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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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2007. 10. 28 주일 낮 설교 (요약) - 17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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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려고 애써보지만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 안에서 기쁘고 감사한 일들도 만나지만 어려운 일과도 많이 부딪히는데,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으나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분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목사가 저런 사람 마음에 확신을 갖도록 설교를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듭니다. 또 구원은 받았지만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분을 보면 ‘저분은 육신 속에 매여 있어서 설교를 통해 육신적인 부분들을 깨뜨려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성경을 좀 더 읽고 기도하려고 애를 쓰고, 또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서 사람들이 믿음을 갖도록 애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그렇게 해서 교회가 달라지거나 성도들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성경을 잘 알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우리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실 저나 다른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책임져야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무책임하고 나태하고 방종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잘하지는 못해도 잘하려고 애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신앙은 쉬운 것

어제는 인터넷 영어 강의를 들었는데, 그 강사가 하는 말이 마음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무조건 영어책을 떼기 위해 공부를 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나와도 영어 한마디도 못합니다. 그러나 영어는 간단한 단어부터 익혀서 활용하면 쉽고 재미있는데, 기초부터 익히지 않고 높은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니까 부담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에서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을 때 그가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은 아는데, 여러분이 병에서 나아본 적은 있습니까?
신앙은 실제로 참 쉬운데도 마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어렵고 부담스러워지는 겁니다. 저는 우리 선교회의 사역자에게 “내가 목회하는 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이느냐?”는 질문을 종종 합니다만, 신앙은 결코 어렵거나 힘든 게 아닙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문혜진 자매가 아프리카 가나에서 Good News Corps 단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예배당 공사 중에 척추를 다쳤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제 마음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이 젊은 대학생이 한평생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지내야 한다면 그 인생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는 ‘내년에는 천여 명 되는 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혜진이 부모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자 그 모든 것이 굉장히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하나님이 제 마음에 한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 일을 저와 같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는 그 말씀이 제 마음을 정복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문혜진 자매가 다쳤을 때 처음에는 가나에서 수술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 의사는 일어날 수 있도록 수술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아프리카 의사한테 혜진이를 맡길 수 없어서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가나에서 한국까지 운항하는 항공사는 아랍에미리트 항공사뿐인데, 그 비행기는 두바이에서 14시간 머물렀다 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두바이에서 머무르는 동안 지낼 호텔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으니까 태워줄 수 없다는 겁니다.
제 마음이 상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혜진이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있는 권오선 선교사에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 중에 척추 수술을 제일 잘하는 곳을 찾아서 공항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라. 척추가 손상되어서 일분이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 혜진이가 도착하는 즉시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병원에 혜진이의 상태를 알려라” 하고 당부했습니다.
보통 병원에서는 다른 병원에서 환자를 진단한 결과를 믿지 않고 다시 검사를 하지만 독일 병원은 아프리카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를 믿고 수술을 진행해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병원은 세계에서 척추 수술을 제일 잘하는 병원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걸 보면서 ‘혜진이가 다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마음이 들어 평안하게 쉴 수가 있었습니다.

“선하게 바꾸실 거야”

그리고 혜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딸을 데려다가 하반신을 쓸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혜진이가 예배당 공사 중에 떨어져 척추 1번 뼈가 부러졌는데, 지금 하반신을 쓸 수 없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습니다.
혜진이 어머니의 첫마디는 “목사님, 목사님이 저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목사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였습니다. 자기 딸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 자매님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셨지만 이런 일을 허락하셨다면 예수님이 악당이든지, 아니면 이 일을 선한 일로 만들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믿는 예수님은 악당이 아니니까 이 일을 선한 일로 바꾸실 거야’ 하는 확신이 들면서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혜진이를 만나서 간증을 들었을 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있는 것이 아주 감사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하나님의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에 혜진이가 회복되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 날 로마서 8장 37절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없었으면 그 짐을 제가 다 지고는 두려워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40여 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떨기나무의 불꽃을 타게 하셨습니다. 처음에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양을 먹이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는 걸 보고는 궁금해서 떨기나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 모세는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이 모세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아브라함 자신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우리가 구속함을 받고 난 뒤에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우리로 말미암습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것은 모세의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려면 나도 바로처럼 큰 권세와 군대가 있어야 하고 말도 잘해야 돼’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셔도 어느 정도는 내가 잘해야 하는데, 나는 입술도 둔하고, 혀도 뻣뻣하고, 말도 잘 못해서 못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
신앙의 비밀을 깨닫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을 믿는 믿음을 갖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해 보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안 돼’ 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기가 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마음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일하실 수 있는 믿음이 생기면 그때부터 성령이 일하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면 교회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듯이 여러분 속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다면 아브라함이 자손을 낳아 많은 자손을 거느려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에서는 의지를 나타낼 때, ‘will’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만드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절뚝발이라도, 몸이 약하더라도, 아내가 아이를 못 가지는 여자라도, 그것은 우리 인간의 세계에서 문제가 되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믿었다면, ‘나는 복의 근원이 될 거야. 지금은 자손이 없지만 나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갖게 될 거야’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여보, 아들이 태어날 건데 아기 옷도 준비하고 기저귀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하며 믿음으로 자유를 누렸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자기가 자식을 낳으려고 발버둥질쳤습니다. 자기가 말씀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불의의 씨를 낳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99세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칼로 찌르든지 번제로 드리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일을 이루시는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사도 바울은 선을 원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대부분은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바꾸실 것이다’ 하는 마음보다 ‘내가 구원받고 교회 나오니까 선하게 살아야지, 성경을 읽어야지, 잘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겁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선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과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바꾸실 것이다’ 하는 마음은 전혀 다른 마음입니다. 전자는 선하게 살려는 주체가 ‘나’이고, 후자는 선하게 살도록 하시는 분이‘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하여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확히 아시고 공급하시며

저는 1971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장모님께 인사하러 갔는데, 장모님이 처음에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가?”라고 물으셨습니다. 장모님의 남동생이 신앙으로 산다고 하면서 전혀 가정을 돌보지 않아 늘 동생 집에 쌀 갖다 주고 돈 대주었던 것 때문에 걱정이 되셨던 겁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지금은 혼자 몸이지만 결혼해서 아들 딸이 생기고 가족이 늘어나면 그때는 어떻게 살겠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장모님을 뵈러 가기 전에 저는 하나님이 제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걸 경험했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서 발을 씻으려고 보니 발이 너무 더러웠습니다. 처음엔 ‘오늘 아침에 발을 씻었는데 왜 발이 이렇게 더럽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튿날도 여전하기에 신발을 살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구멍 난 구두를 신고 다녔던 겁니다. 그날부터 주님께 구두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제가 복음을 전한 학생이 장교가 되어 군에서 나온 단화를 제 발에 맞을지 모르겠다는 편지와 함께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소포를 풀기 전에 큰소리쳤습니다. “이 단화는 하나님이 내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내 발에 정확하게 맞을 것이다.” 그 형제는 제 발 사이즈를 전혀 몰랐지만 그 구두는 제 발에 꼭 맞았습니다. 그 구두를 신고 장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할 수 없음을 발견하고

그때 저는 장모님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와이셔츠나 바지가 없으면 늘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구두나 양말,장갑이 없어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은 꼭 두 짝씩 주셨습니다. 제 손이 몇 개인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저 한 몸이지만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이 생기면 그에 필요한 만큼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해 사는 동안 어려운 일도 있었고 가난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필요한 걸 정확하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거듭났다면 여러분의 주인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인생 전부를 책임지시는 분이 예수님이신데, 그분에게 맡기질 못하고 자신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고, 의로워지려고 하고, 선해지려고 하고, 진실해지려고 하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가 설교를 잘하려고 하고 인정받는 목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애써 보니까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저는 목회를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하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우리는 구원받은 후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선이 행해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포기해야 합니다.
19절의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원하는 선을 행치 아니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겁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0~24)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하면 곤고해지고 자신이 없어지고 믿음이 없어집니다. 결국은 곤고함과 피곤함으로 지쳐서 ‘나는 안 돼. 안 돼’하고 자신에 대해 포기하게 됩니다.

내 짐을 주님께 맡길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사도 바울은 자기가 선을 행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옮겨진 겁니다. 이렇게 자신이 무익한 걸 깨달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신앙은 쉽고 감사하고 재미있고 즐겁게 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려면 주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가 무슨 전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나도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대전도집회 한다고 연보 작정을 했습니다. 내가 하려면 부담스럽고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역사하시면 물질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주님이 물질을 공급해 주십시오. 주님만 바라봅니다’ 하며 그 짐을 여러분이 지는 게 아니라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일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할 일을 자신이 하려고 하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살아계신 주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하나님만을 믿어야

저는 ‘내가 망해도 주님을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문제입니다’ 하고 믿음으로 나갈 때 주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실 걸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혹시 주님이 안 주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주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단의 음성입니다. 그때 이렇게 사단을 대적하십시오. ‘사단아 물러가라. 우리 주님은 주신다고 하셨어. 하나님이 일하시고 은혜 베푸실 거야.’
믿는 마음을 거스르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기대하는 모든 걸 다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십시오.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처음부터 믿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믿음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도 처음의 모세, 다윗, 아브라함처럼 지금까지 믿음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 눈에 가능하게 보이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 나갑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인간적인 방법이나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여러분을 믿는 마음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정확히 가지면 분명히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일을 하면서 새롭고 놀라운 믿음의 삶을 경험할 것입니다.

- 2007. 10. 28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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