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의지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빌립’

[사도행전 8장 1절 ~ 8절] - 2019. 7. 7. 오전 주일예배 설교 - 770호

2019-07-12     주간기쁜소식

내 생각 vs 말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그 말씀 속에는 우리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내 생각을 선택하느냐? 말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말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놀랍게도 예수님이 이루신 역사가 우리를 통해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제가 목사로서 가장 행복한 때가 있다면 어제까지만 해도 살인죄로 교도소 안에서 장기수로 지내던 죄인이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순간 변화되는 것처럼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때입니다. 저는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는데 그들의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가면 하나같이 변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합창단
 
2000년 우리 선교회의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창단될 무렵, 조선일보에 우리나라 유명한 피아노 트리오가 해체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가지 악기 연주자가 함께 공연하는 것인데 저는 ‘세 명의 마음도 하나가 되기 어려운데, 수십 명이나 되는 합창단원들을 어떻게 이끌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합창단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합창단은 하나님의 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하나님이 합창단을 이끌어 가셔서 결국 합창단이 잘되겠구나’라며 합창단 공연 중에 항상 말씀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라시아스 음악은 좋다고 하면서도 제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짧게라도 말씀을 전했고 결국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공연 중간에 제가 말씀 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라시아스는 2009년 제주 국제합창제에서 최고상, 2011년 부산 국제합창제에서 최고상, 2014년에는 이탈리아 리바 델 가르다 국제합창대회에서 대상, 스위스 몽퇴르 합창제 혼성부문에서 1등상 및 최우수 관객상, 2015년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대회에서 최고상과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라시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지난주 서울 롯데홀에서 열린 ‘스바보드나’ 공연에서는 모든 관객들이 음악을 듣고 감격했습니다. 

20년 동안 술을 마신 남편

몇 년 전에 진주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마치고 밤이 늦어 진주교회로 가려다가 예전에 합천교회 형제자매들이 “목사님, 우리 교회에도 한번 오세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합천교회로 갔습니다. 합천교회에 밤 12시쯤 도착했는데 그 시각에 제가 오리라고는 형제자매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늦은 밤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말씀을 듣고 밤 1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한 부인자매가 돌아가지 않고 남은 채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도저히 남편과 살 수 없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결혼 초 2년간은 술을 마시지 않더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밥도 안 먹고 소주 2병을 사발에 부어 마십니다. 매일 퇴근 후 집에 오면 여기저기 버려진 술병을 치우는 게 일인데 많을 때는 12개, 적을 때는 8개입니다. 짐승하고 사는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자매님, 울지 말고 남편과 함께 새벽에 교회로 오세요” 하고 상담 약속을 했습니다. 그 자매님이 이른 새벽에 남편을 데리고 왔는데 형제님은 벌써 소주 2병을 사발에 부어 마셨는지 술 냄새가 풀풀 났습니다. 그 때 저는 그 형제님과 ‘말씀을 믿을 것인가? 내 생각을 믿을 것인가?’를 두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도 적용될까

여러분, 술주정뱅이는 술 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소주 힘을 못 이기시겠습니까? 제가 히브리서 10장 14절을 펴서 “형제님, 한번 읽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여기 술주정뱅이인 형제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됩니까? (예.) 다시 묻겠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도 적용되나요? (예.) 점점 ‘예’ 하는 분이 늘어나네요. 그러나 아직도 절반 가량은 대답하지 않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지구상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에게도 적용되겠죠? 살인자, 강도에게도 적용되겠죠?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가’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한 제물로’란 예수님 당신을 속죄제사의 제물로 드려서 우리를 거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한두 달 거룩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거룩하게 했고 온전케 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창 17:1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99세이고, 사라는 89세인데 지금 아기를 가져도 내년이면 자기는 100세이고 사라는 90세이니까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 사라는 90세야’ 하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나 모세,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귀한 종들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깨뜨려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므로 어느 누구든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제가 다시 그 형제님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 거룩해요? 거룩하지 않아요?” “거룩하지 않습니다.” “형제님이 어떤데요?” “추하고 더럽습니다. 술주정뱅이입니다.” 저는 히브리서 10장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는 말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형제가 매일 술 마시고 술주정만 부리는데 거룩한 것인가? 거룩하다면 술도 끊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잖아?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 흘리며 모든 죄를 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형제가 영원히 온전하고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믿을 게 따로 있지. 지금 이 형제는 술만 마시고 술에 취해 있는데 어떻게 거룩하고 온전해? 이 형제는 온전하지 않아… 아, 나는 이렇게 말씀과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내 생각과 말씀은 서로 달라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내 생각과 말씀은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내 생각이 옳으냐? 성경 말씀이 옳으냐?’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말씀은 항상 옳기 때문에 내가 볼 때 아무리 추해도 말씀에서 거룩하다면 거룩한 게 맞습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시면 깨끗한 게 맞습니다. 제가 볼 때 그 형제님은 짐승처럼 더럽고 추한 술주정뱅이입니다. ‘그런 형제가 정말 거룩해요? 온전해요?’라고 하나님께 질문하면, 하나님은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제가 보는 견해와 관점에서 ‘그 형제는 더러워, 거룩하지 않아’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기 때문에 온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형제를 온전하다고 말씀하시니까 저도 ‘그 형제는 온전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형제님, 온전합니까?

여러분,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에서는 분명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며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를 거룩하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형제님과 이런 마음의 싸움을 했습니다. 제가 그 형제님에게 “온전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형제님이 자신을 볼 때 당연히 온전하지 않으니까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이 성경을 다시 읽어 보세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형제님의 모든 죄를 씻었습니다. 그럼 형제님은 온전합니까?” “온전하지 않습니다.” “형제님, 형제님 생각에는 온전하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형제님이 온전하다고 하십니다. 누구 말이 맞아요?” “하나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형제님은 온전하지요?” “온전하지 않습니다.” “형제님은 온전하지 않다고 하고 하나님은 형제님을 온전하다고 하셨죠?” “예,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형제님을 온전하다고 하시면 온전한 것 아니에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형제님, 온전해요?”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 형제님은 자신이 술 끊고 바르게 살아야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형제님이 술 마시고 방탕하게 사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형제님의 죄를 다 씻고 온전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믿으면 온전한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형제님, 온전합니까?”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15분 동안 서로 싸우다가 그 형제님의 마음에서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했으면 내가 술을 마시지만 온전하구나’ 하고 믿으면서 처음으로 “아아... 오오...온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형제님은 ‘내가 술주정뱅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내 죄를 다 사하셨지. 내가 술 마시는 이 문제도 해결하셨구나’ 하며 자신이 온전하다고 믿게 되자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하루에 10병씩 마시던 술이 그날, 딱 끊어졌습니다. 지금은 전도사가 되어 힘 있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빌립의 마음속에는

오늘 아침에 사도행전 8장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전하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고,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 옥에 넘기고 죽이는 등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때 빌립이 사마리아에 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아마 ‘복음 전하다 들키면 죽어. 스데반이 죽었어. 많은 사람이 잡혀 가서 죽었대. 조심해야 돼. 나도 잡히면 죽거나 감옥에 갈지 몰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의 마음속에 계신 예수님은 ‘나를 증거해. 내가 너와 함께해. 내가 한 제물로 너를 영원히 온전케 했어. 내 피가 너를 거룩하게 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저도 매일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나는 죄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씻어지고 의로워졌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압곡동에서 만난 아주머니

오래전에 제가 압곡동에서 세 살던 주인집 아주머니는 담배를 아주 많이 피셨습니다. 담배가 비싸서 돈 주고 살 수 없으니까 담배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가 자라면 뽑아서 새끼줄로 엮어 그늘에 매달아 두면 달려 있는 담뱃잎이 마릅니다. 그 담뱃잎을 손으로 비벼 가루를 만든 후 신문지에 말아서 피웁니다. 저는 그 아주머니와 늘 담배 때문에 싸웠습니다. “아줌마, 무슨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세요? 담배는 해롭고 특히 신문지에 말아 피면 신문지에 묻은 납 성분 때문에 연독(鉛毒) 올라요.” “총각이 몰라서 그래. 난 담배를 안 피면 머리가 아파서 안 돼.” 저는 오전에 주로 방에서 성경을 읽고 아주머니는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셨습니다. 
어느 날 그 아주머니의 친구가 왔는지 생소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있었나?” “잘 있다. 장사 잘되나?” “그래. 근데 저 아랫방 세놨나?” “교회 전도사 왔다.” “전도사님? 어디서 왔는데?” “대구서 왔다.” “몇 명 모이나?” “애들 댓 나온다.” 문짝 하나 사이로 얘기가 다 들리는데 그분이 계속 저에 대해 묻길래 ‘저분은 분명 교회 다니시는구나’라는 생각에 성경책을 들고 나가서 “아주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그분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죄인이세요?
 
그 부인에게는 앞을 못 보는 소경인 남편과 네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미역, 다시마, 멸치 등을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팔았습니다. 그 당시 교회를 다니진 않았지만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주머니는 죄인이세요?”라고 묻자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을 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23절의 말씀은 사람들이 잘 알고 믿지만 24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됐다”(롬 3:24)라는 말씀을 모르니까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부인과 ‘죄인이냐? 의인이냐’라는 문제를 두고 말씀으로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짓고 악을 행했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죄의 형벌을 받아 죄를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했거나 잘한 것은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죄를 결정하는가 

여러분, 로마서 8장 3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재판장에서 누가 죄를 결정합니까? 죄인이 결정합니까? 아닙니다. 죄를 결정하는 분은 판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절대로 죄인을 ‘의롭다’고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 하시면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 아니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인을 의롭다 하지 않고, 분명하게  의인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가 지은 몇 가지 죄나 오늘까지 지은 죄만 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기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죄를 짓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죄도 예수님이 완벽하게 씻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온전케 했다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의롭다 하시면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착하고 예쁜 사람의 죄만 사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영원히 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죄가 남김없이 다 씻어져서 우리가 의롭습니다. 그날 그 부인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사했는데 그 부인은 성경을 정확히 모르니까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세상을 떠나셨지만 구원받은 후 기뻐하며 복되게 사시는 걸 봤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대충대충 읽어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죄가 어떻게 씻어졌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냥 의롭다 하시면 거짓말쟁이가 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여러분, 빌립이 사마리아에 갔을 때 ‘스데반이 하나님을 믿다가 돌에 맞아 죽었어.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죽였어. 나도 그렇게 될지 몰라’ 하며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단은 빌립에게 두려움을 줘서 말씀을 덮어버리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빌립이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다 보니 죄를 씻어주신 주님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빌립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주님이 나를 도우시겠구나. 그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하며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빌립의 마음은 예수님으로 가득 찼습니다. 빌립의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 두려움, 슬픔, 염려를 이긴 것입니다. 빌립에게 하나님이 살아 일하시니 중풍병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쫓겨나갔습니다. 만일 도박꾼, 마약중독자, 게임중독자의 마음을 예수님으로 가득 채우면 예수님이 도박을 내쫓고 마약을 내쫓고 게임을 내쫓아 우리는 밝고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2019. 7. 7. 오전 주일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