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가졌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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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가졌던’ ‘마음’처럼
2007. 3. 30  남미 파라과이 집회 설교 (요약) - 14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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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형제 자매들이 제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에스파냐어를 못하십니까?” 그래서 제가 “부에나스 노체스”(저녁 인사)라고 했습니다. “그 말밖에 못하세요? 다른 말 좀 해 보세요” 하길래 이번에는 “리까사 수까사”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말도 해 보라고 하기에 “베사메 무쵸”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와~” 하고 웃었습니다.
한국에서 ‘베사메 무쵸’라는 노래가 유행해서 그냥 “베사메 무쵸” 하며 따라 불렀지만 그 뜻은 전혀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와~” 하고 웃는 바람에 제가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웃는지 물어봤더니 ‘무지무지하게 키스해 주세요’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신앙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신앙을 거꾸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정말 쉽고 재미있습니다. 몇몇 가지 신앙의 기초만 알면 신앙은 쉬워집니다. 그리고 신앙을 정확하게 알면 성경도 너무 쉬워집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

우리는 오늘 탕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했고 아버지는 재산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재산을 다 팔아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먹고 마시고 여자와 놀면서 돈을 물 쓰듯 썼습니다.
돈이 다 떨어지자 배가 고팠습니다. 할 수 없이 취직을 했는데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주인이 일을 시키면서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사람이지만 삶은 거의 돼지와 같았습니다. 돼지와 같이 먹고 자고 몸에서는 돼지 냄새가 나고….
그러던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부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제 아버지에게 돌아가야겠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구나!’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하는 말이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성경 줄거리입니다.

자신감에 가득 차

둘째 아들은 왜 아버지에게 “내게 재산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까? 여러분, 많은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한 번도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갖고 먼 나라에 갈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기지 않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만 불이 있을 때와 한 푼도 없을 때의 생각은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벤츠 승용차를 타고 갈 때와 돈이 없어서 걸어 갈 때의 마음도 절대 같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갔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저에게 나눠주세요.” “안 돼.” “아버지,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재산을 주세요.” “도대체 재산을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야?” “제가 어린애인 줄 아세요?” “얘야, 돈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야. ” “저는 아버지보다 사업을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 “네가 몰라서 그래.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아버지는 저를 너무 모르세요. 제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데…” “안 돼. 너는 돈 가져가면 금방 망할 거야.” “그렇지 않아요. 자신 있어요.”

몇 가지 잘하다고 해서

여러분, 둘째 아들에게 왜 그 마음이 일어났겠습니까? 아마도 형보다 잘하는 것이 있었을 겁니다. 어느 날 말이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을 잡기 위해 따라갔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뛰어가서 말고삐를 잡았다고 합시다. 그러자 말이 꼼짝 못하고 잡혔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 말 잘 잡는다”고 하면 둘째 아들에게 ‘음, 나는 잘해. 아무도 이렇게 못했는데 내가 말을 잡았단 말이야’ 하는 교만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도 둘째 아들 이 제안을 했습니다. “아버지,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올 것 같으니까 비가 안 와도 잘 되는 땅콩을 심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너 생각 좀 할 줄 아는구나. 그래, 땅콩 한 번 심어보자.” 그런데 진짜 그해에는 비가 안 와서 배추와 무는 말라 죽었지만 땅콩은 잘 자랐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너 진짜 생각 잘했구나” 하는 말에 ‘난 머리가 좋아. 그런데 형은 이런 생각을 못해’ 하면서 점점 교만한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몇 가지 잘하면 ‘나는 잘할 수 있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몇 가지를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해서 절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인간이 어느 정도 행복한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절대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공부만 잘하면 최고인 줄 알지만 공부를 잘하는데도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들은 얼굴만 예쁘면 행복할 줄 알지만 얼굴이 예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대부분 행복할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우리가 성경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대목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갈 때와 다시 돌아올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많은 돈을 들고 아버지가 없는 먼 나라로 갔을 때의 마음이 어땠습니까? 마치 자기가 하면 이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꿈으로 부풀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망하고 배가 고파 돼지우리에서 일하며 죽어갈 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구나! 정말 교만했구나!’ 아버지께 돌아갈 때의 마음은 자기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절망감뿐이었을 겁니다.
여러분,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때 가졌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절대 신앙이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가졌던 마음만 가지면 그때부터 저절로 신앙이 됩니다. 신앙을 하려면 마음의 세계를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잘해야지. 충성해야지. 기도해야지. 술 마시지 말아야지’ 한다면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망과 절망 사이

어느 날 어떤 부자(父子)가 사막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다 지쳐 갔습니다. 아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아빠, 난 이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요. 너무 목말라요. 우린 여기서 죽겠지요?” 아들의 마음은 절망 속에 있었지만 아버지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아들아, 우리는 안 죽어. 오늘 아침에 해 뜨는 것 봤지? 우리는 지금 정확하게 동쪽으로 가고 있는 거야. 사막에는 모래바람이 자주 움직이기 때문에 여러 번 길이 바뀌어. 그러나 우리는 동쪽 끝에 거의 온 거야. 이제 조금 있으면 마을을 만날 수 있어.”
그런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어제도 하루 종일 걸었는데 끝이 어디 있어요? 나를 속이는 거지요? 우리는 죽을 거예요!”
똑같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전혀 달랐습니다. 똑같이 길을 가는데 아버지의 마음에는 힘이 나고, 아들의 마음은 절망스러웠습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이나 소망이 갖추어지면 신앙은 정말 쉽고 재미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계속 길을 걸어갔습니다. “얘야, 조금만 더 걸어봐. 우리는 거의 사막 끝에 온 거야. 내 말을 믿어.” 얼마쯤 걸어가다 아들이 말했어요. “아버지, 저기를 봐요! 이제 우리는 끝장이에요. 무덤을 보세요. 저 사람도 우리처럼 길을 잃었을 거예요. 그리고 목이 말라 헤매다가 죽었을 거예요. 우리도 저렇게 죽을 거예요. 우리가 죽으면 누가 이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지요?”
아들의 마음에 절망이 가득 찼습니다. 아버지가 울부짖는 아들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아들아, 우리는 이제 살았어.” “뭐라고요? 우리가 살았다고요?” “네 말대로 여기 죽은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다 목이 말라서 죽었다고 하자. 그런데 자기가 무덤을 파고 그곳에 들어갔겠니? 누군가 묻어준 사람이 있었을 거야. 무덤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사는 마을과 가깝다는 거야. 이제 우린 살았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똑같은 형편이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소망과 믿음, 사랑이 있으면 천 배, 만 배 더 행복해지겠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절망이 있으면 천 배, 만 배 더 불행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이 많다면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을 사고 좋은 음식을 먹겠지요. 그러나 돈으로 그런 것은 살 수 있지만 믿음이나 소망,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수치로 말해 ‘100’쯤 되는 사람이라고 해봅시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자신이 100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20이나 3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며 늘 마음을 조아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조금만 잘해줘도 “참 감사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500쯤 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500 정도인데 왜 나를 이렇게 대접해?’라는 마음이 들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하는 것을 늘 불편하게 느낍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됩니다.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

둘째 아들은 몇 가지 잘하는 것으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의 말이 들리겠습니까? “아버지는 날 어린애로만 보세요? 전 잘할 수 있어요. 재산을 나눠 주세요.” 신앙에도 그런 마음이 있으면 절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다 망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의 말이 굉장히 잘 들렸습니다.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고 했을 때는 ‘나는 나쁜 인간인데’, “손에 가락지를 내어다 끼워라”고 했을 때는 ‘나는 아들 자격이 없는데’, “발에 신을 신기라”고 했을 때는 ‘나는 맨발로 다녀도 괜찮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했을 때는 ‘아버지,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송아지를 잡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무척 감사하고 기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신앙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사업을 하면 금방 잘 될 것 같았지만 잘 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매사에 기뻐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IYF를 통해 감사를 배우고

한국은 50년 전에 굉장히 가난했지만 지금은 국민 2.7명 당 한 대 꼴로 자동차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1년 동안 버리는 음식이 6조 원 상당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잘 삽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고 더 좋은 것을 달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불만에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국제청소년연합(IYF)에서는 한국의 많은 대학생을 훈련하고 있는데 올해는 700명의 대학생을 아프리카 등 아주 어려운 나라에 단기선교를 보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밥을 먹지 못해서 아이들이 말라가는 것을 봅니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1달러만 있으면 약을 살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어서 약을 사먹지 못해 1년에 수 만 명의 사람이 죽습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면서 감사한 줄을 몰랐구나!’ 그들이 겸손해지면서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식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변했어요.”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게임 중독자, 정신질환자들이 IYF를 통해서 다 변하는 것을 봅니다.

욕구를 자제할 수 있어야

저도 두 아이를 키웠는데, 아이들이 처음에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이스크림, 사탕 정도이지만 자라면서 욕구가 점점 커집니다. 반면 아이들의 요구를 부모가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요구를 못 들어주면 아이들이 부모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차도 못 사주는 무능한 사람’이라며 무시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욕구를 억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저한테 10가지를 요구하면 7가지만 들어주면서 아이들에게 자기 욕구를 억제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아주 어릴 때 욕구를 자제하며 크는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제하는 힘을 기르면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정신질환자들은 보통 남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욕구만 계속 이야기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전혀 안 듣고 자기 욕구만을 주장한다면 그들이 정신질환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만들 때, 손가락이 꺾여지게 만들었습니다. 허리와 팔, 다리도 꺾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밥도 먹지 못하는 불구자가 됩니다. 마음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자기 마음을 꺾을 줄 모르면 마음의 불구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꺾어 보십시오. 삶이 얼마나 편리하고 자유로워지는지 모릅니다.

기적같이 회복된 건강

저는 어릴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군대에 가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하루 종일 달렸는데, 심장에 무리가 오면서 몸에 마비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젊어서 조금 쉬니까 금방 회복이 됐습니다.
하지만 50살이 넘어가면서 심장 나쁜 것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 가서 유명한 심장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심장으로 가는 전기가 옆으로 샌다고 하더군요. 현대 의학으로는 이것을 고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제 몸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려웠던 때는 1999년 페루 리마 실내체육관 집회를 할 때였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하여 단 위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뛰면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내려와서는 대기실 벤치에 누웠습니다.
“아, 하나님!” 하여튼 그날 저는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이구나. 이제 페루에 다시 못 오는구나. 내가 살아서 한국까지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그 해 8월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제 심장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제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해 지금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여러분, 제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제가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닥쳐도 내게 문제이지, 하나님께는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에게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신앙이 안 되는 이유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도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뛰는 말 한 번 잘 잡았다고, 농사 한 번 잘 지었다고 교만했구나. 그랬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썼구나.’ 정확하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18~19)라고 말합니다.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자기가 아무리 깨끗하게 되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시니까 너무 쉽게 깨끗해졌습니다. 둘째 아들이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자기가 배를 채우려고 노력해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시니까 살진 소를 잡아놓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복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안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도 신앙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얘기합니다. “목사님, 저는 신앙이 안 됩니다. 신앙이 왜 이렇게 어렵죠?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점검해 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은 잘합니다. 연보하고 기도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잘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하는 일은 안 됩니다. ‘나는 무엇인가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면 절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가로막는 ‘교만’

여러분, ‘내가 잘한다’는 마음이 들면 신앙이 안 되기 때문에 사단은 여러분을 지옥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너, 이거 참 잘했다. 넌 얼굴이 예쁘네. 너는 공부를 잘해’라고 하면서 우리 마음을 높이는 일을 합니다.
사단이 저에게도 일을 했습니다. 저를 타락시키려고 ‘너, 설교 잘하잖아. 네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어. 진짜 이번 집회 잘했어’라는 마음을 줍니다. 처음에는 사단이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음, 난 잘해’라며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성경이 마음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 전에는 안 그랬는데. 성경이 왜 안 읽히지? 안 되겠다. 기도를 해야겠다.’ “하나님 아버지….” 전에는 기도하는 시간이 굉장히 은혜로웠는데 그때는 엉뚱한 생각만 자꾸 나면서 기도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자꾸 들뜨게 되고 교만해져서 자기가 하고 싶은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둘째 아들이 배가 고프고 굶어 죽을 뻔했을 때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내가 진짜 나쁜 사람이네. 나는 죄가 참 많구나’ 하며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면서 그 마음을 다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둘째 아들의 삶에 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려고 하기 전에 자기 마음을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나는 잘한다’는 마음은 사단이 여러분을 망케 하려고 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때 가진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면 신앙이 안 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의 마음을 가지면 신앙은 매우 쉽습니다. 여러분이 집회하는 4일 동안 행복한 신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7. 3. 30  남미 파라과이 집회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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