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南과 北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소해금으로 자유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탈북 예술인 박성진

2015-12-18     주간기쁜소식

박성진(45) 씨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소해금 연주자다. 그의 소해금은 기존의 해금을 개량하여 특유의 음색을 내는 것이 특징인데, 최근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탈북 예술인 박성진(45세)
2006년 대한민국에 정착
SBS의 놀라운대회 ‘스타킹’에 2회 출연, 연주
MBC 사극 ‘동이’의 주제가 녹음 참가
장윤정의 트로트곡 ‘첫사랑’ 등의 음반에 참여
 
특별함에 특별함을 더한 탈북 예술인 
 
이번 연말에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탈북 예술인 박성진. 지난 12일 의정부 실내체육관에서 ‘장윤정 콘서트’가 열리는 날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취재팀을 그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박성진 씨와 대화가 시작되면서 기자의 어떤 질문에도 답변해 주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말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대한민국에 누구보다 대한민국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2006년 처음 대한민국 땅에 발을 내디딘 박성진 씨는 내년이면 한국 생활 10년 차에 접어드는 탈북 예술인이다. 현재 가수들의 음반 녹음 작업에 참여하고 또 지방 축제장을 다니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탈북자로서의 그의 삶도 특별하지만 소해금이라는 국내 유일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그를 더 특별하게 했다. 11세 에 평양예술대학에 들어가 처음 소해금이라는 악기를 만나 9년 동안 소해금이라는 악기에 정을 붙였다. “처음 소해금을 지정받았을 때 여자들이 다루는 악기여서 싫어했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감사해요.” 당시에는 어린 나이여서 소해금의 음악적 매력이나 악기의 가치보다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출신 성분 등을 이유로 그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그곳 체제에서는 꿈이나 비전을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구요.”
 
작은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연주자
 
“인천 국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별세상에 온 줄 알았다”라고 표현했다. 남‧북한이 똑같이 해방을 맞이하고 똑같이 전쟁을 겪었는데 두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깨끗한 거리와 잘 정비된 도로까지. 
최근 북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한 탈북자 김련희 씨 사건으로 재입북 탈북자가 문제된 적이 있다. 현재 국내 탈북자가 3만여 명에 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3국으로 가거나 재입북하는 이들에게는 무엇이 더 필요했던 걸까? 박성진 씨는 “탈북자들이 이곳에 살면서 남은 향수, 문화의 차이 등 어떤 이유에서든 재입북을 하지만 제대로 살진 못해요. 한 번 자유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 누리는 그 작은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에게도 대한민국의 삶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수에 대한 꿈을 키우며 음반 준비를 하던 중 북한의 미사일 실험으로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자연히 박성진의 앨범 작업이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꿈이 좌절되는 일을 만났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곳으로 도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로 간 사람들을 봐도 결국 대한민국으로 다시 오고 싶어해요. 더 발전된 곳에 가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죠. 어디서든 마음을 비우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통일되면 고향에서 소해금 연주하고 싶어
 
음악하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계획이 있을 것 같았는데, 아내와 딸(7)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박성진 씨는 꿈도 미래도 소박하다. “음악하는 사람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평범하게 살면서 저보다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위로와 힐링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은 게 전부예요.” 탈북자들은 사회에 대해 투정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왠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졌다. 
통일이 되면 탈북자들은 가장 먼저 뭘 해보고 싶을까? 연주자로서의 박성진 씨는 역시 음악인답게 통일이 되면 고향 땅에서 소해금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통일이 되기 전에 남과 북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히려면 문화적 통일이 먼저 되어야 한다며 자신을 통해 남쪽의 노래가 북쪽에 들리고 북쪽의 노래가 남쪽에 전해지길 희망했다. 기자는 인터뷰 내내 큰 욕심없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면서 오늘날 많은 것을 누리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해금
1960년대 북한이 복고주의를 없애자는 운동 차원에서 만든 북한의 국보급 악기로 기존의 해금을 개량하여 4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금과 바이올린의 중간 소리를 내어 음색이 청아하며 다른 악기와의 어울림이 뛰어나다.
 
고정연 기자 jyko@igood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