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눈을 뜬 소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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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눈을 뜬 소경처럼
2007.1.14 주일 낮 설교 요약 -13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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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볼 때 ‘내가 구원을 대신 받아주면 너무너무 쉽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에는 구원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고, 딴 사람은 다 구원받아도 자기는 못 받을 것 같고, 또 자기가 받은 구원은 가짜 같은 생각 속에 사람들이 휘말려 듭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 나면 ‘야, 구원 이거 숨쉬기보다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후에는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신앙이 너무 어렵다. 옛날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그저 십일조나 하면 되고,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안 되고 안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신앙은 굉장히 쉬운 겁니다” 하면, 많은 분들이 속으로 웃습니다. ‘박 목사님한테나 쉽지, 나한테는 어렵습니다. 아니, 신앙이 쉬우면 다 신앙생활하지 신앙생활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말은 저렇게 해도 나한테는 어려워! 난 잘 안 돼! 난 쉽지 않아!’ 그런 생각으로 어렵다고 부담스러워서 아예 신앙을 안 하려고 마음먹어서 그렇지,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도 어려운 데가 없습니다.

어렵다고 느낀다면

오늘 요한복음 9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눈뜨는 게 어려웠습니까? 여러분, 눈을 한번 감았다 떠 보세요. 감고 있기가 어렵습니까, 뜨는 게 어렵습니까? 감고 있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이 눈먼 사람, 소경도 눈뜨는 게 어렵겠습니까?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굉장히 큰 역사이지만, 그것은 쉽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그게 어려운 것 같으면 그 과정을 길게 설명했을 텐데,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누워있던 삶에서 일어나 걷고 뛰고 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신앙을 어렵고 힘들다고 느낀다면, 잘 모르고 신앙을 해서 그렇지 신앙 자체는 절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자동차 사용설명서를 보듯

제 승용차에는 의자위치를 조정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1번 버튼을 누르면 내 몸에 딱 맞도록 의자가 맞춰지고, 2번 버튼을 누르면 내 아들의 몸에 맞게, 3번 버튼은 또 다른 사람의 몸에 맞도록 처음에 차를 구입했을 때 설정해 놓았습니다.
제가 운전할 때도 있고 제 아들이 운전할 때도 있는데, 제 아들이 운전할 때는 조절이 잘 됩니다. 그런데 제가 운전을 하려고 1번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내 몸에 맞게 움직여야 되는데 말을 안 듣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수동으로 맞추어서 운전을 했습니다.
‘내가 하면 왜 안 되지? 내가 늙었다고 차가 나를 무시하나? 왜 내가 1번 버튼을 누르면 내 자리가 안 맞춰지지?’ 어느 날, 차 안에 앉아서 자동차 사용설명서를 봤습니다. ‘시동을 건다. 기어를 드라이브 위치에 놓지 말고 파킹 위치에 놓는다.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움직이는 겁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의자 위치를 바꾸면 위험하니까 자동차를 만들 때 자동차를 세워놓고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의자를 조절하도록 장치해 놓았습니다. 저는 성미가 급해서 운전 중에 버튼을 누르니 잘 안 된 겁니다. 정확하게 모르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의자 위치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차를 세워놓은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그 버튼을 눌러야 움직이는 겁니다.

신앙은 과학처럼 정확해

여러분, 이처럼 신앙도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고 모호한 것 같지만 신앙만큼 과학적으로 정확하고 온전한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 복 주십시오” 하다가 ‘아, 나는 안 되나 보다’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돈이 좀 필요합니다. 5만원만 주십시오. 아멘” 하다가 ‘안 주시네. 에이, 나는 믿음이 없어. 잘 안 돼’ 합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 배가 아픕니다. 배를 낫게 해주십시오. 아멘” 하다가 ‘나는 기도 응답도 안 돼. 구원받았는데 왜 이래?’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확하게 신앙을 안 하고 껍데기로 대충대충 해서 그렇습니다. 신구약 66권 다 몰라도 하나만 정확히 알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충 알면서도 안다고 생각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막연하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읽어보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실 수밖에 없도록 다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내가 이렇게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그 삶이 달라집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9장 1절에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셔서 33년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은 왜 소경이 되었습니까? 눈에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소경이 된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빛이시니까 그 사람에게 비춰서 눈을 뜨게 해주고 싶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병을 이기지 못하니까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병도 낫게 해주고 싶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는 죽음을 이기지 못해서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니까 나사로도 건져내고 싶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유대 땅이 아닌 오늘 우리 교회에 와서 걸어 다니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빚·건강 등의 문제에 얽매여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예수님은 그 문제도 해결해주길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소경이 나았다. 38년 된 병자나 중풍병자도 이렇게 나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이 자리에 살아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주의 사랑하심을 알면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 9:2) 자, 보세요. 제자들이 소경을 만났을 때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으니까 그가 무슨 죄를 지었겠냐, 부모가 죄를 지었지! 부모가 죄를 지었으면 부모가 소경이 되어야지, 왜 그가 소경이냐?” 하며 다투었습니다.
제자들은 남이니까 소경이 불쌍하다는 마음보다 ‘저 사람이 소경된 게 누구의 죄 때문인가?’ 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친아들 같으면 ‘누구의 죄 때문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은혜를 입어서 나을 수 있는가?’ 하는 쪽으로 마음이 흘러갔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 소경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온전케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믿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소경으로 있는데 고칠 수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은 막연할 수 없어

사람들은 그냥 막연하게 ‘내가 좀 육신적이라 그렇겠지, 내가 죄가 많아서, 기도를 못하고 성경을 못 읽어서 그렇겠지’ 하면서 ‘나도 성경 잘 읽어서 믿음 좀 배워야지, 금식 며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지, 내가 좀 잘하고 연보를 많이 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경이 기도해서 나았습니까? 38년 된 병자가 금식해서 나았습니까?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서 나았습니까? 소경이나 38년 된 병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나았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방식을 버리고 38년 된 병자의 방식대로 하면 은혜를 입습니다. 여러분이 성경과 다른 방식으로 해서 어렵지 신앙은 쉽습니다.
얼마 전에 제 친구 한 사람이 크리스마스 칸타타에 왔다가 저와 통화가 됐는데 몸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한의사인데, 치료를 좀 받아라”고 권했습니다. 그 친구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여러 해 전 어떤 한의원에서 축농증으로 진단을 하는 바람에 폐 치료를 못 받아서 폐가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장로님에게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진맥을 하시더니 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른 데도 안 좋지만 폐가 아주 안 좋은데 그 폐를 다시 소생시키면 된다는 겁니다. “소생시킬 수 있어요?” “소생됩니다.”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이제 약만 먹으면 낫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신앙은 막연한 게 아닙니다.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며 마음이 뜨거워지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소경

예수님이 소경을 만난 이야기부터 해봅시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4~7)
전후 배경을 다 빼면 소경이 눈뜨는 과정은 6절과 7절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게 눈을 뜨는 과정 전부예요.
이 소경은 그냥 앞을 못 보고 가만히 있었는데 예수님이 흙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싶으신데 물이 없었는지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그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까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 과정이 어렵습니까, 힘듭니까, 돈이 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왜 우리에게는 잘 안 일어납니까? 성경에는 그 이유도 나옵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으러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 왔어요.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어요. 요한복음 9장의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는 이야기와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러면 그 말씀대로 요단강에서 씻으면 되고, 실로암에서 씻으면 됩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5장에서는 안 될 뻔했습니다. 그때 왜 그랬습니까? 바로 ‘내 생각에는…’ 하는 나아만의 생각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죄나 병이나 문제나 어려움에 매여 고통받고 삽니까? 만일 우리 지능지수가 2,000쯤 되면 이렇게 안 살 겁니다. 그러나 우리 지능지수가 100밖에 안 돼도 예수님의 지능지수가 10,000이라면 우리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예수님은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예수님의 방법으로 벗어나려면 내 방법 말고 예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그건 하나님의 방법이고, “진흙을 눈에 발라 실로암에서 씻으라”는 것도 소경의 방법이 아닌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의 방법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처럼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온전히 주님께 맡길 때

신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자기의 방법이 잘못된 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시계를 못 고쳐도 고치는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되고, 내가 자동차를 못 고쳐도 정비소에 맡기면 되고, 내 몸이라도 내가 치료를 못하면 병원 의사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고칠 수 있는 사람이 고치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도 예수님이 해결하시도록 내 문제를 그분에게 맡기면 됩니다. 여러분이 정확하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도움을 받길원하면서도 자신의 크고 작은 문제를 그분의 손에 맡기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의 손까지 오지도 않은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실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Goodnews Corps(GNC, 해외봉사단) 학생들을 훈련하면서 정말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학생들이 변하는 걸 봤습니다. 이번에 5기 GNC 학생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 학생들이 변화받아서 1년 동안 해외에서 봉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저나 여러분의 삶 속에도 살아계신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사단에게 속아서 마음을 닫고 ‘나’라는 생각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구나!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고 하니 이해가 안 갔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누워 있는 자기에게 예수님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니까 ‘나는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가 없는데…’ 하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할 때도 이유가 많았을 겁니다. “지금 눈뜨게 해 주면 내가 씻으러 갈게요” 할 수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무익하고 추하고 더러운 자신을 깨닫고,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이유를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방법이 잘못되었구나! 내 계획 가운데 틀린 것이 많구나! 내가 정말 잘못되었구나!’ 그것을 정확하게 알면 ‘비록 내 생각이 옳게 보여도 그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돼’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 생각에는 아닐지라도

열왕기상 17장에서 선지자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통에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어 나에게 갖다 주면 그 통에 가루가 계속 생긴다.” 믿음 없는 눈으로 보면 ‘저 영감이 떡 뺏어 먹으려고 수작부리네.’ 그렇게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겐 그게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떡을 가져다 드리면 통에 가루가 생긴다고요? 얼른 드리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눈으로 볼 때는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 떡 한덩이를 빼앗아 먹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교회가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재산을 빼앗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시간을 뺏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를 어렵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보다 더 축복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가 없어’, ‘어떻게 물로 씻는다고 눈이 나아?’ 그런 자기 생각이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도록 마귀가 미리 우리 속에 생각의 테두리를 쳐 놓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생각, 내 방법이 옳지 않고 다 틀렸다. 진짜 잘못됐다’라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는 아닐지라도 사단이 갖게 한 예수님과 다른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만나면

소경이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 눈은 예수님의 문제가 된 겁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 병은 예수님의 병이 되었습니다. 간음한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도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여자의 문제가 예수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 많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죄가 되고, 우리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나면 그때부터 그 문제도 예수님의 문제가 됩니다.
이제 여러분도 자기 생각을 다 비우고 ‘주님, 이 문제를 주의 손에 맡깁니다. 주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며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성경에서 믿음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감정을 바라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오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전부 비우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믿음으로 서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힘있게 일어날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되고

태국 글로벌캠프를 준비하는 일, 조선일보나 뉴욕 타임즈에 말씀을 싣는 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집회하는 일 등과 같은 일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작년 이맘때 하와이에서 글로벌캠프를 할 때도 비행기 좌석 잡는 것, 미국비자를 받는 것 등 모든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나님이 살아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일하실 수 없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여러분 마음에서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경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해 “실로암 못에 씻으라”는 말씀대로 씻어서 눈이 나았고, 38년 된 병자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대로 걸어가서 나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속에 사단이 주는 모든 생각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우리 안에 사랑하는 예수님이 살아 일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 예수님은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니라 추하고 못나고 악하고 믿음이 없어도 여러분 속에 일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그분에게 맡기고 여러분은 쉴 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되고 거룩하고 건강하고 기쁨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07.1.14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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