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입으려고 마음을 바꾼 불의한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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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으려고 마음을 바꾼 불의한 청지기
2007.5.6 주일 낮 설교 (요약) - 15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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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집회를 하면서 저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둘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누가복음은 ‘회개의 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키는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돌이킨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마음을 돌이키면 그때부터 신앙은 쉽고 재미있고 즐거워 집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나서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재산을 다 허비하다가 돼지우리로 내려갔습니다. 자기가 배를 채워보려고 깨끗해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그 마음 하나를 돌이키면서부터 이상하게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돌이키니까 금방 제일 좋은 옷을 입게 되고, 손에 가락지를 끼게 되고, 발에 신을 신게 되고, 살진 송아지를 먹으며 아버지와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중국산 새우젓 때문에

한번은 우리 선교회의 사역자들이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려고 충북 영동 송호솔밭에 모였습니다. 수양회가 시작되기 전 한 주간 오전에는 모여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오후에는 풀을 베고 소독하고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식당 짓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새로 담근 김치를 먹었는데 김치에서 이상한 맛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모들과 제 아내를 불러서 김치 맛을 보라고 했더니 아무래도 김치 맛이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수양회 때 먹을 김치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원인을 분석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드디어 김치 담글 때 넣은 젓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치를 담글 때 인천에서 산 새우젓을 넣었는데, 알고 보니 젓갈 장수가 중국산 새우젓을 국산 새우젓으로 속여 판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산 새우젓에서만 나는 특이한 맛이 김치에 배어 김치 맛이 엉망이 된 것입니다.  

탕감 받은 젓갈 장수

결국 새로 김치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름수양회 때 수천 명이 먹을 김치를 다시 담그려고 하니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젓갈 구매를 담당한 형제가 그 젓갈 장수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왜 중국산 젓갈을 국산이라고 속여 팔아요? 김치 다 버렸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다 물어내세요!” 증거를 들이대니까 그 아주머니가 꼼짝 못하면서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럼 얼마를 물어내면 되겠습니까?” “2천만 원 손실이 났으니 2천만 원 물어내세요.” “2천만 원 물어주지요.”
저녁에 다시 구매 담당 형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2천만 원만 받아야 되는 게 아니라 배추 값까지 계산하면 5천만 원은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2천만 원까지는 물어줄 수 있지만 5천만 원은 죽어도 못 물어주겠다고 합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젓갈 장수가 1년 동안 젓갈 팔아서 2천만 원 벌 수 있겠나? 그 아주머니가 우리를 속이긴 했지만 뉘우치고 있는데 우리 선교회에서 그 돈 안 받는다고 해서 망할 것도 아니니 탕감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김치 새로 담글 준비가 이미 돼 있으니까 우리 그냥 탕감해주자”고 형제들에게 말했더니 그러자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아주머니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아주머니에게 탕감해 주기로 했으니 2천만 원 안 내도 됩니다.”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아주 고마워하면서 수양회에 참석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연결되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2천만 원으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여러 명 얻게 된 것입니다.

사단이 주는 마음은

중국산 새우젓이 국산 새우젓과 다른 맛을 내듯이, 교만한 사람은 그 삶 속에서 교만한 마음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하던 영적인 사람에게도 교만한 마음이 들어오면 그의 말과 행동에서 교만한 마음이 나타나면서 하나님이 더 이상 쓸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에 사단의 생각을 넣었습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뱀이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1~5)  
하와는 그냥 뱀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하와의 귀를 통해서 마음에 들어가는 동안에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욕망, ‘내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먹으면 죽는다고 거짓말을 하셨구나’ 하는 불신, ‘하나님을 대적하더라도 저걸 따먹고 하나님이 되어야지’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사단의 그 마음은 우리를 불안하고 두렵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만한 생각이 일 때마다

제가 선교학교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선교학교는 학교 정원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봄이면 매화가 피고 가을에는 국화 향기가 가득 찼습니다. 또 큰 히말라야 삼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그늘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그 나무 그늘 밑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기도를 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기도가 안 되고 잡다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어제 형제들끼리 뻥튀기를 먹으면서 어떤 형제에 대해 험담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가 다른 형제 험담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 일을 한두 번 겪고 나니까 그 뒤에 다른 형제를 나쁘게 말하려 하다가 깜짝 놀라서 입을 막곤 했습니다.
한번은 부산 KBS홀 집회를 마치고 대전으로 올라오는 차를 타면서 ‘이번 집회 너무 좋았다. 내가 설교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했을 때 어려운 문제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기뻐했는데 어려운 문제 앞에서 너무 암담했습니다.
주님이 제게 ‘너, 오늘 설교 잘했다고 생각했잖아. 네가 잘하면 이 문제도 한 번 해결해 봐’라고 하시는 것 같아 제 마음이 다 녹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제가 진짜 교만했습니다’ 하고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제가 어느 날 종을 한 사람 샀다고 합시다. 종이 앞으로 저와 같이 살면서 고달프지 않으려면 자기 마음을 다 비우고 주인인 제 말과 행동을 통해 제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종이 ‘우리 주인이 이것은 원하시고 이것은 싫어하시겠지’라는 자기 추측과 생각으로 살면 번번이 저와 부딪히게 됩니다. “종이라는 놈이 네 멋대로 살아?”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도 그렇습니다. 그냥 ‘연보 많이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지, 착한 일 하면 기뻐하시겠지,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면 기뻐하시겠지’라는 생각을 다 버려야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눅 16:1)
청지기는 주인의 많은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재산을 다 맡겨 놓았는데, 이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오래 관리하다 보니까 주인의 것이 자기 것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늘 큰소리쳤습니다.
“빚 안 갚아?” “청지기님, 제발 일 년만 기다려 주세요.”  “일 년, 이 년 하다 늙어 죽을 거야. 빨리 빚 갚아!” 거드름을 피우면서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주인의 귀에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가져가시면

여러분, 이 비유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금 덩어리나 돈 보따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모두 빈손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여러분이 음식을 먹고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사는 것은 세상 살 동안 하나님이 잠깐 맡겨 놓으신 것이므로 여러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재물이 많다고 해서 사치하고 낭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재물을 맡기셨으니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재물을 관리하는 자세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계속 재물을 맡기십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청지기를 불렀습니다. “내가 들어보니 네가 내 재산을 네 멋대로 관리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네 보던 일을 계산해. 이제 청지기 직분을 박탈할 거야.”
주님이 때때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지혜를 맡겨 놓았는데 그 지혜를 가지고 네 멋대로 썼지. 내가 너에게 건강한 몸을 줬는데 그 몸 가지고 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았지. 내가 너에게 재물을 맡겼는데 그 재물을 가지고 네 멋대로 살았지. 이제 내놔” 하고 주님이 뺏으면 여러분이 아무리 건강하고 잘나고 똑똑하고 재산이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바꾼 청지기

청지기가 ‘주인이 내 직분을 뺏으면 내가 뭘 할까?’ 생각을 했지만 길이 없었습니다. 길이 없으니까 청지기가 마음에 지금까지 전혀 갖지 않은 다른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빚진 사람들에게 가서 행패를 부리고, 큰소리 쳤는데, 내가 이제 살 수 있는 길은 빚진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길밖에 없다. 주인의 빚을 탕감해주면 내가 주인에게 쫓겨나도 그들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 나를 도와줄 것 아니냐!’ 청지기가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어느 날 청지기가 서류가방을 들고 빚진 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계십니까?” “아이고, 청지기님 오셨습니까? 들어오시죠.” 빚진 자들이 청지기에게 쩔쩔매는 겁니다. “우리 주인에게 빚이 얼마나 있습니까?” “예, 기름 백 말입니다.” “서류 가지고 와 보세요. 음, 기름 백 말이라고 되어 있네요. 빚이 많은데 어떻게 갚을 수 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그 서류, 줘보세요. 서류를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기름 오십 말 빚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청지기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 사람 있고 재물 있지, 재물 있고 사람 있나요? 오십 말이면 괜찮죠?”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어허, 이 시간부터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기름 오십 말 빚졌습니다. 백 말이라고 쓴 서류는 찢습니다.”
“아이고, 청지기님. 저를 살리셨습니다. 제가 기름 백 말을 갚으려면 재산 다 팔아도 안 되는데 이 은혜는 한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너무 교만했습니다. 내 재산도 아닌 주인 재산을 가지고 빚진 사람들을 괴롭히고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오늘 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잘 해봅시다. 서로 도와가며 삽시다. 그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런 자리에 있을 때 이렇게 안 도우면 누가 돕겠습니까? 자 이제 오십 말입니다. 오십 말.”

빚진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청지기가 또 다른 집에 찾아갔습니다. “계십니까?” “아이고, 청지기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장부 좀 정리하러 왔는데요. 우리 주인에게 빚이 얼마나 있죠?” “밀 백 석입니다.” “백 석이나 되니 참 힘드시겠네요. 옛날 서류를 없애고 새로 만들어야하는데 사인하세요. 우리 주인에게 밀 팔십 석 빚진 걸로 하면 되겠죠?” “아닙니다. 백 석입니다.” “ 그러지 말고 팔십 석 빚진 걸로 하세요. 그리고 여기다 도장 찍어요.”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어허, 내가 볼 때는 팔십 석도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백 석을 갚겠어요?
“한평생 벌어도 갚을까 말까한데 아이고, 고맙습니다.” “어허, 원래 팔십 석이에요, 팔십 석. 서류에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알았어요?  따라해 봐요. 팔십 석.” “예, 팔십 석, 아이고 고맙습니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청지기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전에는 주인의 재산으로 거드름도 피우고 큰소리치고 교만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빚진 자들에게 은혜를 입고 싶은 마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기 위해

저는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다리 놓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리를 놓을 때 다리 난간을 조여야 하는데 옛날에는 볼트와 너트가 귀하니까 쇠못으로 조였습니다. 그런데 그 쇠못을 그냥 때리면 힘이 드니까 벌겋게 달굽니다. 다리 밑에서 불을 붙여가면서 쇠못을 벌겋게 달군 다음 집게로 집어가지고 “올라갑니다”라며 던지면 위에서 쇠못이 올라가다가 떨어질 때 집게로 잡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보다가 학교에 지각을 하곤 했습니다. 쇠못을 그냥 박으면 부서지지만 벌겋게 달구면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낫이나 칼, 호미를 만들 때 벌겋게 달궈가지고 망치로 때리는 대로 모양이 나옵니다.
사람에게 있는 교만한 마음을 꺾으려고 하면 싸움과 문제가 일어나지 그 마음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낮추십니다. 마음이 낮아지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기가 너무 편안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낮추기 위하여 질병, 어려움, 사업의 실패, 이혼, 자식이 애를 먹이는 일, 부부간의 불화도 주십니다.

은혜 외에 다른 길이 없어서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 재산은 하나도 없으면서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교만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했을 때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뺏으면 내가 어떻게 살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큰소리를 쳤는데, 이제 다른 길이 없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가서 은혜를 입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어이, 김 서방. 언제 갚을 거야?” “일 년만 기다려 주십시오.” “늘 일 년, 일 년. 주인이 당장 받아오라고 그랬어.” “아이고, 죄송합니다. 여기 술 한 잔 드시고 주인에게 부탁해서 일 년만 연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어허, 이 사람, 당장 갚아! 알았어?”
이렇게 거들먹거리고, 교만하던 사람이 빚진 자들에게 은혜를 입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죠?” “예, 기름 백 말입니다.” “오십 말 해요. 오십 말.” “아이고, 청지기님.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어허, 괜찮아요. 우리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죠.”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근본 자기 마음을 버려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하려고 하면 하나의 과정을 넘어야 합니다. 사단이 주는 마음의 세계에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육신적이고 교만하고 추하고 더럽습니다. 그 마음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단으로부터 받은 마음을 토해내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 살면 여러분 마음에 인자와 사랑, 자비와 기쁨, 그리고 복이 넘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도 자기 자신만 믿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다가 어느 날,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삶이 실패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라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 제가 허랑방탕하게 지냈습니다. 기생집에 가서 늘 술만 마셨습니다” 하며 행위를 뉘우쳐야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가진 이 마음으로 살면 안 되겠구나’라며 근본 자기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둘째 아들이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술 마시고 방탕하게 산 것만 뉘우치면 얼마동안 괜찮다가 다시 재물이 생기면 술 마시고 싶고 허랑방탕하게 살고 싶을 겁니다.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대목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기만 믿고 큰소리치다가 마음을 바꾸었고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큰소리치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받은 마음은 사단에게서 받은 마음이기 때문에 늘 미움과 욕망, 음란함과 거짓, 가증한 것이 일어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자꾸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16장 후반부에는 부자 나사로에 대해 나오는데, 부자는 지옥 가서도 마음을 못 바꾸고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당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우리 마음으로 살지 맙시다. 자기가 똑똑하고 잘난 줄 아는 마음, 자기 생각과 마음으로 사는 삶을 다 버리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

은혜를 입으려는 마음으로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어떻게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청지기가 길이 없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로 빚진 자에게 가서 은혜를 입으려 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입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둘째 아들은 그 마음을 바꾸기가 싫어서 돼지우리까지 내려가서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에 마음을 바꿔서 은혜를 입으려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아왔을 때 둘째 아들을 위해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는 등 모든 것이 은혜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생각과 방법을 따라 사는 삶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려는 마음으로 바꾸면 신앙생활이 너무나 쉽고 재미있으며,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 2007.5.6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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