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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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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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 안에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고, 힘 있게 복음을 향해 달려나갔는데 어느 날 안디옥 교회 안에 큰 논쟁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고 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변론하면서 큰 다툼이 일어났다.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갈 5:3)는 말씀에서와 같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타락하면 항상 율법 행위 속에 빠지고 행위를 의지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가 힘 있게 복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율법 행위 속에 빠지게 하려는 사단의 계략이 있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있었지만 안디옥 교회 자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많은 변론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15:5)고 했고, 한편에선 “아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며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는데,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0, 11)는 사도 베드로의 결론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고찰해 봐야 할 부분은 바리새파 중의 믿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믿음을 가졌는데 왜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도 베드로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오늘날 교회들을 살펴보자. 오늘날 한국 교회는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 조상과 우리도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지 말라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이 아닌, 바리새파 중의 믿는 어떤 사람들, 즉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만약 안디옥 교회의 문제가 사도들에 의해 바로잡혀지지 않고 그대로 흘러갔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겠는가?
갈라디아 교회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 1:6)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갈라디아 교회는 이미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질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편지로 말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1~3)
만약 이런 부분이 바로잡혀지지 않는다면 분명 성령으로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육체로 마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진행되는 교회
   2)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교회
   3)육체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친 교회

1)의 경우 확실히 죄 사함 받고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또한 행위가 아닌 은혜로 믿음으로 진행되는 교회이고,
2)의 경우 갈라디아 교회처럼 죄 사함 받고 거듭났지만 다시 율법의 행위 아래 들어간 교회이고,
3)의 경우 죄 사함 받은 것 없이 육으로 시작했고, 신앙생활 또한 율법 행위 아래 있고 율법대로 살려고 애쓰는 교회이다.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3)의 경우에 속한다. 죄 사함을 받은 것 없이 시작하여 신앙생활 또한 율법 아래에서 살려고 애쓰기에 심히 피곤하고 힘든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교회 다니기 전보다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교회 다니기 전에 더 속편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차라리 몰랐다면 편했을 것을 율법을 알고 나니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죄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일까?
그 책임은 인도자에게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잘못된 인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죄에서, 율법의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에 논쟁이 있었던 부분을 살펴보면 복음의 변질 과정과 영적 타락의 진행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올바른 복음 전도자들이 참된 복음을 전해 주면 그 교회 사람들은 죄를 사함받고 거듭난 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어느 때인가 다른 복음 즉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능히 구원 얻지 못한다고 행위를 의지하도록 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사상이 교회에 들어온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자유롭게 일하는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 끝나고 율법의 행위를 따라 사는 영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도덕적 타락, 즉 범죄가 나타나지 않기에 별 거부감 없이 영적 타락이 진행되고 복음의 변질이 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렇게 영적으로 타락되고 복음이 변질된 교회들을 통해서는 복음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고, 복음의 대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만약 바리새파 중에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 자들이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이론을 주장한다면, 새로운 교파가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는 구원을 받았지만 그들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게 되고 열심과 율법대로 살라는 가르침, 즉 행위를 의지하는 영적으로 타락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떤 계보를 따라 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기에 율법대로 행하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율법의 계명대로 행하려고 애쓰고 있고 율법을 어겼을 때는 그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참된 복음의 계보가 아니다. 복음이 변질된 자들의 가르침이고 잘못된 계보의 교회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범죄하거나 물의를 일으키진 않았다 할지라도 분명 영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것이다 .
사람들은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교파가 있기에 어디가 참된 교회인지 알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오래된 교회나 교단을 선호하게 된다. 이 교회가 영적으로 어떤 계보인지를 알지 못하고 표면적인 계보, 즉 어느 교단이냐 어느 교파냐만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 누가 이 영적 타락을 바로잡아 줄 것인가? 사도 베드로가 있어서 안디옥 교회의 영적 타락을 막았고, 사도 바울이 있어서 갈라디아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된 것을 바로잡았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과연 이런 영적 타락을 지적하는 종들이 있느냐는 것이다. 영적 타락을 깨닫지도 못하는데 어찌 영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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