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충남 장로 (56세, 한밭중앙교회)·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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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충남 장로 (56세, 한밭중앙교회)·下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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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향한 소망으로”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는 대전역 앞에서 양아치, 건달, 구두닦이 등 20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그런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나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고, 항상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내 의견만을 고집하며 살아왔다.

1998년 3월 성경세미나 후, 교회에 나갔지만 여전히 교회 사람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사역자님들과 형제들은 모든 예우를 갖추어서 대해 주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사 38:17)는 말씀을 들으며 눈물이 나왔다.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신 것은 나에게 평안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씀대로 일하시고 구원받은 후, 어느 날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하나도 없었다. 구역장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마음이 거북해서 그냥 돌아와서 성경을 읽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을 보며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볼일 보러 왔다가 나에게 돈을 조금 주고 싶다면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주고 갔다. 그날 줘야하는 사채이자 6만 원을 주고, 수중에 있던 2천 원을 보태서 4만 2천 원짜리 쌀을 사니까 딱 맞아 떨어졌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내와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니지만 한 번도 의식주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교회와 종을 따르고 한번은 일요일 아침에 계룡산 암자에 계시던 어머니가 이뇨현상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목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가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화가 났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말씀대로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설교를 마친 후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후 어머니가 구원받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다. 이 일을 겪은 후 교회와 종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복음을 위해서 사는 길이 있다면 가끔 예전의 나처럼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목사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들을 섬기게 된다. 나를 바꾸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 사람들도 바꾸어 주시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전 형제, 아이들 다 결혼시키면 남은 평생은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사세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날지 몰라도 복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정리/ 이강범 기자 kblhee@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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