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하고 공허한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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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하고 공허한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
2007. 3. 11  주일 낮 설교 요약 - 14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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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저는 다시 창세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너무 놀라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4)
이 구절을 보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전파되면서 혼돈, 공허, 흑암이 떠나가고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계시는데 혼돈되고 공허하면 어떠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땅이 흑암에 잡히면 어떠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내 문제가 되고, 내 근심이 되어 거기서 헤어날 수 없어서 입만 열면 근심스럽고 불평스런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오시면서 모든 근심을 다 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조건이 되고,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장마에 떠내려간 다리

한번은 러시아 전도여행 중에 한국에서 김성훈 목사님으로부터 “목사님, 홍수가 나서 대덕수양관 다리가 떠내려갔습니다”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기뻐서 “잘됐다” 하니까 김 목사님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제 아내는 늘 저를 좁쌀영감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수양관 다리를 놓을 때도 돈 적게 들이려는 생각만 하다 다리 폭을 4m로, 길이를 60m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2, 3년 지나면서 그 다리를 볼 때마다 ‘왜 나는 이렇게 속이 좁아!’ 하는 마음이 들어 너무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다리가 떠내려갔다고 하니까 그런 제 모습이 다 떠내려 간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새로 다리를 놓으려고 김천시청에 허가를 받으려고 갔더니 이번 홍수로 김천 쪽에 있는 다리가 모두 무너져 정부에서 수해복구자금이 나왔다면서 2차선으로 크고 멋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리 놓는 것과 박 목사가 다리 놓는 것은 확실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죄사함이 믿어지고

성경을 여러 번 읽으면서 십자가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씻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았었지만 1962년 10월 7일에 비로소 그 사실이 내 마음에 믿음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예수님과 내가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도 여전히 내 마음엔 죄가 있고 나는 죄에 끌려 다니면서 죄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해준 것을 아는데 믿어지지 않으니까 믿으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마음 안에 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 나는 이제 깨끗하다. 내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구나’ 하면서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마음에서 믿어졌습니다. 죄로부터 해방 되고 예수님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신 지 벌써 4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려움 속에 일하시는 주님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은 나를 향해서 한번도 변치 아니하시고 정확하게 나를 지키시고 도우며 역사하셔서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처음엔 내 문제 같았지만 결국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갈 때 자기가 볼 때는 고통스러운 것 같았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갈 때 어려운 것 같았지만 분명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는데 요셉이 왜 팔려가고 감옥에 갔느냐?’ 하겠지만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요셉이 감옥에 가고 종으로 팔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은 잘 되어도 다음에 잘못될까 봐 근심하고, 1등하면 다음에 또 1등 못 할까 봐 근심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어도 다음에는 떨어질까 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요셉이나 다윗처럼 똑같이 내 삶 속에도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 어려움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굉장히 놀랍게 이끌고 역사하시는 걸 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실망이 사라지고

제 과거를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제 삶 속에 참 많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제 마음에 그 하나님이 너무 큽니다. 한번은 제가 ‘하나님, 배가 고픕니다.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양식을 안 주셨습니다. 배가 고픈 것도 문제지만 ‘내가 복음 전도자로 하나님 일을 하는데 왜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으시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건가? 내 신앙이 잘못된 게 아닌가?’라는 마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 같아서 힘이 빠지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막 8:1~3)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흘을 있었는데 양식이 없어 굶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굶을 수 있구나, 예수님이 나를 떠나서 기도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해도 어려울 수 있구나’ 하는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자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나를 버렸을 것 같은 두려움과 실망이 싹 사라지고 제 마음에 힘이 솟구쳤습니다.

집을 위해 기도했을 때

제가 김천에 갔을 때 집 문제로 세 번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대해서 복음을 위해 살려고 경남 합천군 봉산면 압곡동이라는 산골짜기에서 기도하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김천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방을 얻어야 했는데 단돈 천 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존 앤더슨이라는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복음전도 여행을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해서 복음 안 전하고 여행만 다니려면 당장 영국으로 돌아가라니까 그분이 “오늘 저녁에 당신 집에 가서 잘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압곡동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온 날 저녁부터 선교사님 몸이 나빠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닷새를 그냥 머물렀습니다.
마지막 날 떠나면서 “미스터 박, 당신에게 부탁이 있소. 당신하고 일 년만 같이 살도록 해주시오. 나는 지금까지 선교사로서 많은 일을 해봤지만 당신처럼 사는 사람은 처음 봤소. 당신의 삶을 배우고 싶소” 하고 부탁을 했어요. 앞으로 김천에서 전도할 거니까 김천에 방 얻으면 오라고 했는데 한 열흘 뒤에 그분이 “미스터 박, 우리 이 돈 가지고 같이 김천에서 방 얻자”면서 현금 35만 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천에서 집을 얻기 위해 기도했는데 이 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확실히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천에서 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그 돈으로 일 년 뒤에 좋은 집을 만나면 그때 집을 사려고 전세를 얻었는데 집 주인이 은행에 집을 잡혀 놓고 그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 ‘하나님, 집이 없습니다. 은행에서는 집을 비워달라는데요’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집을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뒤 “세 놓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전세를 얻었는데 집 주인이 은행에 집을 잡히고 전셋돈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 집을 하나님이 저에게 주실 것 같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이 집을 주십시오. 하나님이 이 집을 안 주시면 다른 집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는 지좌교회 장로올시다. 하나님이 국도변에 이런 큰 집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종이 쓰신다는 데 왜 안 드리겠습니까? 쓰십시오” 하며 허락해서 집을 얻게 됐습니다.
그 후 전도팀 훈련을 시켜야 할 때쯤, 여름 한 달 동안 남녀 청년들이 와서 훈련받고 지낼 방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전도팀이 오는 날인데 방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는데 얼마 전에 전도하러 갔다가 소금 파는 집 안채가 비어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주인이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그 집을 다시 주시겠다’는 확실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다시 가보니 조금 전까지 안 준다고 하던 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그 집을 쓰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말씀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1~3)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 제가 “빛이 있으라” 말해도 빛은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빛을 만들려면 전기를 끌어와서 전구를 달고 스위치를 만들어서 켜고 전기료를 내야 빛이 비췹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차이라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시고 우리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거나 결혼을 하는 등 조건이 갖추어져야 기쁨과 평안, 행복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전깃불도 안 켜고 발전소도 없는데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 마음에 “박옥수, 네 마음에 평안이 있으라. 기쁨이 있으라” 그러면 제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생깁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 자체가 법이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가 진리이므로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빛을 생기게 하는 그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 제 안에 계셔서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한 번도 제가 문제로 넘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세상의 보화나 명예, 재물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깁니다.
제 심장이 나빴을 때 의사는 이 병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하나님이 1999년에 제 심장을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십 년 전보다 지금 제 심장이 훨씬 더 튼튼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칸타타 때 제가 6700km를 2주 동안 주행했습니다. 낮에는 대덕수양관에서 굿뉴스코 학생들을 훈련하고 밤에는 칸타타에 참석했는데 이것은 제가 저를 붙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 짐작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연보 많이 하고, 주일 잘 지키면 주님이 복 주시겠지’ 하며 얼렁뚱땅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음을 받으면 그 다음부터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끌어 주십니다.

어두움을 빛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면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보다 훨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 땅 위에 말씀하시니까 그 땅에 혼돈을, 공허를, 흑암을 내쫓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새들이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아름다운 동산으로 바꾸신 것처럼, 45년 전 어둡고 더럽고 죄악으로 뒤범벅된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내 마음에 있는 두려움, 어둠, 슬픔, 고통, 죄악을 다 쫓아내시고 소망, 기쁨, 감사 속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과 더불어 살면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는데 ‘혼돈’은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조건이고, ‘공허’는 공허가 아니라 하나님이 충만하게 채우시기 위한 재료이며, ‘흑암’은 흑암이 아니라 빛을 나타낼 수 있는 배경으로 모두 변하는 것을 봅니다.
굿뉴스코 단기선교사 귀국발표회에 가면 하나같이 그들 마음이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는 기쁨과 감사로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하며 마음이 변한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 안에 들어가서 두려움, 죄악, 음란, 거짓을 내쫓고 평안과 행복을 주신 겁니다. 정말 주를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내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없었을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내 습관이 내 마음의 법이 되고 내 경험이 내 마음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제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와서 하나님이 거하시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 즉 돌비에 새긴 십계명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간음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간음하지 말아야지’ 합니다. 내 마음이 법을 의식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음란 쪽으로 이끌려 내가 간음하는 사람이 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을 의식하는 동안에는 도둑질하지 않지만 법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는 다시 탐욕이 생겨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이겨주십니다. 미움이 일어나면 미움을 내쫓고, 두려움이 와도 두려움을 내쫓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라고 되어 있습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토마스 박사라는 분이 몽골에 대학을 설립한 후, 그 학교를 저한테 인수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제가 “박사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 대학을 인수할 만한 여력이 안됩니다. 아직은 제가 바쁘고 인수해서 운영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분과 친해져서 이번 미국에 대학 설립하는데 필요한  3천 페이지 가량 되는 문서를 만들어 주셔서 주님 앞에 참 감사했습니다.
제 삶 속에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된다는 것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면서 하나님이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을 알고 계획을 세우고 이끌어 가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흑암을 기뻐하지 않으니까 빛을 보내셔서 흑암을 내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공허를 기뻐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해 가득 채우니 공허가 없어졌습니다. 혼돈을 기뻐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질서를 잡으면서 혼돈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만일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죄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죄에 매여  여전히 죄를 짓고 죄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나 저도 똑같이 추하고 더럽고 악한 인간인데 하나님이 제 마음에 있는 악, 근심, 두려움을 내쫓으시니까 나의 죄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제가 죄를 씻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닌데 이미 나의 모든 죄가 다 사해져 버린 사실을 믿으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 되셨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고 모두 주님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고 말씀하시고 거기에 “여호와의 말이니라”며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더 커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지만 난 죄인이지, 어떻게 죄가 없어? 죄 씻었지만 또 죄 안 짓나?’ 하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죄를 짓고 하나님은 씻으시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죄 짓는 능력보다 씻는 능력이 더 크면 죄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인간의 한계 안에서 죄를 짓습니다. 첫 아담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짓는 능력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는 능력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큽니까? 주님의 능력이 큰 줄 믿습니다.
만약 내가 은행에 백억을 빚 졌는데 통장에 잔고가 천억이면  나는 빚진 자가 아닙니다. 내가 죄를 짓는 능력이 백억이고 죄를 사하는 예수님의 능력이 천억이라면 나는 죄인일 수 없습니다.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은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믿지만,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리 성경에 저희 죄를 사하고 죄를 기억지 아니한다 해도 ‘나는 죄가 있어. 거짓말이야. 나는 죄인이야’라는 자기 생각을 믿지 말씀을 안 믿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여러분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너 죄 있지? 지옥 가” 하시면 “하나님, 잠깐만요. 예레미야 31장 34절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는데 제 죄를 기억하십니까?”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한다고 하시면 기억지 않으시는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믿지 말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믿으세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물리친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 미움, 두려움, 음란, 욕망이 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그것을 다 내쫓으시고 평안과 기쁨,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 안에 그 모든 것을 내쫓으신 하나님이 “이미 죄도 다 해결해 놓았다.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피가 내 죄를 다 사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여러분의 슬픔, 두려움, 근심과 죄를 정결케 하셔서 기쁘고 복된 가운데 요셉, 아브라함, 다윗처럼 능력으로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 2007. 3. 11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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