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만난 자」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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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만난 자」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2007. 3. 25 주일 낮 설교 (요약) - 14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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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서 제 생각이 깊어지게 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통신훈련소에서 3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군종 행정실장이 저한테 늘 “박 상병, 조금만 참아요. 우리가 곧 군목을 보내줄게요”라고 했는데 제가 제대하기 한 달 전쯤에 저희 부대에 군목을 배치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장교이자 목사님이고 저는 병사니까 그분이 군 부대 교회를 주관했습니다. 우리 둘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분은 저를 도와주려고 애쓰셨고, 제가 제대할 때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목사님이지만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분이기 때문에 제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저보다 계급도 높고 또 목사님이라서 ‘그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지 않을까?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을까? 내가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좀 거만하다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잡고 있어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분을 구원받도록 인도하지는 못했습니다.
1968년 6월 8일 제대할 때, 그 목사님이 원주역까지 나와서 저를 차에 태워주시곤 기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분과 이별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그 후 그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차를 타려는데 뒤에서 자동차가 그분을 들이받아 세상을 떠나셨는데, 부대의 모든 장병이 울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남들에게 인정받아서 뭐하겠다고, 복음 전한다고 욕하면 욕 좀 얻어먹고 때리면 매 좀 맞을 걸’ 하면서 그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많이 없애주고 주님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위해 사는 동안 제 생각이 자주 일어나서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많이 가로막았는데 그때마다 잘못된 제 생각들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하나님은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옳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옳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사람들이 왜 싸웁니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내가 틀렸습니다” 하면서 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굽히거나 누그러뜨리기 싫어합니다.
부부가 10년, 20년을 살아도 마음이 합쳐지지 않는 이유는 ‘옳은 것’ 때문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 때문에 아내는 ‘우리 남편은 저게 안 돼’ 하며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편도 ‘저 여자는 안 돼’라고 생각하니까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에게 ‘옳은 것’이 없다면 두 사람이 쉽게 마음을 합쳐서 화목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분명히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여러 번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지만 실패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볼 때는 옳지만 틀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여러분, 신앙 자체는 매우 쉽고 평안하고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주관과 철학을 가지고 신앙을 하려니까 예수님의 기준과 맞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예수님이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까 신앙하기 어려운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준이 없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신앙 자체는 너무 쉽고 재미있고 좋은 것입니다.

택시비 언쟁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안산에 사는 어떤 사람이 밤에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에게 미리 만 원짜리 한 장을 준 뒤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지난 뒤 택시기사가 다 왔다고 깨우기에 아까 만 원짜리를 준 기억이 있어서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오히려 “택시비를 주셔야지요” 하는 겁니다. “아니, 내가 아까 줬잖아요?” “언제 줬어요?” “줬잖아요?” “안 받았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다투다가 파출소에 갔습니다. 택시기사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차분히 이야기하니까 설득력이 있었고, 술에 취한 그 사람은 막 고함을 지르니까 경찰들이 그 사람의 말은 안 듣고 택시기사의 말만 들었습니다. 경찰들이 “그러지 말고 택시 탔으면 돈이나 줘요” 하니까 그 사람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나 돈 줬단 말이야!” “어허, 그러지 말고 빨리 돈 주고 가요.” 그 사람이 화가 나니까 책상을 치고 전화기를 치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이 그를 3일 동안 구류를 살게 했습니다.

결백을 인정받기 위해

그 사람이 3일 동안 구류를 살고 나와서는 너무 분한 나머지 바로 휘발유 한 통을 사가지고 파출소로 갔습니다. “파출소장 나와! 사과해! 나 돈 냈단 말이야!” 파출소에는 그런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까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안 나오면 휘발유 뒤집어쓴다”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는 겁니다. 너무 화가 나서 정말 휘발유를 뒤집어써 버렸습니다. 그래도 경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터를 끄집어내서 “진짜 사과 안 해? 불 지른다”  고 위협해도 웃고만 있었습니다.
라이터 불을 켰는데 순식간에 휘발유에 불이 붙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옷을 벗어서 간신히 그 불을 껐지만 그 사람은 화상을 심하게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기가 일부러 불을 지른 경우는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된답니다. 그래서 퇴원해서 집에 누워있는데 온몸에 구더기가 생기면서 살이 썩어 들어갔습니다.
인권단체에서 찾아 와서 “당신은 진짜 옳은 사람이에요. 택시기사가 나쁜 사람이에요” 하니까 그 사람은 계속 자기가 옳다는 것만 주장했습니다. 기독교 단체에서도 찾아와서는 다 죽어가는 그 영혼은 생각하지 않고 “당신이 택시비 냈으니 옳습니다. 경찰과 택시기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더 의기양양해졌습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이 소식을 들은 지인의 소개로 우리 선교회 목사님 한 분이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옳음을 주장했지만 그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당신,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나가, 이놈아!”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목사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썩는 냄새 나는 이 집에 있기 싫어요. 그러나 한 마디만 하고 나가겠습니다. 세상에는 당신 외에도 억울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고 다 당신처럼 행동한다면 이 세상에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택시비 낸 것 인정받기 위해 휘발유 뒤집어쓰고 몸에 불을 붙였는데, 그것 때문에 당신 부모님 가슴에 못 박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주지 않았나요?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남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한 번이라도 가족을 생각해 보았다면 어떻게 택시비 낸 것 하나 인정받으려고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 목사님은 정확하게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듯이 가족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이 똑똑하고 잘난 것 같아도 자기 생각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늘 사단에게 속고 살아갑니다.

영혼의 문제를 지적해야

제가 대구에서 사역을 했을 때, 우리 교회에 어떤 아가씨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에클레시아 합창단원입니다. 앞으로 성가로 하나님을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가씨는 저한테 그 이야기를 했으니까 교회에서 자기를 세워서 찬송을 부르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가씨 말대로 하면 자신이 보기엔 좋을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그 영혼은 구원받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죄 사함 받고 거듭난 다음에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만일 그런 사람에게 “오늘 찬송은 참 은혜로웠어요. 믿음 좋습니다” 하면 ‘이 교회 목사, 사람 볼 줄 아네. 교회 잘 만났어. 내가 이 교회에 충성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식으로 교회에 와서 자기 영혼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있다가 그만 죄악 속에서 영원한 지옥에 가는 교인이 정말 많습니다. 어느 목사가 자기 교회에 신도들이 안 나오길 바라겠습니까? 더 많이 나오길 바라지요. 그것만 생각한다면 저는 영혼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쁘게 할래, 하나님을 기쁘게 할래?’ 하는 마음을 주시며 저를 이끌어 주십니다.

행위에 매인 율법사

오늘 아침 누가복음 10장을 읽었는데 저는 이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
여러분,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만일 제가 예수님이라면 ‘진짜 이 사람 웃긴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율법사라고 하지만 마음에 어둡고 더러운 악이 있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그가 무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거듭나기 전에 교회 나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의를 쌓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십일조 냈는데, 금식기도 했는데, 이만큼 연보했는데, 십계명 지켰는데, 봉사했는데, 그러니까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
그러나 이런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예수님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는 등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나 아내, 친구를 믿듯이 그냥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선을 행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이루어주실 줄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상관없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서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십니다.

죄를 드러내는 율법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계명, 즉 율법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율법을 들으면 죄를 적게 지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 잠깐 볼일이 있어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다른 건 다 봐도 좋은데 이 노트는 절대 펴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펴보더라도 5쪽은 절대 보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 이야기를 안 했을 때와 했을 때, 어느 쪽이 노트를 펴볼 확률이 높습니까?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셔서 죄를 더 드러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똑같은 죄인인데도 죄를 안 지은 사람은 자기가 선한 줄 압니다. 율법은 숨어있는 죄를 밖으로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그 전에는 죄가 마음 안에만 있었지만, 율법을 통해 죄가 밖으로 드러나는 그때 비로소 ‘나는 더럽고 악한 인간이구나’를 깨닫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죄를 안 지었다고 해서 선한 것이 아닙니다. 간음을 안 해도 마음 안에는 음란한 마음이 있고, 도둑질을 안 해도 탐욕은 있고, 살인을 안 해도 미움이 있습니다. 그 마음 안에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죄인이 되지만 우리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렇게 악한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고 범죄가 더해지도록 해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음속의 미움이 밖으로

우리 교회 문 장로님의 아내인 마 자매님의 구원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남편은 의사고, 자기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지냈는데 전혀 죄에 대한 가책을 못 느꼈답니다. ‘그냥 이렇게 믿으면 천국에 가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서 남편 친구 부부가 와서 자기 집에서 얼마 동안 같이 살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남편들이 출근하면 여자만 둘 남는데, 밥을 먹고 나면 남편 친구의 부인은 돌아앉아서 손톱 손질만 하는 겁니다. 자기만 혼자 설거지하고 청소했지만 처음에는 괜찮았대요.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밥만 먹으면 손톱 손질하고, 그 다음 날도 계속 그러니까 ‘나는 식모고 저는 뭐 공주냐? 얻어먹는 주제에’ 하면서 점점 화가 나는 겁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미움이 복받쳐 오르면서 ‘에이, 저 여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답니다. 그 자매님이 미움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보며 깜짝 놀랐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마음속에 있는 미움이 해결되지 않아 괴로웠답니다.  
하루는 미국에 있는 그분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엉엉 울면서 “목사님,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돼요?” 하기에 죄 사함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 후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매님을 사랑하셔서 그 마음속에 있는 죄를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할 때

권총 강도가 총을 들고 “만 원만 내면 살려줄 테니까 내놔. 안 그러면 쏴 죽인다”고 아무리 협박해도 돈이 없는 사람은 못 내놓습니다. “멋있는 소나타 자동차를 5천 원에 사 가시오” 해도 돈 없으면 못 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미움이 없으면 아무리 미운 사람을 만나도 밉지 않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셔야 ‘내가 이런 더러운 인간이었구나’라고 깨닫지만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습니다. 그러고는 남을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살아? 진짜 짐승처럼 사네. 나는 그래도 못할 짓은 안 했어. 그래도 착하게 살았어.’
우리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알면 ‘나는 진짜 더러운 인간이네! 내 근본이 더럽기 때문에 내가 선을 행해서는 천국에 못 가겠네’ 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인간의 선과 의는 무익해

여러분의 인생이 아무리 선하고 의로워 보여도 여러분의 선과 의는 구멍 난 타이타닉 호처럼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악하고 추한 죄는 그대로 두고 “교회 나오세요. 십일조 내세요. 복 받습니다. 기도하세요. 율법 지키세요. 선한 일 하세요”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멸망으로 이끄는 그 악은 언제 마음에서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 기회는 다 무시한 채 그냥 ‘교회 나오니까 천국 간다. 예수 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신앙은 하지도 않으면서 믿음으로 천국 간다고 합니다. “내가 교회에 나가면 예수 믿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교회 나간다고 다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 낸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 생각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만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우리가 한 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실 때 여러분이 가진 의는 누더기와 같고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더럽고 추한 마음을 가진 우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거룩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만이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자기의 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의를 받아들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율법사 같은 사람과 예수님이 소개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눅 10:30)
하나님이 이 사람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강도를 만나 죽어가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자기 자신을 구원해 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형편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면 부끄러워서 고개가 숙여지면서 내가 볼 때 옳은 것이지만 옳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십니다.

주님이 마음을 장악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할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시면 술을 끊으려고 노력 안 해도 술이 싫어지고, 담배 끊으려고 노력 안 해도 담배가 싫어지고, 악한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악이 멀어지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미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는 자기를 믿는 마음이 다 무너져버리고, 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영혼을 발견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혹시 여러분이 자신을 믿고 자기가 선을 행해서 하나님께 나가려고 한다면 정말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살인을 안 하고 도둑질을 안 하고 간음을 안 했다 할지라도 마음속에는 온갖 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주의 손에 맡길 때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해져 쉽고 복된 신앙을 할 줄 믿습니다.

- 2007. 3. 25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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