 생각에는 자기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지 한번 들어보세요”라며 성경을 펴서 차근차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셔서 우리 죄를 기억치 아니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는데, 아주머니 생각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옳겠습니까?” “그야 하나님 말씀이 옳지요.”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제가 예수님의 피로 어떻게 죄가 사해지는지를 이야기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구원을 받더니 매우 기뻐했습니다.

구원 받고 난 뒤에

“아주머니, 이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 어려움은 하나님이 아주머니를 사랑하셔서 아주머니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인데 이제 아주머니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아주머니 인생을 이끄실 것입니다. 아주머니가 1년 후에 어떻게 변해있을지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주머니가 30년이 넘도록 막연하게 교회를 다녀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죽으면 영원한 지옥에 갈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그 가정에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집회에 오게 해서 구원 받게 하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이 구원 받고 난 뒤에 그 아주머니 인생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실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에 소망이 넘쳤습니다.

남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대구 파동에서 사역을 할 때 옆집에 어떤 부부가 살았습니다. 아저씨가 미군부대에 근무하기 때문에 수입이 상당히 많아서 삶이 괜찮을 만한데 그 집은 늘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 집 아주머니는 사람들에게 빚을 내서 살다가 빚쟁이가 이자를 달라고 하면 또 빚을 내서 이자를 갚는 겁니다. 그러다 돈이 남으면 써 버리니까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남편이 월급을 타 와도 이자밖에 갚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주머니가 자기 남편을 너무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 아주머니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늘 “당신이 돈을 못 벌어서 이렇게 빚에 시달리고 고생하잖아요”라고 불평했습니다.
한번은 그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저씨가 해수욕을 갔다 왔는데 해수욕장에서 피부가 새까맣게 타서 왔다고 그 아주머니가 남편을 타박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해수욕장에서 어떻게 안 탈 수가 있어?” 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나무 그늘에 좀 앉아있지?”라고 대꾸를 하더군요. 그러자 남편이 “해수욕장에 나무 그늘이 어디 있어?” 하면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남편을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를 자기가 다 해결하려 하니까 자기가 빚내서 이자 갚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급료를 받아도 잘 사는데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사니까 늘 어려웠던 것입니다.

남편을 존경하는 아내

반면에 자기 남편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부인도 있습니다. 한번은 한 신혼부부 집에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 집 커피 잔이 다 달랐습니다. 제 아내가 “커피 잔이 왜 이렇게 다 다르냐?”고 물어보니까 그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한 뒤 부부가 커피 잔을 사러 갔답니다. 그 부인은 커피 잔을 세트로 사고 싶었는데 남편이 돌아다니면서 각각 다른 잔으로 골라서 그렇게 샀다는 겁니다. 그 부인이 “내 기준에는 안 맞지만 남편 기준으로 살려고 마음먹었어요. 남편이 옳을 때만 아니라 틀릴 때도 순종하면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커피 잔을 그렇게 사 놓고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그 집밖에 없을 것 같은데도 그 부인이 그렇게 남편을 따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우리 남편에게 말하면 잘 해결해 줄 거야. 우리 남편은 훌륭해’ 하며 남편에게 맡기고 자기는 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도 남편을 못 믿는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쉼을 얻지 못합니다. ‘저 양반은 아무것도 몰라. 저 양반 때문에 우리 집이 안 돼. 저 양반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해.’ 그런 마음을 가진 아내들은 모든 것을 남편에게 못 맡기니까 어려운 문제를 다 자기가 지고 살면서 마음에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마음이 대범한 사람은

저는 어제 IYF 영어말하기대회 결선에서 축하메시지를 전하면서 어떤 형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형제는 대구공고 전기과를 다녔는데 짧은 기간 동안 우리 집에 있었습니다. 이 형제가 공고를 졸업한 뒤 구미의 큰 회사에 전기 가설을 해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한번은 LG회사가 구미에 공장을 설립하는데 이 형제가 전기설비를 따내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커다란 트랜스를 옮겨야 했는데 몇 톤씩이나 되는 트랜스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 전문으로 옮겨주는 회사에 의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실수해서 물건을 떨어뜨리면서 인부 한 사람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 형제가 굉장히 난감해졌습니다. 그 형제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지만 그 회사가 너무 영세해서 죽은 인부에 대한 장례비를 보상해 줄 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아무 말도 없이 자기 돈 1억 6천만 원을 들여서 장례비를 지불하고 죽은 사람에 대한 보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형제의 회사도 그렇게 여유 있는 회사가 아니라서 현금 1억 6천만 원을 빼내고 나니까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전기설비를 그 사장에게 맡기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소문이 구미공단에 다 퍼졌습니다. 그 후 바로 IMF가 터졌습니다. IMF를 맞으면서 많은 전기설비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구미공단에서 전기설비가 있을 때마다 그 형제에게 일을 다 맡기니까 사고처리에 썼던 1억 6천만 원을 금방 만회하면서 형제의 회사가 커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도 그렇게 회사를 경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돈을 다 들여서 보상해주려고 하면 보통 사람은 ‘내 회사에서 1억 6천만 원을 빼면 다음 달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주고 다음 달 납품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때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이득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그 형제와 같은 결정을 내리려면 대범해야 가능합니다.

마음에 쉼을 가져다 주고

저는 구원받고 난 뒤 제가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내게 닥친 크고 작은 많은 문제가 전에는 내 문제였는데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 생긴 후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되면서 좁았던 마음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못났더라도 남편을 믿는 여자는 행복할 수 있지만, 남편이 잘났더라도 믿지 못하는 여자는 마음에 쉼이 없기 때문에 늘 근심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삽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아니라 남편이나 부모, 형제, 친구를 믿는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음 그 자체는 우리 마음에 쉼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면 건강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이 건강하려면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듯이 정신세계에도 운동이 필요합니다. 정신적인 운동은 하기 싫은 것, 부담스러운 것, 힘든 것을 한 번씩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면서 마음이 튼튼해집니다.
얼마 전 있었던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조승희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이 폭력과 마약, 도박과 이성에 대한 충동을 느끼지만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는 반면, 정신이 약한 사람들은 못 이겨내니까 거기에 사로잡혀 마약이나 도박을 하게 되고 권총으로 살인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담대해지려면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 영양분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도 영양분이 필요한데 그 영양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늘 하고 싶은 일, 하기 좋은 일, 부담스럽지 않은 일만 하는 사람은 마음이 약합니다. 어떨 때는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그 일을 감수하고, 나와 상관없지만 발 벗고 나서서 일도 해보고, 어려운 일도 한두 번 해 보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IYF 대학생들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미국도 가고, 독일도 가고, 영국도 가지만 아프리카를 다녀온 학생들은 유난히 돋보입니다. 똑같이 1년 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와도 아프리카에 다녀온 대학생들은 가기 전과 비교해서 굉장히 달라지고 새로워진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에서는 배고프거나 춥거나 헐벗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가면 배도 고프고, 말라리아에도 걸리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마음이 강해지고 대범해지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잘 사는 나라를 주로 지원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아프리카를 지원해서 고민입니다.

자기를 믿었던 바리새인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9~11)
오늘 읽은 누가복음 18장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 바리새인의 기도 속에서 자신을 믿고 자기의 선한 행위를 의지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이 이야기를 분석해 봅시다. 바리새인은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토색, 불의, 간음만 죄입니까?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은 왜 안했습니까? 거짓말은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부모를 잘 공경했습니다”라는 이야기도 안 한 것은 그런 죄는 지었다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인간의 기준

개미의 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개미가 다른 개미에게 “내 다리는 네 다리보다 굵어”라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사람이 볼 때는 똑같습니다. 저는 키가 좀 작은 편인데, 우리 교회에서 키가 제일 큰 사람도 저보다 1m 더 크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뚱뚱해도 저보다 몸무게가 100kg 더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선하고 저 사람은 악하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바리새인이나 세리나 차이가 없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보니까 바리새인이 ‘나는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은 죄를 전혀 안 지었습니까?
객관식 문제에서 백 점 맞기도 어렵지만 영 점 맞기도 어렵습니다. 영 점 맞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모든 정답을 피해가야 하기 때문에 백 점 맞을 자신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선을 행하기도 어렵지만 악만 행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각자 다른 선의 기준을 갖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악을 행했기 때문에 모두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합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바리새인은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나는 불의, 토색,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세리는 어땠습니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우리 인간은 모두 더러운 죄인인데 그 사실을 모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 두어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나갈 때 자기를 믿고 갔지만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우리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도달하니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조금 더 있으면,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앞으로 배부를 수 있고 좋은 옷을 입고 잘 살게 될 것인가? 아니면 굶어죽을 것인가?’
그 전에는 한 번도 그런 결정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굶어죽을 위치에 도달하니까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기가 거기에 있다가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니까 자기가 있었던 그곳에 기대를 두지 않고 유일한 살 길인 아버지께로 마음이 돌이켜졌습니다.

신앙의 단계

사람들이 처음에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날 때의 마음 또는 바리새인처럼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을 하지만, 나중에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가진 마음 또는 세리처럼 자기의 행위나 실력을 믿지 않고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얻기 원하는 마음으로 변합니다. 신앙에는 이렇게 단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신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되겠지. 성경 읽으면 되겠지. 착하게 살면 되겠지’ 하고 자기를 믿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생각해 보면 금방 ‘나는 선하지 못하구나. 이렇게 해서는 천국 못 가겠구나. 나는 멸망하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바리새인은 아직 자기를 믿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선한 줄 알고 세리와 죄인을 비방하고 판단하지만 세리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바리새인이 가진 마음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와 같은 마음이고 세리가 가진 마음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마음입니다.

의로움을 얻은 세리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눅 18:14) 성경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진짜 자기의 죄와 무익함을 깨닫고 자기를 돌이키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십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깨끗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남보다 선하거나 정직하게 살아서 되는 게 아닙니다. 남보다 노력하고 잘나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저도 결혼한 뒤 처음에는 제 아내도 잘났고, 저도 잘났으니까 서로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옳은데도 제 아내가 저를 따르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도, 제 아내도 조금씩 마음을 바꾸어 갔습니다.
어느 날 제 아내가 저에게 “내가 처음부터 당신 말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농담이라도 당신 말을 그대로 따르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정이 점점 더 화목해지고 좋아졌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부부가 처음에는 서로 좋아서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살면서 자기가 나타나면서 부딪힐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둘째 아들처럼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로 더 가까워집니다. 아내가 뉘우칩니다. ‘남편이 옳았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남편도 생각합니다. ‘내가 늘 내 주장만 했는데 이건 아내 말이 맞구나.’ 부부가 서로 뉘우치면서 화목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이런 과정을 통해 화목해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도 처음에는 내가 옳고 잘나고, 내가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믿었는데 그 마음이 다 무너지면서 ‘아, 하나님이 옳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뉘우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집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처럼 우리 스스로 믿는 마음이 무너져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 인생 전부를 맡으셔서 추한 것을 깨끗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선이나 노력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나는 무익하고 부족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의 문제도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모든 일이 아름답게 진행되면서 은혜와 복을 얻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2007.5.13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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