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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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2005. 1. 30 주일설교 요약- 3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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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저는 옛날에 참 깨끗한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 마음이 바뀐 뒤에는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제 삶이 깨끗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나 도박하는 사람,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마음의 세계를 알면 쉽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요 5:1) 요한복음 5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라는 못에 가셨는데 그 안에는 많은 병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면 38년 된 병자는 고통 속에서 계속 지내야만 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 그는 병에서 고침을 받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없었다면 많은 무리들이 들에서 굶주려야 했는데 예수님이 오신 뒤 떡을 주셔서 그들이 배부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간음한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여자는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눈먼 소경으로 한평생을 살아야 했는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소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여러분, 이런 일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도 똑같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아버지

제가 서른 한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신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계셨어요. 제가 아버지께 예수님을 믿으라고 자주 권했지만 아버지는 예수님을 거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흔이 되셨을 때 위궤양이 아주 심해져서 위 출혈 현상으로 자꾸 빈혈이 일어났어요. 헤모글로빈 수치가 5.7까지 내려가서 계속 수혈을 받아도 피가 모자랐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위장에 고여 있는 피를 토했습니다. 그때 그 방에 저와 아내, 그리고 아버지 세 사람이 있었어요. 우리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이게 마지막이구나.’라고.

하늘나라에 가려면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녹음 장치를 한 뒤, 아버지가 유언을 하셨어요. “내가 죽거든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다투지 말고 내 묘를 너희 어머니 옆에 만들어 다오.”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장례를 치러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몸은 그렇게 모시면 되는데 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아버지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으시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근데 너무 늦었다. 내가 무슨 공로가 있어야 하늘나라 가지.” 아버지는 죽음 앞에 서 있었습니다. 죽음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 몰랐습니다. 이제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너무 늦었다.” 절망에 깊이 잠긴 목소리였어요. 몇 시간 후에 세상을 떠나셔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일 년이 남았다 할지라도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일을 하실 수 없어요. 앞으로 십 년을, 아니 백 년을 더 사신다 할지라도 하늘나라 가시기에 합당한 조건을 아버지는 갖출 수가 없습니다.

도달할 수 없는 주님의 기준

신앙생활 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율법 지키면, 십일조 내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굉장히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열심히 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이 지구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실패를 하지만 재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암에 걸렸지만 병과 부지런히 싸워서 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지만 다시 치료해서 운동선수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 우리의 노력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열심히 산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만큼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은혜 베푸시길 원하는 주님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요 5:2~4)
연못가에 사람들이 누워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천사들이 가끔 하늘에서 내려와 물을 동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 그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들어간다는 것은 뭘 의미합니까?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 즉 다른 사람보다 눈이 밝거나 귀가 밝아서 물이 동하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행한 능력을 따라 대가를 얻는 그곳에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6장 24절에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능력이나 실력을 따라 받는 게 아닙니다.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햇빛을 주셨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많이 주고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적게 줍니까? 부지런한 자에게는 넓게 비추고 게으른 자에게는 좁게 비춥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을 주실 때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똑같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기를 주실 때 그 공끼를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따라 주시는 걸 원치 않습니다.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자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오셨습니다. 그 연못가에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습니다. 왜 거기 누워 있습니까? 그들은 자기의 능력을 믿습니다. ‘난 다리가 불편하지만, 나는 위장병 환자지만, 나는 반신불수지만,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할 때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면 병에서 나음을 입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은데, 거기에는 은혜를 받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은혜는 능력을 따라 받거나 잘해서 받는 게 절대 아닙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정말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로만 능력을 베푸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습니다. 병자들을 위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병을 이길 만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사람을 살릴 만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죄를 이기고 건져낼 만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능력을 은혜로만 베푸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참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병자들이 불쌍해서 연못가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거기 있는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능력을 전해줄 통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로 그 능력을 베풀기를 원하는데 거기엔 천사가 물을 동할 때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서 나으려고 하는, 하나같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힘입어 결과를 얻으려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주님과는 채널이 맞지 않아요. 무전기로 말한다면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 안타까우셨어요. 이들을 살리고 싶은데 살릴 수 없는 겁니다. 주님은 많은 병자들을 보며 고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은혜 VS 대가

주님이 돌아가시다가 한 사람을 만났는데 38년 된 병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를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뭘 해서 병을 고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무슨 이야기입니까? “천사가 아무리 물을 동한다 할지라도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저기 들어가면 내 병이 낫는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 일은 나하고 상관이 없는 거예요.”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제 병을 고쳐주시면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냉정하게 그러면 당신 병 낫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은 장사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하면 그 대가로 병을 고쳐주고 못하면 안 고쳐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고칠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대가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데 우리가 노력해서 은혜를 입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마음의 채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기에 합당한 마음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병자들이 어떤 병에 걸렸든지 주님은 그들을 고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자들의 병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죄를 가지고 있든지, 어떤 문제나 질병을 가지고 있든지,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 따라 잘 사니까, 충성되게 일하고 계명을 지키니까, 기도를 잘하고 성경을 잘 읽으니까 복을 주고 은혜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나는 십계명도 지키지 못합니다. 십일조도 잘 내지 못합니다. 주일도 잘 못 지킵니다. 이렇게 하다 죽으면 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분 마음의 문밖을 거니시면서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주의 은혜를 입으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너무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어제 진영우 형제가 ‘택솔’(암치료 성분)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형제가 그것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아십니까? 세계보건기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목나무의 DNA를 통하여 택솔 성분을 개발하려고 연구했습니다. 분명히 추목나무에는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택솔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요. 그러나 항암제 한 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백 년 짜리 추목나무 네 그루를 잘라야 합니다. 그리고 약값이 한 정에 634달러예요.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자르지 않고 추목나무의 택솔 성분만 배양하는 연구를 계속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결국, 추목나무에서 DNA를 배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문이 나왔어요. 그 논문을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택솔 배양을 포기했습니다.
어느 날, 진영우 형제가 우리가 불가능할 때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모든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이라면 가능하게 하시겠구나.’ 그래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하나님이 도우실 걸 믿는 믿음으로 시작했어요. 자기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세포 하나하나가 자기에게 길을 가르쳐 줘서 택솔을 만들게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여러분, 신앙은 내가 할 수 있거나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너무 못해서 은혜를 못 받거나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너무 잘하려고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진짜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내 방법,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는 절대 걸어갈 수 없습니다. 물이 동하는 걸 보고 걸어가면 산다는 걸 알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갈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예수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자기는 걸어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굴러갈 수도, 기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 된 병자는 생각했습니다. ‘뭐라고? 나를 보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나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는 사람이야.’ 어차피 자기는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방법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 맡겼어요. 일어나려고 다리를 당겨봤어요. 놀랍게도 다리가 움직이는 거예요. 손으로 땅을 짚고 허리를 굽혔는데 일어나지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이 그에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죄사함 받는 두 가지 방법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죄를 사함 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38년 된 병자처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죄를 사해 주는 것입니다. 첫번 째 방법은 자기의 노력과 능력을 따라 하는 것이고, 두번 째 방법은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입는 방법에는 내 노력이나 능력이 손톱만큼이라도 첨가되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없다면 손가락 하나 대지 말고 전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면 안 지을 수 있고, 십계명을 지킬 수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이 열심히 해서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하십시오. 그러나 반대로 전혀 할 수 없다면 내 자신을 전부 주님께 맡기십시오. 자, 이제 주님의 생각과 은혜를, 주의 축복을 내 것으로 받아들입시다.

돛대 위에 있는 아들

어떤 스페인의 선장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항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 아이가 원숭이와 장난을 쳤어요. 원숭이가 선장 아들의 모자를 빼앗아서 도망갔어요. 아들이 모자를 찾으려고 원숭이를 따라갔어요. 원숭이가 이리 저리 도망가다 돛대 위로 올라갔어요. 아들도 원숭이 엉덩이만 보고 따라갔어요. 그러다가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젠 잡았다 했는데 원숭이가 그 뒤에서 뛰어내렸어요.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밑을 내려다보고는 자기가 비로소 돛대 꼭대기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갑자기 두려워서 벌벌 떨기 시작했어요. 돛대를 끌어안았지만 점점 힘이 빠져가요. 무서워서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선원이 그걸 봤어요. ‘선장 아들이다. 어떻게 하지?’ 어느 누구도 돛대 위의 선장 아들을 구할 수 없었어요. 아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데 팔에 힘이 점점 빠져갔어요. 선원 한 사람이 선장을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선장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옆구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고는 아들을 불렀어요. “아들아!” “예, 아버지.” 권총을 아들의 머리에 겨누고는 소리쳤어요. “다섯까지 셀 동안 바다로 뛰어내려. 안 그러면 쏠거야.”

“돛대를 놓아야 살아”

아들은 아버지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총을 쏜다면 쏠게 틀림없었어요. 뛰어내리지 않으면 총에 맞아 죽을 테니까 총에 맞기 전에 뛰어내렸어요. 돛대를 잡고 하나, 둘, 셋을 세고는 힘껏 뛰어 내렸어요. 아이가 바다로 깊이 떨어졌지만 선원들이 건져서 무사했습니다. 아들이 생각할 때 돛대를 놓으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어요. “네 생각은 돛대를 잡아야 살 것 같지만 그걸 잡고 있으면 죽어. 넌 돛대를 놓고 바다로 떨어져야 해. 그것밖에 살 길이 없어.” 그렇게 해서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죽음에서 건질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도 우리 죄를 손톱만큼이라도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넘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모든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 생각을 받아들이듯이, 38년 된 병자가 자기 생각으로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을 수 없지만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듯이 자기 방법을 버리면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볼 때 어떠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보혈로 내 죄를 사했다면 내 생각을 버리고 그걸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마귀가 내 생각을 일으킬 겁니다. ‘넌 믿음이 없어. 넌 구원이 아니야.’ 많은 생각이 들겠지만 그 생각도 다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걸 믿으십시오.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형벌을 끝낸 걸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공로로

저는 아버지에게 조용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지금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공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공로를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걸 내가 한 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예수님의 죽음을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버지, 믿으십시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복음을 듣고 그 사실을 믿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지시고 십자가에서 사하신 걸 감사합니다.” 아버지 얼굴에 근심이 떠나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마음에 계신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에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도 날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십시오. 내 모든 죄를 사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주님이 다 사해 주신 걸 감사하십시오. 내가 죄를 씻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예수님이 하신 것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2005. 1. 30 주일설교 요약- (IYF 호주 글로벌 캠프 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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