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그려요

시력 잃었지만 희망의 그림 그리는 서양화가 박환 화백 트루스토리

2019-11-29     주간기쁜소식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그림을 그리는 박환(62) 화백. 역경을 딛고 그린 그림을 통해 그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6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앞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색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최악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빛조차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시각장애 1급인 서양화가 박환(62) 화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주 기자는 강원도 춘천시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박환 화백의 자택이자 작업실인 이곳에 들어서니 먼저 폭포가 그려진 캔버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이 안 보이는 이가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동감 넘치며 디테일한 표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요즘엔 폭포를 그리고 있어요.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죠.” 그는 자신이 최근에 그리고 있는 작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시력을 잃기 전까지 그는 서양화로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 하던 화가였다. 당시 썩은 나무껍질 등을 붙여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 질감과 입체감을 살리는 독특한 방식의 표현 기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12년 서울 인사동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 후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에 초청되어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 앞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화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시력을 잃게 되었다.

가족의 권유로 다시 그림을 그리다

사고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소파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는 멍하니 앉아만 있으니 1시간이 2~3일처럼 길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그런 그에게 여동생은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며 연필과 스케치북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엔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리냐며 짜증과 화를 내다가 스케치를 해보았는데, 가족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여 좌절감 속에 포기했습니다. 또 다시 그려보다 포기하고…그런 일이 계속 반복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그림을 보고 제가 표현하려고 한 것을 그대로 알아보면서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연필로 스케치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는 실을 이용해 스케치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실을 핀으로 고정시킨 후 흙이나 청바지를 덧대어 입체감 있게 표현했고, 붓이 아닌 손의 감각을 이용해 물감을 묻혀 색을 입혔다. “자연의 모습을 주로 그리는 편인데 시력을 잃은 후에는 ‘봄’에 관한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봄은 희망을 갖고 기대감을 갖게 되는 계절이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박 화백은 설명했다.

실명 후 첫 개인 전시회에 관람객들 호평

그렇게 그림을 그리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2017년 1월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라는 타이틀로 실명 후 첫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전시회에 온 관람객들은 ‘어떻게 눈이 보이지 않는데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하며 놀라워하는 동시에 그의 그림을 보고 위로를 얻기도 했다. “어떤 분은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자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고 자신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하셨다. 이런 반응이 저에게도 위로가 되고 그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전혀 없어 답답하고 죽고 싶었던 그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림으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박 화백은 올해도 12월에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과 그림에 대해 강의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전 세계적으로도 시각장애인 중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예술인들을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정부나 미술계 쪽에서 그런 지원이 부족한 것이 좀 안타깝다”면서 장애예술인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