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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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한 「베드로」
2007. 4. 5 남미 페루 대전도집회 설교 (요약) - 14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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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예수님을 제 마음에 모셨는데 그동안 예수님은 늘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제가 대도시에 살든지 시골에 살든지, 군대에 있든지 외국에 있든지, 비행기를 타든지 배를 타든지 늘 함께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저에게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겼지만 예수님이 계시니까 그 문제가 매우 은혜롭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정말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통신병으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모든 군인들은 기본 훈련을 받습니다. 총을 쏘고 적진에 뛰어 들어가고 철조망 밑으로 통과하고 수류탄을 던지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훈련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 먹고 뛰면 금방 배가 쑥 꺼지니까 곧 점심이 생각나고 점심 먹으면 또 저녁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 찹쌀떡!”

군대의 훈련소에는 식당 옆에 ‘PX’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팝니다. 한국에는 찹쌀로 만든 떡이 있습니다. 찹쌀은 보통 쌀과 다르게 아주 차진 쌀인데 그것으로 밥을 합니다. 그런 후 그 밥을 큰 절구에 넣고 계속 찧습니다. 그러면 밥이 아주 차진 떡이 됩니다. 그 안에 팥을 삶아 설탕을 섞어 넣으면 찹쌀떡이 되는데 정말 맛 있습니다.  
식사를 하고 PX에 가면 찹쌀떡을 큰 판에 가득 쌓아두고 팝니다. 다른 군인들은 찹쌀떡을 돈 주고 사 먹지만, 사실 저는 입대할 때 돈을 안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찹쌀떡이 너무 먹고 싶어도 군침을 삼키며 구경만 했습니다. 훈련 시간이 되어 PX를 나오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는데 “아~ 하나님, 찹쌀떡” 하고 말했습니다.

동료 대신 총을 쏴 주고

그날은 사격훈련이 있었는데 총을 쏠 때 과녁에 총알이 정확하게 들어가야 됩니다. 총을 잘못 쏘는 훈련생들은 대구에 있는 와룡산이라는 높다란 산을 오리걸음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됩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한 사람은 총을 쏘고 다른 사람은 탄피를 줍고 그 다음엔 교대로 합니다. 중대장님이 사격개시 명령을 내려서 제가 사격을 했는데 총알이 정확하게 과녁 가운데 맞아서 합격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 친구가 총을 쏠 차례인데 이 친구가 쏘질 못하는 겁니다.
제가 “야, 빨리 쏴”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벌벌 떨면서 “야, 큰일 났다. 나 오늘 죽었다. 난 총 쏘면 총알이 어디로 날아 갔는지 흔적이 없다. 나 오늘도 오리걸음으로 산꼭대기에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라고 했습니다. “내가 대신 쏘아 줄까?” “네가 쏴줄래?” “그래 쏴줄게.” 그래서 제가 또 다시 쐈는데 합격이 됐습니다. 그 친구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야, 옥수야 고맙다.”  

드디어 찹쌀떡을

사격훈련이 끝나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저랑 같은 조가 되어 훈련했던 그 친구의 형이 장교인데 면회 와서는 그 친구를 PX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그 친구가 다시 내무반으로 왔습니다. 형이 “왜 혼자 왔어? 넌 친구도 없어? 친구 데리고 와” 해서 내무반에 와서 보더니 저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형이 “뭐 먹을래?” 하기에 단번에 “찹쌀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찹쌀떡이 있는 큰 판을 가져다가 저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찹쌀떡을 먹는다기보다 뱃속에 다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너무 부른데도 자꾸 손이 갔습니다. 그 장교가 저에게 “괜찮겠나, 괜찮겠나?” 하고 자꾸 물었습니다. 저도 ‘이러다 배 터져 죽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꾸 손이 갔습니다. 결국 배를 움켜쥐고 내무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잠들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낮에 “하나님, 찹쌀떡!” 했는데 저에게 찹쌀떡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찹쌀떡을 주시려고 그날 그 친구하고 같이 총을 쏘게 하셨고, 그 친구 형님이 면회를 오게 하셨고, 그 친구 형님이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셨군요.’ 하나님은 항상 저와 같이 계시면서 기도만 들으실 뿐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것까지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날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대신해 주시니까

저는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께 수없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도 빠짐없이 제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면서 저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신앙은 어려운 게 아니라 너무너무 재미있고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하거나, 선하거나, 추하거나, 깨끗하거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여러분 속에 일하시면, 아무리 더러운 죄라도 아주 쉽게 깨끗해집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이 더러운 돼지우리에서 아무리 더러운 옷을 입고 와도 아버지가 그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히니까 아들이 깨끗해졌습니다. 그 둘째 아들처럼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깨끗하게 해주시면 여러분은 깨끗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흘러받아야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죄가 자꾸 우리를 끌어당기면 우리는 끌려가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이기지 못하니까 죄를 짓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까 슬픔이 오면 슬픔의 종이 되고, 미움을 이기지 못하니까 미움이 오면 미움의 종이 되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니까 두려움이 오면 두려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넘어지지만 예수님은 죄를 이기십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악을 이기시고 모든 것을 이기시는 분입니다. 신앙은 예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에 흘러받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여러분은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슬픔, 두려움과 근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고 복되게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26장의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69~75)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지금까지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깊은 데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래서 베드로는 배와 그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놀라운 주의 역사를 보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놀라운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선생님, 진짜 굉장하시다. 어떻게 저 문둥병자가 낫지? 우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셔! 아직까지 문둥병을 저렇게 고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야. 우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야. 정말 능하신 분이야!’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가시는 것을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정말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가시네!’ 죽어서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걸어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세 번이나 부인(否認)하고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귀한 종으로 만들기 위해 가르쳐 주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야, 오늘 저녁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하리라.” “아니,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왜 주님을 부인합니까? 나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믿는 그대로 될 줄 믿었습니다.
그날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면서 비로소 ‘나는 나를 믿었지만 정말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부인하고 말았구나!’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보호자가 아니야”

우리 교회에는 김성훈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전도사로 있을 때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심해서 병원에 가보니 ‘뇌막염’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열이 나니까 뇌에 압력이 생겨서 눈이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는데 온 가족이 다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방송이 들렸습니다. “김주안 보호자, 원무실로 오세요!” 그 방송을 들으면서 김 목사님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슨 주안이의 보호자야? 내 아들이 열이 나서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어 가는데,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무슨 보호자야? 나는 내 아들을 보호할 수 없어.’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내 아들의 보호자가 아닙니다. 내 아들이 다 죽어가지만 나는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내 아들을 맡깁니다. 하나님이 내 아들의 보호자가 되시옵소서! 하나님이 내 아들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부터 김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병원에 있지만 아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제 아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 전하러 가자!”며 아들을 두고 병원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들

병원에서 주안이 보호자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의사가 화가 나서 “아무리 애가 다 죽어간다고 하지만 한 번도 안 와보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하며 주안이의 눈이 너무 돌출되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아이인데, 의사가 실험을 하기 위해 부모의 동의를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가슴이 아팠지만 ‘내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는데, 사인하자’는 마음으로 사인을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가 주안이의 눈을 수술하기 위해서 왔는데 돌출된 눈이 조금 들어간 것입니다. 다음날은 눈이 더 많이 들어갔습니다. 눈이 들어갔다는 말은 뇌의 압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병이 나아가고 있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5일이 지나서는 완전히 정상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칠레 산티아고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주안이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지키려고 했다면 그 아이는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예수님의 손에 맡겨지면서 예수님께서 그를 온전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여러분의 몸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영혼은 죄의 병에 걸렸기 때문에 죄의 증세인 악한 마음, 미움, 음란한 마음, 거짓된 마음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연보를 드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기 영혼의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노력한다고 여러분의 영혼에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내 영혼의 보호자가 아닙니다. 어떠한 일을 해도 내 영혼을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한다고 해도 내 영혼을 살리기에는 나는 너무 부족합니다. 내가 연보를 드릴 수 있고, 예배에 참석할 수 있고, 기도를 할 수 있고, 주일 예배를 드릴 수는 있지만 내 영혼을 소생시키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제 내 영혼을 주의 손에 맡깁니다. 이젠 내가 손을 놓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내 영혼을 맡아서 정결케 해주시고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나를 불신하고 내가 하는 대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자기 불신’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주님을 따르며 충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자신을 믿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졌을 때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됐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이 땅에 남게 되는데 주님은 베드로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을 거야. 내가 열심히 하면 돼.’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부인하기 싫어도 넌 부인할 수밖에 없어. 네가 주를 버리기 싫어도 버릴 수밖에 없어. 너는 죄를 짓기 싫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기 싫어도 거역할 수밖에 없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습니다. 베드로의 결심은 그날 밤 닭 울기 전에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자신을 발견한 베드로

우리도 똑같습니다. ‘십계명을 지켜야지’ 하지만 그 결심은 무너집니다. ‘십일조를 드려야지.’ 각오하지만 또 무너집니다. ‘주일을 지켜야지.’ ‘죄 짓지 말아야지.’ ‘하나님을 섬겨야지.’ 얼마나 자주 결심해 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결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구나!’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후에 자기 자신이 너무 추하고 부족한 것을 깨닫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나는 안 돼. 내가 무슨 예수님의 제자야. 내가 무슨 사도야. 나는 어부야. 어부로 돌아갈 거야.’ 그동안 맛보았던 주님의 능력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갈 거야.”
그날 밤에 베드로는 놓았던 노를 다시 잡았습니다. 다시 옛날처럼 노를 저어서 바다 깊이 들어가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새벽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고기가 있느냐?” “없습니다.”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라.” 그 말씀대로 베드로가 오른쪽에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습니다. 그물을 끌고 바닷가로 나왔는데 예수님이 아침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님이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이제 자기를 믿을 수가 없으니까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전에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부인했는데, 내가 사랑한다고 해놓고 또 사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이 세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근심이 됐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기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자기의 행위로 나가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맡길 때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속에 역사하셨습니다. 몸은 예전 그대로 베드로의 몸이지만 마음은 베드로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베드로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처럼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처럼 베드로가 또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처럼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만 아니라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그렇게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이 자기가 한 모든 것이 실패임을 깨닫고 아버지께 맡긴 것처럼 여러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손에 맡기면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그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역사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2007. 4. 5 남미 페루 대전도집회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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