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 교회의 이단 만들기_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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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교회의 이단 만들기_ 2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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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내 웬만한 대교단의 신학대학원을 두루 수학하고 지난 20년간 교회에서 목회해 온 사람으로서,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삶의 현장에서 혼잡에 빠지지 않고 순결하여 교회와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종을 거의 발견치 못해 마음이 많이 상하고 아파해 왔다. 최근에야 교회에 이런 제반문제가 “진정 거듭나지 못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도 거듭나지 못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런 선배와 동료들의 오류와 범과의 소용돌이 속에 같이 휘말려 같은 류의 어둠을 짓는 잡동사니가 되었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종이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하며 회개치 않을 수 없다.
나는 한국 교회에 드리워진 먹구름, 흑암을 크게 3가지로 든다.
(1) 세상의 인본주의와 타협, 혼합한 교리와 공교히 만든 신화 같은 또 다른 복음으로 인한 흑암이 그 하나이고,
(2) 교회의 세속적 욕망으로 인한 물질주의 흑암이 그 둘이며,
(3) 교회 지도자의 도덕적 해이, 타락으로 인한 흑암이 그 셋이다.
한국 교회도 개혁되어져야 한다.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거듭남”(성경적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교회와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의 신앙적, 신학적 영계는 어둡고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맞물려 교회는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인 복음이 흑암과 혼잡으로 얼룩지고 그늘진 지 오래며 ‘미혹의 영’이 진리를 오도하여 ‘말세복음’이니 ‘무슨 복음’이니 하며 ‘다른 복음들’을 만들기까지 하며 무리들을 찢어 주님의 탄식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다. (갈 1:7~9, 고후 4:3~5)

한국 교회가 거듭나지 못한 결과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여기저기서 세상 속에서도 듣기 거북한 소문들이, 특히 교회 지도자들과 관련된 소식이 들린다. 과연 한국 교회 내에 돈과 성과 명예욕과 관련하여 오염되지 않고 그 양심이 자유한 교회 지도자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현직 목회자들의 불륜 사례들을 열거하고 싶지 않다. 음녀화(淫女化) 된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을 엿보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어 몹시 씁쓸하다. 그대는 이런 어두운 그림이 지극히 국소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모두가 이런 정도까지는 사악하고 추잡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허나, “진정한 거듭남”이 없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한 어떤 개인도, 조직도, 단체도, 종교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리와 의의 방패”가 되어야 할 교회가 “불의와 죄의 방패”가 되고도 부끄럼이 없다. 그대는 하나님 앞에 진실히 서라. ‘의의 방패’인가, ‘죄의 방패’인가? 화인 맞은 양심같이 목을 곧추세우고 얼굴을 놋쇠같이 뻔뻔히 하지 말고 그대 양심 앞에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 물으라. 그대는 진정 거듭났는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하셨는데, 그대는 “주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가? 아니면, 인간의 의를 하나님의 의보다 앞세우며 말 같지 않는 변명으로 얼버무리며 사는가?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은 흠이 없어서 교회를 책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으로 얘기하면, 나도 근본적으로 목이 곧고 패역한 자다. 자만, 자긍심이 강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한 삶을 살아 온 어리석은 자다.
나는 청년 크리스천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세월 내내 ‘인간의 의, 나의 의’를 세우려고 몸부림치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는 무너지고 산산조각나 먼지가루만 자욱한 바벨탑이었다. 원치 않는 죄업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게 하였고, 부끄러움이 내 생애에 굵고 넓게 피멍져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현실을 질타하는 것은, 교회가 부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어두움과 혼잡에서 돌이켜 빛과 순결함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도록 새로워지기를 바라서다. 진정 거듭난 교회로 새로 태어나 주님의 근심과 탄식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이 되는 신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서일 뿐이다.
“꽃 보면 당신이고,
바람 스치는 자리마다 당신이고,
달 뜨면 영락없는 당신이제....”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내 마음의 노래다.

나는 특히, 한국 교회의 내일을 짊어지고 있는 청,장년 형제 자매들에게 호소한다. 또한 현실 교회의 불법한 행실들을 보고 들음으로 오래도록 의로운 심령이 상하고 그 해결을 위하여 묵묵히 눈물로 기도해 온 하나님 앞에 신실한 교우들에게 호소한다. ‘오늘’이란 시간이야말로 한국 교회 개혁의 적기가 아닌가?!
설사,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까 봐 혹은 그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 밥그릇을 놓칠까 봐 교회개혁 의지의 순수성을 부정, 매도하고 재를 뿌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명적 순결함과 우리의 영광 받으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진솔히 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작고 약하여 거대한 개혁의 총대를 스스로 메기에 힘겹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주님 앞에 예비되고 잘 훈련된 몇몇 앞선 종들이 이미 총대를 메고 앞장서 있으니, 우리는 기도하고 적극 지원하고 연합하여 신앙의 개혁에 함께 불을 지피는 역군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든 이루어져야 할 사명 아닌가?! 그게 우리의 신앙양심이고, 선교 100년을 훌쩍 넘기고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역사적 책무이기도 한 것 아닌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는냐?”(요 1:46)고 예수님조차도 그 출신 배경이 문제가 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만약 박옥수 목사님이 일반교회 목회자들이 흔히 가는 신학교를 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세움받은 게 못내 의심스럽고 역겨워 그를 보고 믿지 못하겠거든 그의 하는 일을 보고 믿으면 어떨까?(요 10:38)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마 7:15~20)고, 박 목사님의 목회 40여 년 역정 가운데 일반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돈, 여자, 명예욕이나, 사리사욕과 관련한 잡음들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는 것을 보거나 들은 일이 있는가? 나 자신 비록 박 목사님이나 기쁜소식선교회와의 교제가 오랜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내가 목도한 바로는 “아니올시다! 단호히 아니올시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근거 없는 이단시비로 괴롭히는 한국 교회가 박 목사님 주변에서 그런 비리를 한 건이라도 잡을 수 있었더라면 박 목사님과 기쁜소식선교회는 벌써 망했을 것이 란 생각이 든다. 그의 40여 년 목회역정과 결실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적 확신을 따라 그리스도의 순결과 인애로 영글어진 아름다운 열매들일 뿐이다.
일반교회에서 신자교육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는 ‘소요리문답’에서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할진대 그를 위하여 ①진리사수와 ②교회와 신앙의 개혁적 사명이 우리에게 부단히 요청되는 것 아닐까?
과연 그 누가 박 목사님과 기쁜소식선교회를 “진리이해”의 측면에서나 “죄”로 책잡을 수 있을지 한국 교회에 진지하게 묻고 싶다. 만약 추호라도 이단, 사이비적인 면이 있다면 서로의 오해를 피하고 소모적 분쟁이나 갈등에 휩싸이지 않고 덕을 세우기 위하여서라도 온 교회가 함께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공개토론장에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박 목사님과 기쁜소식선교회는 항상 준비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 토론장에라도 그것의 공정성만 보장된다면 열린 마음으로 흔쾌히 토론에 응하리라 믿는다.

왜 당당히 의견을 개진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개토론은 회피하면서 뒷면에서 음해는 계속 되는가? 예수님을 음해하기를 쉬지 않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니고데모의 힐책이 떠오른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 7:51) 근거 없는 이단시비와 중상, 모략, 흑색선전으로 소모하는 시간과 정력이라면 충분히 토론장에 나와 문제점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순히 그가 일반교회의 목회자들이 밟는 신학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단순히 그가 대교단 조직의 추천과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단순히 그가 한국 교회와 신앙의 문제점를 지적해 내 아프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단순히 그가 혼자 힘으로(실은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지만) 한국 교회 거대교단의 이단시비와 조직적 훼방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와 세계적 선교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시기, 질투, 역겨움,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우리도 이쯤에서 우리의 미움을 하나님 앞에 겸허히 내려놓고 진실히 정리해야 되지 않겠는가? 박 목사님은 형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던 요셉 같다는 마음이 든다.
매번 육신의 싸움으로 사단의 종 노릇하며 교회를 분쟁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마음을 받아 교회의 덕을 위하며 선과 화평을 도모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벧전 3:8~12)

내가 이 간증문을 마무리할 무렵 주께서 마음에 흘려주시는 노래가 있어 적는다.
“흑암 벗고 먼동 튼다.
혼돈 씻고 해오름이
시온의 딸 밝은 얼굴
영광의 주 혼인잔치”
(주의 오심이 머지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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