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어려움을 물리친「사르밧 과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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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어려움을 물리친「사르밧 과부」처럼
2007. 3. 18  주일 낮 설교 요약 - 14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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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결혼식 주례를 하기 위해 예식 장소로 가고 있는데 한 자매님이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전도하다가 만난 장로님이 목사님을 좀 뵙고자 하는데 시간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녁에 장년회 하기 전 6시쯤 시간이 될 것 같다니까 다시 전화가 왔어요. “그럼, 목사님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양재역 근처에서 그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연세가 여든 한 살이신데도 아주 정정하셨습니다. 그분이 미국에 오래 계셨고, 영어로 기도도 하신다면서 우리 교회에서 혹시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영어보다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아예 딱 잘라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중국어, 흔치 않는 캄보디아어, 미얀마어, 그리고 폴란드어, 체코어, 터키어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의 영어 이야기가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고넬료’ 이야기

저는 성경을 펴놓고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지만, 그 신앙으로는 안 되니까 하나님이 답답하게 여기셨습니다. “고넬료야, 네 구제와 기도가 상달됐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 되니까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좀 들어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좀더 열심히 기도해라. 성경을 읽어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한 일과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주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한 일은 인간이 한 일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인간은 근본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선하고 의로울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그 행위는 다 더럽고 가증합니다.

경건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나님이  인생에 대해 그렇게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는 철야기도, 금식기도, 새벽기도 한 것이나 십일조 낸 것, 고아를 돌보아 준 것, 구제한 것 등이 자기 의가 되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그것들은 전혀 무익하고,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들만 우리에게 남게 됩니다.
고넬료도 정성을 다해서 경건하게 살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했지만 그것은 고넬료가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그 장로님에게 전했는데 그분이 나중에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진짜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게 참 좋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만했던 나아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사람 마음의 흐름이 보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는 나아만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군대장관인 그는 전쟁에서 아람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기 때문에 마음을 꺾을 필요 없이 늘 높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아만 장군에게 그 높은 마음을 꺾어 은혜를 입혀주시려고 문둥병이 들게 하였습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었던 나아만도 문둥병에 걸리니까 왕 앞에 서기도 송구스럽고 죄송하면서 마음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마리아에서 잡혀온 계집종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는 말 한 마디에 적국 사마리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사환을 시켜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더니 그 마음에 또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서 “내가 이래도 군대장관인데 저가 나와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막 화를 내면서 “나 다메섹으로 갈 거야. 다메섹에 있는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보다 나은데 내가 거기 가서 씻으면 되지” 하며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는 종들의 권유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니까 그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어부 베드로의 변화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모집해 대학생을 훈련하다 보면 학생들이 죄악 속에 빠질 수 있는 기회도 참 많고 믿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기회도 참 많은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믿음으로 이끌어 가는 일을 하시는데 그 사실을 조금만 알면 하나님과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정말 쉽게 믿음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어느 날 하나님은 베드로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려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날 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기 위해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베드로는 정말 하나님과 마음의 거리가 굉장히 먼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드로가 그날 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날이 새면서 그가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타셨습니다. 육지에서 배를 조금 띄우시고 배위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베드로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 과부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8~9)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 그곳에서 한 과부를 만나도록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과부는 남편 없이 아들과 둘이 살았습니다.
엘리야가 성문 입구에서 그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여자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목이 말라 그 여자에게 물을 한 그릇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물만 가져오지 말고 작은 떡 하나를 가져와서 자기로 하여금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고 했습니다.
그 말에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고 했습니다.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은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어 자기 아들과 먹고 죽으려 한 사르밧 과부의 처지를 생각하면 너무 처참합니다. 떡을 먹으면서 씹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아까워서 입에서 녹여가며 천천히 먹었을 겁니다. 그렇게 귀한 떡을 자기가 먹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선뜻 내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편 없이 철없는 아들과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만일 내가 그 여자였다면 나는 떡을 줄 수 있었을까? 나와 내 아내와 아이들하고 먹고 말았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나오는 중고등학생을 보면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왜 예배시간에 자세가 안 좋을까? 우리 선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학생들도 믿음이 굉장히 좋았는데…’ 하면서 제가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되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잘 살지는 않지만 가난하더라도 밥 못 먹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삶에 여유가 있으니까 학생들이 하나님을 찾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겁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이 필요치 않으니까, 전자오락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 놀러도 가야 하는데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려고 하니까 답답한 겁니다.
어린 학생이라도 병들어 죽어가고 있을 때 자기를 돕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다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겠지만, 대학생이 되어도 특별한 어려움 없이 마음대로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지 믿음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아프리카의 극한 가난

많은 굿뉴스코 학생들이 아프리카를 지원하는 이유는 그곳에 가는 학생들이 대부분 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 덕분에 잘 먹고 잘 입고 부유하게 살아도 한국 사회가 다 그러니까 그것이 당연한 줄 알지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학생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의 비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돈으로 300원만 있으면 말라리아 약을 살 수 있는데도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들이 300원을 아끼려고 약을 안 먹고 버티다가 죽는 사람이 1년에 몇 만 명이 됩니다. 대학생들이 그것을 보면서 저절로 ‘내가 얼마나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는가?’ 하는 걸 느끼면서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제력이 욕구를 이겨야

자동차를 만들 때는 엔진도 만들지만 브레이크도 만듭니다. 자동차가 엔진의 힘으로 달려가지만 언제든지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야 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엔진의 힘이 브레이크의 힘보다 강해서 서지 않으면 그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살인 무기가 됩니다. 그처럼 아이들의 마음에서도 ‘욕구’와 ‘자제력’이 부딪칠 때 자제력이 욕구를 이겨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구만 계속 키워주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도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불평하면서 더 좋은 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 삶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 아이가 열 가지를 요구하면 일부러 일곱 가지밖에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일류 음식점에 절대 안 데리고 가기로 정해 놓았습니다. 제가 종종 식사 초대를 받아 고급 식당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형제 자매님들이 저를 데리러 오면서 “목사님, 은숙이와 영국이도 데리고 갑시다”라고 하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데려가자고 하면 “교육상 고급 식당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자장면이면 좋아하는데 고급 식당에 데려가서 아이들의 마음을 높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불행한 현대인

부모가 자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대부분 자식을 키울 때 자식들의 욕구를 자제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럽다고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아이들의 요구는 계속 커져갑니다. 부모가 어느 정도까지는 들어줄 수 있지만 더 이상 들어 주지 못할 때 자식은 부모를 무시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무능해. 내 친구 아버지는 돈 잘 버는데 우리 아버지는 돈도 많이 못 벌어.’ 아이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기 시작하면 그 아이는 다스릴 수 없게 됩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자제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흔, 쉰, 예순, 일흔이 되어도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자기 생각이 다 옳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삶이 괜찮아지면 자기 마음을 낮추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룬 뒤 유사 이래로 지금만큼 잘 살게 된 때가 없답니다. 좋은 차도 타고 좋은 집에 삽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혼율과 자살률도 높습니다. 군대에서 자살하는 병사들이 대부분 이유 없이 그냥 ‘죽고 싶다’면서 목숨을 끊습니다. 자제력이 전혀 없는 겁니다.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불행해지고 마음에 쉼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사르밧 과부는 누가 자제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자제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 없이 사니까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거기다 흉년까지 들었으니 마음이 밑바닥까지 내려가 머문 지 오래된 것입니다. 마음이 높으면 기도도 대충 몇 마디 하고 말지만 마음이 밑바닥에 내려가면 기도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너는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라. 여호와가 지면에 비를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이 이야기를 똑같이 들어도 사람마다 같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형편이 되면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 떡은 못 줘. 일단 내가 먹고 봐야지’ 또 어떤 사람은 ‘늙은 영감쟁이가 내 떡 뺏어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야. 어떻게 가루 통에 가루가 생겨?’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여자가 엘리야에게 떡을 드릴 때 엘리야를 통해서 복을 받고 엘리야의 생명을 위하여 가루 통에 가루가 다 하지 않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그 여자의 마음에 쉬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남편이 죽고 아들과 살면서 어렵고 곤고할 때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당연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면서 그 여자 마음이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어느 날 그 여자가 ‘이제 더 굶으면 저 떡도 못 먹고 죽겠다’ 싶어서 마지막에 남은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려고 생각하고 그날 아침에 기도를 했을 겁니다. ‘하나님, 이제 이 가루가 마지막입니다. 오늘 이 가루로 떡을 만들어 나와 내 아들이 먹고 죽으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도하는 중에 ‘그래,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어. 내게는 길이 없지만 하나님이 길을 만드실 거야’라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저도 때때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다가 보면 그런 마음이 일어납니다. 저는 많은 기성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기성교회가 우리를 대적하고 아무 근거 없이 이단이라고 하지만 그때마다 제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로교 목사님들이 저에게 “박 목사님, 우리 장로교에 오셔서 같이 일하시지요”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인간적인 면으로 타협하면 진짜 편할 수 있고 일도 잘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보니 제 마음에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기도했는데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려우면 어떠냐? 문제가 생기면 어떠냐? 나는 하나님과 하나인데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지’ 라는 마음이 드니까 기쁨과 소망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고

사르밧 과부도 그날 아침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나뭇가지를 주우러 성문 밖으로 나왔다가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먼저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가져와라. 그 다음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 땅에 비를 내리는 날까지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여자는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를 들어 주셨네요. 내가 이것을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참으로 하나님의 종을 보내셨네요. 그리고 통의 가루가 계속 생긴다는 것을 믿습니다. 떡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에게 기근이 왔는데 사르밧 과부는 매일 떡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떡을 호주머니에 넣고 밖에 나가서 먹다보면 친구들이 떡을 보고 모두 모여드는 겁니다. "내가 구슬 줄게, 조금만 줘라." 그 아들은 매일 친구들에게 업혀 다녔을 겁니다. 부모가 믿음이 있으면 자식도 분명히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까우면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욕구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슬픔이 와도 슬픔이 안 되게, 고난이 와도 고난이 안 되게, 홍수가 와도 홍수가 아니게 이끌어 가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끄시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 속에 있으면 여러분 자신보다도 하나님과 복음, 교회가 더 귀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하십니다. 교회와 가까우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고통과 죄악을 이기고 밝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멀어지면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면서도 육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육신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여러분, 사르밧 과부는 남편을 잃고 어렵게 되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려운 조건, 불행한 일, 병 등을 그냥 넘기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기회로 삼아 그분을 찾으십시오.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우리의 것 전부를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지난 45년 동안 예수 안에 살면서 제게 많은 시련과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계신 주님이 그 모든 것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육체가 흘러가는 대로 여러분을 맡겨두지 마십시오.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찬송하는 것, 헌금하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십시오.
그냥 아무렇게나 세월을 보내면 육으로 흘러가 비참하게 됩니다. 사르밧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배부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7. 3. 18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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