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음성을 믿으며 주님의 인도를 받는 복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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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음성을 믿으며 주님의 인도를 받는 복된 삶
2006.12.17 주일 낮 설교 요약 - 13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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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우리 선교회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번은 제가 합창단 단장님한테 “그라시아스 합창단원이 한 사람씩 독창회를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우리 단원이 어떻게 독창회를 합니까?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못 합니까? 예수님이 도우시는데, 합시다”라며 밀어붙였습니다. 단장님은 음악을 아시기 때문에 “적어도 독창회는 이 정도의 실력은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계시지만, 저는 별로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럴 수 있었습니다.
단원 중에 처음에 전원희 자매가 독창회를 했는데,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우태직 형제가 독창회를 가진 뒤에 하나님이 그를 새롭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송일용 형제가 독창회를 한 뒤에도 형제가 너무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독창회를 하면 좋아지는 것보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독창회를 하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시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을 하십니다.

율법의 한계

예수님은 우리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예수님 오시기 약 1500년 전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받았지만 그 율법이 인간을 선하거나 거룩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롬 8:1~3)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거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려고 예수님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만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와 같은 율법을 지켜 우리가 깨끗하게 된다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가장 거짓된 설교자는 “사랑합시다. 거룩하게 삽시다. 정직하게 삽시다”라고 좋은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은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쓸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낍니다. 보통 사람들은 “착한 일 해라. 선하게 살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착한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아닌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합니다.

안 맞으면 맞춰가며

며칠 전에 제 아내와 딸, 아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갔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나는 네 엄마하고 성격이 너무 안 맞아”라고 했더니 아들이 놀라며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데엔 아무 문제없다. 안 맞으니까 맞춰가면서 살기 때문이지.”
그리고 아들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부부가 마음이 맞아서 살려고 하면 어려워. 텔레비전에도 볼륨을 조절하는 조정기가 있고, 자동차도 액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잖아.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어. 부부는 마음이 다 맞아서 사는 게 아니다. 맞추면 다 맞게 되어 있어.”
여러분, 신앙은 부부 사이와 너무 비슷합니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읽고 남편도 아내의 마음을 읽으면서 서로 복음을 위해 살면 너무 은혜롭습니다.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나옵니다. 그 여자는 간음하다 잡혀서 돌에 맞아 죽으러 끌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어요.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전부 돌을 버리고 멀리 도망을 가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저는 그 여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두려움, 불안,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고 돌려보내셨을 때, ‘살았다! 저분이 나를 살리셨어! 저분이 아니면 내가 죽었는데….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과 슬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마음이 감사와 희망,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뀌고

어느 날,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 여자는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완전히 변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여자가 이렇게 변하다니…’ 하는 마음이 들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여자에게 “내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만 그 말에 이 여자가 변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제가 예수님과 그 여자의 대화를 거의 외다시피 하면서 천천히 점검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때문에 여자가 변할 것 같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날 아침에 여자가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데 누군가 그 여자에게 미리 이야기했다고 합시다. “만일 네가 오늘 우물가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거야. 그 후에 너는 복음을 전하러 동네방네 뛰어다닐 거야”라고 했다면 “아이고, 난 예수님 안 만날 거야. 난 복음 전하러 안 다닐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와야

예수님은 마음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아까워하면서 십일조 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죄짓지 않으려고 애쓰고 각오하는 것도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미움과 탐욕, 음란, 방탕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마음을 고쳐서 깨끗하게 살려고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양파는 아무리 까도 알맹이가 안 나옵니다. 연탄은 아무리 씻어도 까맣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아무리 스스로 죄를 씻어도 인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조금 선하게 보이는 사람, 조금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 조금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38년 된 병자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이 있고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람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그가 찾아갔지만 사마리아 여자에게는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병자는 예수님에게 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병자가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며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병자는 ‘물이 동할 때 저 못 안에 들어가면 내가 낫는데, 내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이 내려가는구나. 누군가 나를 못 안에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자가 가진 마음과 전혀 다른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병자는 자신이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정관념을 바꾸시고

지난 봄에 우리 교회는 해외선교 후원계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해외선교를 위해서 한 달에 10만 원씩만 드려 보세요. 그래서 1년이 지난 뒤에 10만 원을 드리지 않았을 때보다 삶이 더 부유해졌다고 느껴지거든 그 다음에는 20만 원을 드리세요. 그러나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면 연보하지 마세요.” 저는 주님이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주시면서 제 삶을 더 새롭게 해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 하나님은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전부 바꾸어 주셨습니다. 제가 가졌던 마음과 전혀 다른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왔을 때 사람을 대하는 것이나 돈을 쓰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 모두가 너무 은혜롭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늘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너는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 하나만 받아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고 새로워집니까? 제가 구원받고 난 뒤에 주님은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방송을 할 줄 압니까, 책을 출판할 줄 압니까, IYF를 운영할 줄 압니까, 건축을 할 줄 압니까, 복음을 전파할 줄 압니까, 목회를 할 줄 압니까?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시면서 저를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결심

시몬 베드로가 최후의 만찬석에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지만 그 밤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셨는데, 몇 차례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주님한테 하고 싶었지만 주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머뭇머뭇하다가 못한 겁니다. ‘나 같은 인간이 무슨 사도야, 나는 아니야.’ 그날 베드로는 실망 속에 깊이 젖어서 ‘차라리 옛날처럼 고기나 잡으러 가자’는 마음에 갈릴리 바다로 갔습니다. 그날 밤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새벽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너에게 고기가 있느냐?” “주여, 없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봐라.” 그 말씀대로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끌고 물가에 와서 보니 주님이 숯불을 피워놓으셨고 그 옆에는 한 병의 물과 떡이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면서 시장하고 추위에 떨던 그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떡과 불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금방 잡은 고기를 가져와라. 네가 잡은 고기를 한번 먹어보자”고 하시면서 베드로를 향해 입을 여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전 같으면 “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도 실수를 많이 하니까 사랑한다고 해도 정말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자기를 못 믿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너무나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어.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어. 내가 무슨 예수님의 제자야, 나는 어부야. 어부로 돌아갈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시 갈릴리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 뿐

저도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목사고 하나님의 종이야, 이젠 끝났어’라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마음의 세계 속으로 여러 번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 귀한 복음을 전해야하는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전도할 수 없어. 끝장이야’라는 마음으로 기울어질 때 마음 한쪽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복음전도는 끝났어. 그러나 지금 전도할 수 없니?” “주님, 전도야 할 수 있지만 하면 뭘 합니까?” 그러다가 ‘그래, 그럼 할 수 없을 때까지만 하자’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후로 어려운 문제가 다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사단은 우리를 속여서 절망 속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난 괜찮아’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뒤 고기나 잡으면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나 같은 인간에게 당신의 양을 맡기십니까? 이건 말이 안 돼요, 안 돼.” 그러나 주님은 세 번이나 주님의 양을 베드로에게 맡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마음을 일으켜주시니까 베드로에게도 그 마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기도가 안 될 때 기도하려고 애쓰지 말고 주님이 마음을 일으켜 주실 때를 기다리세요.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는데 왜 내겐 일어날 마음을 안 주시지? 사마리아 여자의 마음을 바꾸신 예수님이 왜 내 마음은 이렇게 황폐케 하시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하신 주님이 왜 내겐 이렇게 하시지?’ 하면서 주님을 한번 기다려보는 겁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주님을 기다리면서 주의 음성을 들으면 주님이 당신의 마음을 주셔서 뭐든 주의 마음으로 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일으키시고

주님은 절망 속에 빠져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그 마음에 소망을 주고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믿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베드로는 그냥 고기 잡다 한평생 지냈을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역사해서 그때부터 베드로는 지금까지 가졌던 마음과 전혀 다른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복음을 향해 힘있게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을지라도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스럽습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안 돼. 나는 연약해. 나는 부족해.’ 그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럴지라도 여러분이 그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주님이 찾아오셔서 힘을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주님을 기다리고 의지하십시오. 주를 믿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사랑하는 주님이 절망 속에 있는 여러분에게 오셔서 절망을 물리치고 소망과 믿음을 주시고 기쁨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새 마음으로

여러분, 하나님의 종들이 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을 입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자기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근을 당하고 아내를 빼앗기고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주님이 오셔서 도우시고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도 주님이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다시 육신적인 생각이 여러분을 망가뜨려서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지, 나는 안 돼’ 하면서 자기 속에 깊이 젖게 됩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이 ‘내가 이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데 그때도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은 여러분이 절망 속에 있을 때나 어려울 때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주의 마음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그 마음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가서 일하게 하십니다.

간절히 말씀하시는 주님

예수님은 오늘도 조용히 여러분의 마음을 찾아오십니다. 자기 생각 속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위해 마음을 비워두십시오. 그리고 주의 음성을 한번 들어 보세요. 또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조용히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과 마음을 나눠 보십시오. 그런 사이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롭고 새로운 마음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그 주님이 살아계셔서 “내가 네 문제를 해결해 줄게. 나를 믿고 그 문제를 내게 한번 맡겨 봐. 내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 줄게.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해 줄게. 내가 너를 복되게 할게. 내가 네 죄를 사한 것만 믿지 말고 내가 네 인생 전부의 주인인 것을 믿어. 네 자신 전부를 내게 맡겨 봐” 하고 오늘도 간절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006년이 다 저물어가는 즈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지 이제는 예수님의 음성을 믿고 예수님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주의 은혜 가운데 거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새로워지고, 또 예수님이 주신 평안함과 은혜, 예수님이 주신 밝은 마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었을 때,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힘있게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베드로나 바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 2006.12.17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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