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쁜소식선교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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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쁜소식선교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_2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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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목사는 1944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여, 1962년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거듭났고, 이후 딕 욕, 말론 베이커 등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1963년, 첫 사역지 경남 합천군 압곡동에 파송되었고, 1971년 딕 욕(Dick York)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리는 전도자가 그려내는 삶의 발자취는 어떤 것인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구원받기까지

처녀시절부터 교회를 다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박 목사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서울에서 기술학교를 다니다 귀향하여 고향 선산에서 지내던 중 교회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죄를 많이 짓게 되어 심한 정죄에 빠졌고, 일본에 가려는 계획이나 군에 입대하려는 계획이나 모든 계획이 막히면서 자신의 무능함과 악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천국 백성이 아니구나! 지옥 가는구나!’ 하고 깊은 절망과 탄식에 빠졌다. 하나님 이 마음이 낮아질 대로 낮아지게 하신 것이다. 아무리 회개해도 씻어지지 않는 죄가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내 모든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마음의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져 의인이 되었다는 믿음이 오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성경을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으로 치면 단 돈 천 원도 없어 드릴 수 없었다. 그때, “하나님, 드리고 싶어도 드릴 게 없습니다. 이 몸, 아무 쓸모 없지만 혹시 필요하다면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2. 선교학교 훈련

구원을 확신한 후 어느 장로의 도움으로 “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 외국인 선교사들 밑에서 선교훈련을 받았다. 선교학교의 룰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구해서 얻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면 안 되고 없다는 암시를 줘도 안 된다.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과 일치된 믿음의 삶을 가르쳤는데, 처음에 박 목사는 ‘기도한다고 다 준다면 누가 직장에 다니냐? 아무리 그렇지만....’ 하고 의심이 있었는데, 무전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심이 마음에 믿어졌다고 한다.

3. 첫 사역지 압곡동

선교학교 훈련을 마친 후, 박 목사는 경남 합천군 봉산면 압곡동이라는 산골 작은 동네로 갔다. 당시에 그 동네는 밥 먹고 살기 어려운 가난한 동네였는데, 하루는 이장이 “선상님들, 우리 동네에서 전도하는 것은 좋지만 식사 시간에는 절대로 가지 마세요. 누가 만일 밥 먹으라 해서 한 숟가락이라도 드시면 그날부로 더 이상 이 동네에서 살 수 없심더.” 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지내면서 굶기를 밥먹듯이 했는데, 어떻게 살아서 나올 수 있었는지 지금도 신기할 정도라고 한다. 진짜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 올라가니까 다 먹을 것이더라고, 돌멩이와 흙 빼고는 다 먹을 수 있겠다고 했다. 밥 지을 일이 없으니까 먹는 일도, 설거지 하는 일도, 화장실 가는 일도 별로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때 읽은 성경이 평생 마음에 보배가 되었는데, 성경 속에 복음의 비밀과 하나님의 마음이 보였다고 한다. ‘이것도 복음 이야기, 이 이야기도 죄 사함에 관한 이야기....’
육체는 극심한 고난을 겪었지만, 영은 말씀으로 채워져 한없이 배부르고 만족할 수 있었고, 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4. 거창에서

군입대하기 전에 거창에서 사역을 했는데, 한번은 대구에 가야 하는데 여비가 없어 ‘교회 재정을 맡은 형제에게 이야기할까?’ 하고 마음에 갈등을 겪었는데, 그 일로 ‘대구 못 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사람에게 손을 벌리거나 암시하지 않겠다.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마음에 선이 그어졌다.
또, 어느 전도사가 박옥수 목사를 그 교회에서 쫓아내고 자기가 선교사들에게서 매월 20달러를 받으려고 깡패들을 매일 교회로 보내 폭행을 했다. 그때 박 목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 깡패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는데, 그 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과부가 한을 품고 재판장을 찾아갔듯이, 박 목사는 그날 이후로 단 하루라도 마음에 한이 어린 기도를 하나님께 쏟아내지 않고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군부대에서

군에 입대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은 박 목사는 자신이 군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이요 전도자라고 믿었다. 개인 보급품을 잃어버렸을 때에 군에서는 마땅히 다른 사람 걸 훔쳐와야 하지만 박 목사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장갑을 주시는 작은 일에서부터 군대 예배당을 짓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도우셨다. 월남전에 차출될 뻔한 일도 “얘는 종교 일을 해야 한다.”고 소장님이 허락지 않아 계속 부대에 남아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특히, 사회에서 열심히 교회 다니며 예수 믿던 젊은이들이 군에 와서 대부분 타락하거나 신앙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남아서 복음을 전하라’는 분명한 소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6. 김천에서

제대한 후 돈 없이 김천에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이 집을 주신 일,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리고 갈 데가 없게 된 처지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집을 주신 일 등 극적인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의 필요는 하늘로부터 온다’는 믿음의 간증을 많이 남겼다.

7. 대구에서

대구의 변두리 파동, 중국집 2층 30평 남짓한 허름한 건물에서 선교학교를 시작하였다. 역시 굶기를 밥 먹듯이 한 삶 속에서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어느 날 기도하면서 말씀을 대하다가 시편 2편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는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다. 쌀이 없어 배가 고플 때마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선교학교를 해라. 방송설교를 할 것이다. 책을 출판할 것이다. 전세계로 선교사들을 보낼 것이다. 우리나라 전국에 군단위까지 교회를 설립할 것이다.”라는 음성이 마음에 들렸다.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그 음성이 마음을 뜨겁게 함을 느끼면서 이건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면 여전히 배가 고프고 연탄이 없어 추운 현실로 돌아왔다고. 그때 받은 약속 그대로 하나님이 이끌고 계신다고 간증한다.

8. 서울에서

전혀 박 목사의 수고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길을 여셔서 아세아방송 ‘기쁜소식’ 시간을 담당하여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설교집을 출판했다. 1989년 독일에 권오선 선교사 가정을 파송한 일을 시작으로 현재 45개국에 선교사가 파송되어 국내 230개, 해외 200개 교회가 설립되었다.

9. 대전에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종교 등록이 나지 않으면 선교사들이 추방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에 나이로비 교회의 기통가 목사가 선교사들을 돕는 대가로 30만 불을 요구했다. 그와 타협하지 않으면 선교사들은 당장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케냐에 이 선교사들을 보낸 분은 하나님’이라는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단호히 말할 수 있었다.
“케냐에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까? 왜 사람에게 손을 벌립니까? 나는 복음 일을 시작할 때에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이 돈을 써서 아프리카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나는 아프리카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이겠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 손에 성경을 들려줄 겁니다. 케냐 선교가 하나님의 뜻일진대 모이 대통령도 우리를 쫓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기통가 목사는 “역시 소문대로 훌륭하십니다!”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후에 그는 우리 선교사들을 고발해서 경찰이 체포하러 왔다. 그런데 그때에 우리 선교사들은 미고리라는 시골의 정글로 집회를 하러 가서 없었다. 그 시간에 무가바나라는 종교등록청 직원이 영어로 번역된 ‘Only By Jesus’ Works’라는 내 책을 읽고 마음이 열려 우리를 도와줬다. 결국 우린 극적으로 케냐에서 종교등록을 얻을 수 있었다.”

박옥수 목사는 2004년 2월, 하나님의 인도로 서울 서초구 우면동 기쁜소식강남교회로 옮겨 사역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세계의 청소년들을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육성하는 일, 선교를 온몸으로 담당하는 일들에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고 있다. 박옥수 목사가 걸어온 신앙의 길을 단편적으로 추려보았는데, 이는 또한 기쁜소식선교회가 어떤 정신으로 설립되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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