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말씀이 들어오면 밝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어
상태바
우리 마음에 말씀이 들어오면 밝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어
[사도행전 14장 8절 ~ 28절] 77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8.19 1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형편은 잘 알고 믿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서 말씀 그대로의 삶으로 이끌리는 상태를 믿음이라 합니다. 신기하게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 말씀 하나가 그의 마음에 들어가 모든 생각을 이기고 자리를 잡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어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일하게 됩니다. 
여러분, 코트디부아르는 서부 아프리카 제일의 선진국입니다. 제가 처음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 내렸을 때 ‘여기가 아프리카 맞나?’ 싶을 정도로 높은 빌딩이 즐비해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주에 코트디부아르에서 IYF 월드캠프를 했는데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캠프를 열었던 대학교를 빌렸으나 행사 시작 이틀 전에 취소되어 급히 새로운 캠프 장소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학교에는 넓은 잔디 운동장이 있어서 의자 1만 석을 깔 수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에 그 의자를 다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부통령 면담

지난 7월 한국에서 열린 제9회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에 아비장 주지사이자 시장이신 ‘로베르 뵈그레 맘베’님이 참석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이번에 IYF가 코트디부아르 청소년과 주민들을 위해 월드캠프를 개최하고 의료봉사단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듣고 캠프 장소 대관부터 숙소, 차량 등 행사 제반 사항을 모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코트디부아르 부통령 ‘다니엘 카블랑 던컨’님과의 면담이 있을 때 그분이 부통령에게 IYF 설립배경과 주요활동, IYF와 코트디부아르 보건위생부 간 부룰리 궤양 치료를 위한 MOU 체결 소식 그리고 영부인 및 청소년부장관과의 면담 내용 등을 보고했습니다. 
부통령께서는 “오늘 대통령께서 박 목사님을 만나셔야 하는데 국가주요 일정인 독립기념 행사 참석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하셨습니다. 이어서 이 나라의 아픔인 부룰리 궤양 치료 활동에 힘써 주어 감사하다며 아비장 주지사와 함께 IYF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룰리 궤양 치료 협력

그동안 베냉과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부룰리 궤양 치료 봉사활동을 하고, 치료제를 개발한 우리 선교회 황 장로님이 IYF와 코트디부아르 보건위생부 간 부룰리 궤양 치료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 백만 명 가량이 부룰리 궤양 환자인데 이 병에 걸리면 가족들이 거적 하나 덮은 채 길가에 버립니다. 밥 때 되면 밥 한 그릇 갖다 주는 것을 먹으며 비참하게 지내야 하는 저주받은 병이라고 합니다. 황 장로님이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고 가슴 아파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지혜로 치료제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협약으로 새롭게 개발한 치료제를 통해 부룰리 궤양 치료활동이 더욱 활발해져 이 병으로 고통 받는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사람들의 변화는

여러분, 사람들의 변화는 어떤 큰 행사 같은 외형적인 것보다 성경 말씀이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서 그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이끌어줘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시다 다리가 다 말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주여,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말씀을 들었을 때 38년 된 병자는 ‘내가 아무리 걸어보려고 해도 안 돼서 못 걷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걸어요? 안 돼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마음의 상태가 있습니다. 조금씩 말씀에 가까워지다가 중단한 상태, 말씀을 받아들인 상태, 말씀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한 상태 등 아주 다양한 마음의 층이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걸으라고 그냥 말하는 거야. 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걸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좋지. 내게 믿음이 있으면 한번 걸어보겠어. 그런데 나는 믿음이 없어서 못 걸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 두 가지 생각의 싸움

이와같이 38년 된 병자는 자신이 걷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다가 다시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시니까 저분의 말씀을 들으면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못 걸어’라는 자신의 생각과 말씀이 싸움을 하게 됩니다. ‘나는 못 걸어. 내가 어떻게 걸어?’ ‘그래, 그땐 예수님이 없었고 지금은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셨으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나는 걸을 수 있어.’ ‘하지만 예수님이 말했다고 다 되나?’ ‘아니야, 예수님에게는 능력이 있어.’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이 싸우다가 ‘나는 못 걷는다’라는 생각이 다 깨뜨려지고 ‘주님이 걸을 수 있다니까 걸어보자!’ 하며 나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 가면서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아침 주일예배 시간에 박옥수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그 말씀을 ‘박옥수 목사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듣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듣느냐?’가 무척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박 목사가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하는 거야’ 하며 예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나는 못 걸어가’라는 우리의 생각을 이기고 ‘내가 일어나 걸으면 되겠구나’ 하며 우리를 걷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와티니 국왕 면담 시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설교를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말씀이 나오므로 그 종을 시들하게 여기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도 ‘저 말은 옳지 않아. 말이 돼?’라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분은 하나님의 종이고, 저분이 전하는 말씀은 진리야. 저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내가 살아’ 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목사로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는데, 그중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정말 놀랍게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 에스와티니 국왕 폐하를 만났을 때 면담 시간이 40분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인사를 나누면 대략 30분만에 말씀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고 바로 성경을 펴서 말씀을 전하는데 국왕께서 뚫어져라 저를 쳐다보아서 눈도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말씀을 마치자, “목사님, 말씀을 더 전해주십시오”라고 두 번이나 요청하셔서 90분간 말씀을 전해드리고 마쳤습니다. 국왕께서 “목사님, 목사님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십니다. 제가 땅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주택가에 가장 좋은 땅 3만 평을 주셨습니다. 국왕께서 “그곳에 IYF 센터를 지으세요. 박 목사님의 사택도 짓고 늘 거기서 지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그 땅에 IYF 센터를 짓고 있는데 제가 에스와티니에 가면 국왕께서 언제든지 저를 만나주시면서 말씀을 듣고자 하십니다. 

배가 아팠을 때 

약 20년 전에 저는 위궤양으로 무척 고생했었습니다. 위장에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이지 못해 무슨 음식을 먹든지 설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 이번 여름에 행사가 많은데 이 몸으론 도저히 감당을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 제 체중이 70㎏이었는데 3개월만에 7㎏ 가까이 빠지면서 양복이 헐렁해지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어지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마음을 정해서 배 아픈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갈등

여러분,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믿는다면 ‘이제 아픈 배 다 나았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음식이 짜거나 쓰거나 매우면 위를 자극해서 설사가 나기 때문에 매운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때 한편 제 마음에서 ‘왜 김치를 못 먹냐? 배가 나았다고 믿는다면 김치도 먹어야 할 것 아니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믿음을 갖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네!’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동시에 ‘뭐가 어려워. 확실히 배가 나았다고 믿었다면 김치 먹어도 괜찮아’ 하는 두 가지 생각을 놓고 갈등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김치를 먹는다면 배 속에서 난리가 날 것만 같았습니다. 
지난번에 의사가 “목사님,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위벽은 옛날 시골집 문의 창호지에 물을 뿌리고 세게 ‘후우’ 하고 불면 흐물흐물해서 금방 찢어지듯이 매우 얇습니다. 만일 위벽에 구멍이 나면 24시간 안에 죽습니다”라고 한 말이 떠올라 김치를 먹으려다가도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믿음대로 된다고 했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아파도 말씀대로 배가 나았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프지만 나았다

어느 날 아침, 집에 손님이 많아 제 아내가 육개장, 김치 등 매운 음식을 해놓고 한쪽에는 제가 먹을 김 몇 장과 간장, 흰죽을 갖다 놓았습니다. 제가 그 음식을 쓱 밀어내고 밥 한 그릇을 김치와 함께 먹었습니다. 음식을 나르던 아내가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당신, 어쩌려고 그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싸~아’ 하게 아파와 견딜 수 없어 슬쩍 자리를 떠나 화장실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 아픈데.’ 그때 제 마음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믿었으면 믿은대로 나아야지. 왜 설사를 해? 왜 배가 아파? 그게 나은 거야? 그게 나은 거야?’ 여러분,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병자가 다 나은 걸 보시고 나서 걸으라고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이미 그 병자가 나았지만 우리 눈에는 누워 있는 병자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당장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지만 말씀에서 주님이 나았다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믿은 대로 되겠구나. 그럼 이것은 나은 것이다’ 하면서 “아프지만 나았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자리를 잡으면

그날 저녁 어떤 분의 초대를 받아 호텔 뷔페식당에 갔습니다. 저는 ‘배가 아프니까 오늘 전복죽이나 좀 먹고 말아야겠다’라고 하다가 ‘내가 왜 그러지? 배 다 나았는데’ 하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배가 불러 ‘후후…’ 하면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잘 먹었다’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팠던 배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저는 석 달 동안 배가 아파 거의 음식을 못 먹었는데 그날부터 전혀 아프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누구든지를 불문하고, 어떤 생각을 했든지 간에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말씀이 능력으로 일을 합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도 이런 과정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죄 짓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죄가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때는 우리가 죄 지은 줄 모르고 의롭다고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내가 죄 지은 것을 다 아시고도 의롭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내 모든 죄가 씻어졌기 때문에 나는 의롭다’ 하며 죄가 있다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려 할 때
 
여러분, 어떤 경우라도 말씀 하나가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고, 그 말씀을 밀어내 버리면 세상 염려에 금방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을 비난하는 일을 만듭니다. 우리가 그런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하나님의 종을 불신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 종이 전하는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면서 바로 타락의 길로 들어갑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 19:15)라고 합니다. 우리는 불신의 말을 듣고 그냥 받아들일 게 아니라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영혼을 죽이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박옥수 목사가 지금 단에서 외치는 저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그 말씀이 음란한 생각이나 미움 등 우리의 생각을 이기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 성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는 걸 보고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까 그가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그에게 신이라며 제사드리려 했습니다. 바울은 “나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였습니다. 한편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행 14:19) 하며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때린 후 그가 죽은 줄 알고 버리고 갔습니다. 
루스드라 성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저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며 말씀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눈에 보이자 바울은 “이런 믿음을 가지면 됐다.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앉은뱅이는 ‘내가 일어나 걷겠구나. 저 말씀은 생명이다’ 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벌떡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한평생 바울을 잊을 수 없어. 그분이 나를 이렇게 온전케 했어. 그분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야. 그런데 왜 그를 돌로 쳤을까? 안타깝다. 이 미련한 사람들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았을 겁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루스드라 성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함께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단은 우리 선교회와 제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을 넣어줍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우리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셔. 내가 저 말씀을 믿었을 때 하나님이 역사했어’ 하며 암에서도 낫고, 전갈에 쏘였을 때 전갈의 독을 이기며, 악령에 속아 죽을 뻔 했다가도 악령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속으면 말씀을 시들하게 여기고 자기의 옳음을 가지는데 그런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교회 오실 때 늦지 않게 오시고 정말 겸비하게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돼. 직장이나 건강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더 중요해’라는 자세로 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같은 말씀을 들어도 ‘오늘 귀한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해. 그 말씀이 생명을 줘. 그 말씀은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라는 사람과 ‘아이고, 저 설교 이번에 다섯 번째야’라는 사람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종, 또 교회를 사랑하는 가운데 ‘나도 이 말씀을 전해야겠다. 이 복음을 전해야겠다’라며 마음을 쏟아 하나님을 섬깁시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안에 있던 두려움과 질병, 저주를 물리쳐서 밝고 복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이 예수님과 연결돼 어떤 문제라도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장래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하여 더욱 복되게 될 줄 믿습니다. 
- 2019. 8. 11. 오전 주일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