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쉬트 장로 (54세, 인도 오리사교회)·上
상태바
해러쉬트 장로 (54세, 인도 오리사교회)·上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9.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민에서 의사가 되어

나는 1952년 인도의 네 계급 중 마지막 계급인 수드라 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무리 분한 일을 당해도 반항의 기색을 일체 보여서는 안 되는 천민이었고, 양파의 마른 껍질을 빨아 먹을 만큼 가진 것 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안과 전문의가 되어 교사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
또 젊었을 때부터 돈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의술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므로 덕을 가지고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월급이 적은 기독교 병원에서 일하며 양심적인 의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오리사의 칸다말이나 카리알 지역에서 꽤 덕망 높은 의사로 정평이 났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나를 하나님은 귀히 보실 것이라는 자부심이 내 마음 중심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죄에 짓눌렸던 마음

유독 성경을 많이 읽으셨던 기독교 병원 간호사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으로 나 역시 성경 지식에 해박했다. 내 주위에는 많은 목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돈을 얻기 위해 나를 만났지 아무도 나의 영적인 곤고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체면치레 때문에 일 년에 몇 번은 아내가 다니는 오순절 교회로 발길을 내딛었다.
하지만 무당집처럼 시끄러운 곳에서 사람들과 결코 섞일 수가 없었고, 수술이 끝나면 늘 독한 술과 줄담배를 피우며 성경 말씀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런 나를 보면 양심에 걸렸고, 거룩하지 못한 삶 속에서  갈등만 커져갔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던 2000년 12월, ‘지유대기리’ 장터에서 김수연 선교사님을 만났다. 거리에서 집회 초청을 받은 나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율법을 지키고, 연보나 하면 축복받는다고 말할 거야. 저 황색인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어?’ 하며 바쁘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 날 집회 장소로 갔다.

믿음으로 거듭나며

김 선교사님은 내게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구스 내시의 이야기를 하시며 “내시가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린 하나님의 종 빌립을 만나 참된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었듯이, 당신은 참된 하나님의 종을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본 적이 있나요?”라고 내게 물었다. 작은 목소리지만 간결하고 분명한 선교사님의 말씀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성경 지식들은 내 영혼으로 오는 모든 복음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말씀 앞에 내 영혼의 모습이 드러났을 땐 아무것도 없는 건조한 땅(dry land)이었다.
나는 굴복하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선교사님, 사실 나는 어떻게 거듭나는지 모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나는 그날 저녁 그토록 귀한 구원을 받았다.
구원은 다만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주 빠른 바람처럼 나의 삶을 휘몰아가기 시작했다. 2개월 후, 귀찮고 아프게 했던 티눈이 빠져버린 것처럼 평생의 친구였던 담배가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 다음 호에 계속 -

정리/ 정민승 기자 mins8003@goodnews.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