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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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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믿음의 길로 나아갈 때[에스더 4장 5절 ~ 17절] - 2019. 8. 25. 주일 오전예배 말씀 - 777호

믿음으로 가는 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주 동안 미국, 멕시코, 자메이카에서 열린 IYF월드캠프의 강사로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가는 나라마다 현지 목회자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말씀을 듣고 기뻐하시는 것을 보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가 말라리아 증세가 있어서 몸은 좀 힘들었지만 말씀을 전할 때는 아픈 것, 근심되는 것 다 잊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를 불문하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흘러들어와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 예수님의 거룩함과 지혜, 능력도 함께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던 삶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일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사단은 아담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과 정반대로 이끌어 우리가 믿음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어렵게 합니다. 

왕후 와스디의 폐위 

오늘 읽은 에스더서는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곳에 나타난 마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에스더는 예루살렘에서 끌려온 사람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모르드개라는 사촌오빠의 도움으로 자랐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왕 아하수에로에게는 와스디라는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왕이 잔치에서 주흥이 일어나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왕비가 오지 않자 왕이 크게 진노하였습니다.
왕이 함께하는 박사들에게 어찌해야 좋을지 묻자 박사 중 한 명이 왕후가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잘못한 것이라면서 이런 왕후의 행위가 소문이 나면 부녀들이 자신들의 남편을 무시해 멸시와 분노가 크게 일어날 것이므로 왕후를 폐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신하의 의견대로 왕후를 폐위하고 새로 왕후를 뽑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에스더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유다인을 멸하라는 조서

이후 아하수에로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였는데 대궐 문에 있는 모르드개가 그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그런 모르드개를 괘씸하게 여겨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그의 민족인 유다인 전부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왕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하여 왕의 허락을 받습니다. 결국 12월 13일에 모든 유다인을 죽이라는 왕의 인장이 찍힌 조서가 각 도에 반포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 소식을 듣고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기도하고 있는데 에스더는 그런 모르드개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에스더가 내시 하닥을 모르드개에게 보내 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모든 유다인을 죽이도록 꾸민 조서를 건네주며 왕에게 나아가서 유다인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구하라고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에 4:11)고 말합니다. 

두려워하는 에스더

이 이야기를 보면 에스더의 마음과 모르드개의 마음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그 길이 무척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에스더를 왕비로 세워 왕 앞에 나아가 유다인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가면 좋지만 왕의 부름 없이 나가면 죽임을 당하는데… 내가 지금 30일 동안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하며 망설였습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고 전합니다. 에스더가 이 말을 듣고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하며 왕에게 나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서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게 되면

성경을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 받는 삶이 복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1962년도에 구원을 받았는데 그 해가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모든 것이 안되고 나중에는 지원만 하면 들어간다는 기술하사관시험까지 불합격하면서 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발견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잘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틀렸고 악하고 거짓된 사람임을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 생각을 따라가면 망한다는 것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믿지 않는 마음이 제가 주님을 가까이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참 귀하고 좋은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무얼 하나 잘하면 잘했다는 것에 빠져 그것을 나타내고 싶고 또 즐기고 싶어합니다. 또한 사람은 자기가 잘한 것에 대한 기억은 오래가고, 잘못한 것은 쉽게 잊어버려 대부분 자기가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에게 선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6・25전쟁에서 죽을 사람을 여러 명 살리셨는데 제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면 “나는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음 앞에 섰을 때 한숨을 쉬시며 “내가 하늘나라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무슨 공로가 있어야 하늘나라에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서 보니 자신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아버지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믿는다면 말씀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따를 수 있고, 반대로 예수님보다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믿으면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을 꺾어 우리 마음에 맞춰주시든지 우리가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보다 옳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선한 일, 귀한 일, 거룩한 일 모두 다 무익한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맞든 그렇지 않든 그대로 받아들이면 예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같은 마음이 되고 예수님에게 나타나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암으로 죽어가는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마음을 같이 해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말씀을 믿은 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반대로 죽음 앞에 있으면서도 ‘아이고, 박 목사가 암에 걸려 봤어? 자기도 암에 걸리면 이런 소리 못할 거야. 암에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하며 자기 생각을 믿는 분들은 말씀을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난제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기를 바랬지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빠져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가 되면 항상 사단이 그 일을 가로막으려고 부담스러운 생각을 넣어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단이 준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주님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38년 동안 누워 있던 병자에게 예수님은 걸어가라고 합니다. 병자는 걷지 못한다는 자기 생각을 믿을까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까 고민하다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믿어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난해하다?

제가 한번은 홍콩 기독교지도자포럼(CLF)에서 천여명의 목회자들이 모인 가운데 강의를 했는데 신학대학교 총장님 한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신학자들이 구원론은 전부 다 난해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렇게 쉽게 풀어도 됩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성경은 구원론만 난해한 게 아닙니다. 성경 전체가 난해합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물을 부어놓고 포도주라고 하면 난해하지 않습니까? 예, 난해합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잔다고 하면 난해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볼 때 다 난해합니다. 주님의 세계에는 우리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참석했던 목사님들이 전부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그날 많은 목회자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내 방법을 버려야

한국에는 김치 가짓수도 많지만 같은 김치를 담그는 방법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우리가 요리를 할 때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합니다. 각자 자신이 생각할 때 제일 잘한다, 옳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옳은 생각을 다 무너뜨려야 예수님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정석입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도, 농사 잘 짓는 사람도 ‘네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 방법으로 한 번 해봐’라고 했을 때 자기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잘한 것, 옳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익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어느 시대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대적도 많고 핍박도 많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저를 반대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모든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확실히 죄 사함을 받았다면 죄 사함 받는 길을 압니다. 여러분, 그 길을 몰라 애쓰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이 땅에 교회를 다니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해 발버둥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만나는 누구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이신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만날 때 ‘왜 하나님이 이분들을 만날 수 있게 하시겠나? 그래, 복음 전하라는 거다’라고 생각해서 성경 이야기가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전에 파라과이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 만남을 앞두고 면담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에 마음을 써서 시간표를 짰습니다. 대부분 대통령을 만나면 길어야 40분, 짧게는 20분인데 그 시간 안에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합창단이 노래 세 곡을 부르면 10분, 인사하는 데 5분, 그러면 남는 25분 동안 어떻게 복음을 전할 지 전날 밤새도록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루고 대통령이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에스와티니 국왕과의 면담 때도 시계를 봐가면서 30분 동안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마치니 국왕께서 “목사님, 말씀을 좀 더 전해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90분 동안 복음을 전해 국왕도 구원을 받으시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왕비가 된 참된 이유

여러분,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비여, 당신이 얼마나 귀한 몸입니까? 죽으면 안됩니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기도하겠습니다”라며 형편을 용납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모르드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너 혼자 살리라고 생각지 말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에게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옳은 것입니다. ‘맞아, 내가 왕비될 자격이 있었어? 와스디가 폐위돼서 내가 왕비가 됐지. 왜 와스디가 폐위됐겠어? 하나님이 나를 왕비로 세워 유다인을 살리시려고 하심이야. 모르드개의 말이 맞아.’ 이렇게 에스더는 자기 생각과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까지 다 깨트려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마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전 세계에 선교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이 자기 신변을 복음보다 먼저 생각한다면 그들은 전부 가짜 선교사입니다. 목회자는 자기 신변을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인이 다 죽는다고 하는데도 자기 신변만 생각하고 머물러 있는 미련한 에스더의 마음을 모르드개가 정확하게 꿰뚫고 왕 앞에 나아가게끔 한 것입니다. 

나도 모르드개처럼

뉴욕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에스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나는 목사지만 모르드개처럼 안 했다. 하나님의 뜻보다 형제자매의 형편을 더 많이 생각했다. 난 좋은 목사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의 어려운 형편, 힘든 것 다 봐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 자매가 시험이 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모르드개가 저와 같았더라면 유다인도 죽고 에스더도 죽었을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 인간적이다. 나도 모르드개처럼 설교하고 싶다. 모르드개처럼 성도들을 이끌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앞으로 달려갈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왕에게 나아갔을 때

아하수에로왕이 어전에서 전문을 향하여 앉아 있는데 문이 드르륵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왕이 ‘누구지? 저 문을 열면 죽는데’ 하며 자세히 보니 에스더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른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에스더는 금홀을 만지면서도 ‘왕이 진짜 금홀을 내민 것이 맞나? 이제 살았다’ 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허락하겠노라.” 에스더는 “왕이여,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하만과 함께 임하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왕이 하만과 잔치에 참석해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라고 묻는데 왕비는 “내일 또 잔치를 하오니 그때 오시면 말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튿날 잔치에서 에스더가 말합니다.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이에 왕이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라고 묻자 에스더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라고 외칩니다. 왕은 분노하며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만든 장대 위에 그를 달게 합니다.

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그냥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죽은 생명을 살리고 우리가 복을 받는 모든 일에 사단은 항상 안 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주어서 우리가 주를 섬기는데 주저하도록 만듭니다. 에스더서는 에스더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복을 입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제 나를 지키고, 나의 장래와 노후를 걱정하는 마음을 다 버리십시오. 내가 나를 지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지키는 것은 비교가 안됩니다. 내가 나를 지키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에스더처럼 귀한 왕비로 삼으셔서 죄에 고통하며 죽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듭나도록 이끄는 일에 쓰시려고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두려움을 줘서 복음을 전하길 주저하고, 주를 섬기길 주저하게끔 만들어 자신만을 위해 살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망합니다. 우리가 주를 섬기고 주님을 위하면 우리의 모든 일에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삶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될 줄 믿습니다.
- 2019. 8. 25. 주일 오전예배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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