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비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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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비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2007. 4. 15 주일 낮 설교 (요약 )- 15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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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이 전에 없던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 가시는 것을 느낍니다. 전에는 제게 영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육신의 욕구나 안일함, 즐거움이 제 마음을 이끌고 갔지만, 그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마음의 세계가 형성되면서 하나님이 마음을 강하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때 매우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3주간 남미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성경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지난 3월 초에 창세기를 읽다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1~2)는 대목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으니까 이런저런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제 마음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땅이 혼돈하면 어떠냐? 하나님이 계시는데. 좀 공허하면 어떠냐? 만물을 창조한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데. 흑암에 갇혀 있으면 어떠냐? 빛 되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눅 16:19) 여러분, 우리는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자동차도, 아파트도, 옷도, 음식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육체의 욕구와 만족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눅 16:20~21)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의 환경이 너무 다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 16:22~23)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사한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 즉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어느 날 저는 제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시속 100km로 달리다가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설 것입니다. 자동차 바퀴도 여러분이 핸들을 움직이는 각도만큼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배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근래에 내가 밥을 많이 먹는구나. 밥 먹는 양을 줄여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밥맛이 얼마나 좋은지 밥상 앞에 앉으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으면서 그냥 먹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숟가락을 놓고는 “아휴! 너무 많이 먹었다”며 후회를 합니다.
밥을 먹고 난 뒤 군것질하는 사람들을 보면 ‘배 나온 사람이 저렇게 체중관리를 안 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위장도 좋아지고 심장도 좋아지면서 저도 밥맛이 그렇게 좋아졌습니다. 욕망이 강하게 일어날 때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술이나 담배를 끊는 사람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높았던 부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눅 16:19) 여러분, 잘 살고 부유하면 마음 꺾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부자가 마음 꺾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에게 궁색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할 일도 없이 그저 자기주장대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정말 훌륭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모아서 설교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뒤 저는 ‘난 훌륭한 목사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하지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일어날 때 연보를 잘하고 교회 봉사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 마음을 꺾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은 다 싫어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세계에서 떠나있으면서도 자기 세계 속에서 그냥 구원만 받고 천국에 가기를 원하지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깐 대형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듣기에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저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내가 살인강도나 사기꾼이다’라고 생각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기꾼이 들어도, 살인강도가 들어도 듣기 좋은 설교였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살인강도나 사기꾼 짓을 그만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구약 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등을 읽어 보면 심판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합니다. 성경에서는 ‘네 영혼이 잘되듯이 범사에 네가 잘되기를 원하노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내 영혼이 잘됩니까? 마음을 바꾸어야  잘됩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마음

누가복음 16장의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앞에 앉아서 음식을 얻어먹었습니다. 아침에 부잣집의 하인이 지나가면 메뉴판 보고 “이 음식 가지고 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냥 빵 조각 하나 던져주면 그걸 주워 먹었습니다. 고기토막 떨어뜨려 주면 고기토막 먹고, 뼈다귀 떨어뜨려 주면 뼈다귀에 붙은 고기를 뜯어먹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안 꺾으려 해도 안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마음을 한 번도 안 꺾고 자기 고집대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돈이 많으니 마음 꺾을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옥에 가서도 전혀 마음을 꺾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이 부자가 세상에서 살았을 때와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목마른데 물 한잔 떠 와”라는 식으로 자기 주관과 생각으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다시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들을찌니라.” 그런데 이 부자는 다시 “그렇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대꾸합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맞추어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연보를 많이 하거나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같도록 맞추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오는 마음이 없습니다. 성도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으니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일을 이끌어 나갑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교회에 와서 성경을 배우면 ‘내가 지내온 삶이 악하고 더러웠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마음을 낮추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부러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거나 병들게 하지 않아도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됩니다.

교회만 나가면 천국 가나?

여러분, 교회에 와서 성경말씀 듣고 자신을 발견해서 마음을 낮추는 것이 큰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복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부유해도 마음을 낮추고, 지위가 높아도 예수님을 높이면서 그분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마음을 꺾지 못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오늘날 참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 좌석을 통해서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다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교인들이 안심하고 있다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연보만 내면 만족해하는 타락한 목사가 많습니다. 그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 예수 믿는 것이고, 예수 믿으면 다 천국 갑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간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 교회에 나가면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이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만 죄 사함의 확신이 없다면 교회에 나와도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 죄를 씻으시고 우리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그 마음을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에도 죄 사함의 확신이 오게 되어 있는데,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는 죄 사함의 확신이 안 옵니다.

마음을 낮춘 거지 나사로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0~21)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나사로가 선한 일을 했다거나 믿음을 가졌다는 등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성경에 부자에 관한 내용은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왜 나사로의 이야기는 더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사단이 우리 마음을 높이면 우리는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지면 자기 마음을 꺾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바보들이 마음을 꺾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사람이 마음을 꺾고 삽니다. 팔이 안 꺾이고 허리가 안 굽혀진다면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듯이 마음도 꺾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마음이 다 꺾여서 이제 나사로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에 나사로의 마음을 표현해야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면

우리 마음이 주님과 한마음이 되면 주님께로부터 평안이 흘러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는 말씀처럼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평안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의 평안과 기쁨,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흘러들어오면 그 사람은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세계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것은 정말 세상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다 물리치시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시듯이, 제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 거짓과 미움이 오지만 제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되면 잔잔한 사랑이 와서 그것들을 물리쳐 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평안과 사랑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서 봄 햇살에 눈 녹듯이 내 마음에 있는 미움, 두려움, 고통, 욕망, 교만이 그냥 녹게 됩니다.

마음을 낮출 때 복이 임하고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지만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는 복을 입을 수 없습니다.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낮아져서 예수와 마음이 연결될 때 복이 옵니다. 우리의 뻣뻣한 마음, 육신의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하나님이 낮추어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도, 슬픔도, 고통도, 괴로움도 주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처럼 거지가 되거나 38년 된 병자처럼 되었을 때 그들은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안 낮추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하인들이 간곡하게 얘기하자 마음을 낮추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마음이 높아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갔다가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자 해도 배를 채울 수 없는 형편에 넣으시니까 그 마음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입은 까닭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재앙을 내리거나 가정 파탄이 있게 하시거나 사업이 무너지게 하실 때 마음을 낮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낮추면 여러분 삶에서 재앙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 여러분을 병들게 하지 않아도, 사업을 망하게 하지 않아도, 어려움을 주지 않아도 마음을 낮추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다윗은 어느 날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다윗이 어떻게 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가 왕이지만 도 망가면서 하인들에게 “가벼운 신발 준비해라. 뭐 준비해라” 하지 않고 다 버리고 갔습니다. 감람산 길을 맨발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후궁들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교만해서 저렇게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살았구나!’ 하면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꺾으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흙이요 무익한 인간”

은혜를 받는 길에는 ‘나는 흙덩어리인 무익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년이 지나면 여러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모두 흙이 될 것입니다. 흙이 되면 그 흙을 밟고 지나가도 아무 소리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흙으로 인간을 만들어서 지혜와 생기를 주시니까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욕망을 이루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나님이 그런 인간들을 보실 때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우리는 흙입니다. 겸비해야 합니다. 내가 무익하고 악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증되고 거짓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간은 절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이지 여러분이 잘나거나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거지 나사로가 마음이 낮아져서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었으니까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자의 마음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과 다른 그 마음이 멸망당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마음을 드려야

여러분이 바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연보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고집과 생각대로 살았다면 교만해서 패배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십시오.
저는 종종 기도하다가 제 자신을 바라보면 제가 얼마나 못나고 추한 인간인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40년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악하고 더럽고 추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게 당신의 마음을 넣어주지 아니하시면 저는 욕망을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인간입니다.

십자가에서만 죄 사함이

지난 주일이 부활주일이었는데저는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에서 필리핀 Good News Corps 단원이 올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을 재연했답니다. 등에 피가 나도록 자기를 채찍으로 때리며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실제 못 박혀서 매달리기도 한답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면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쁨을 얻는다고 합니다.
Good News Corps 단원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려온 사람과 대화를 했답니다. “죄 사함을 받으셨나요?” “아직 못 받았어요.”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겪습니까?” “그렇게 하면 내 죄가 좀 가벼워질 것 같아서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단이 귀한 복음의 이야기를 마음에 받지 않고 우리가 하는 행위로 위로를 얻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고 채찍에 맞아서 죄를 가볍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헌금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으로 죄를 씻지 못합니다.
죄는 예수님만이 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데 인간들이 교만해서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 아닌 자기 생각에 맞는 방법으로 죄를 가볍게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울고 회개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씻어서 눈처럼 희어졌다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아 마음은 여전히 죄 속에 빠져 있습니다. 주를 믿으려면 나를 믿고  의지하는 데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마음이 흐를 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주님이 부활하셨는데 그 주님 앞에서 “주님, 당신이 옳습니다.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하며 마음을 꺾고 주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주의 말씀 속에 있는 주의 마음이 여러분 마음에 흐를 것입니다. 주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에 흐르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평안과 기쁨,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머물러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이 그 평안과 기쁨, 사랑에 젖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사로처럼 영광스러운 곳으로 여러분을 이끄실 줄 믿습니다.
부자는 너무 부유했기 때문에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부유할지라도 마음을 낮추십시오. 좋은 직장이 있을지라도 겸비하십시오. 주님을 여러분 위에 두시고 마음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러면 주의 마음이 여러분 속에 흐르고 주의 평안이 여러분 마음을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2007. 4. 15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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