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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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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요한복음 9장 1절 ~ 7절] - 2019. 7. 14. 오전 주일예배 설교 - 771호

2019 IYF월드문화캠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7월 7일부터 IYF월드문화캠프가 아름답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캠프에는 60개국에서 4천여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하였고 각국 장차관님과 대학교 총장님 그리고 많은 기독교지도자들도 함께하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그 속에 우리 마음의 흐름이 담겨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합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은 소경이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소경의 마음이 있습니다. 만일 소경 100명이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실로암 못으로 갔을까요?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나보고 씻으라니? 내가 뭐 안 씻어서 소경된 줄 아나!” “눈을 뜨게 해 준 다음에 못에 가라고 하지, 앞이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가란 말이야!” 그중 어떤 소경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가라고 하셨는데 가야 하는 것 아냐?” “야! 예수님이 말한다고 다 되는 거 아냐. 될 게 따로 있지. 실로암 못에서 빠져 죽을 수도 있어.” 이처럼 그들에게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소경은 물가를 두려워해

만일 어떤 일반 사람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다면 그건 씻어도 좋고 씻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깊은 것들이 있습니다. 소경은 물가에 가는 것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만일 물에 빠지게 되면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소경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아버지가 물가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난 실로암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저분이 나에게 농담하는 건 아닐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않은 소경, 여기서 신앙이 시작됩니다. 

믿음이 형성되는 과정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하려고 합니다. 신앙이 깊어지는 데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5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한 평생 교회를 다니지만 신앙의 문전에도 못 가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일에 예배드리고, 착한 일하고, 헌금 좀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이 소경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기가 가진 많은 의문과 생각들을 다 버리고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과 고난을 겪고, 멸시도 겪어 보며,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아 안타까워도 해보고….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 결론적으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런 마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뭘 해도 안되는 인간

1951년, 6·25전쟁 중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어머니가 아침에 화장실에 다녀오시더니 어지럽다고 누우셨습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삼일을 누워계시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너무나 어둡게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만에 형님이 군대에 가시고 아버지는 전투물자를 나르는 보급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집에 어른이 없었습니다. 당시 큰누님이 열다섯살, 작은 누님이 열세살이었고, 저는 여덟살, 동생은 네살이었습니다. 우리는 뭘 먹고 뭘 입어야 할 지 전혀 몰랐습니다. 정말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1962년 시골에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기술하사관 시험을 쳤습니다. 제 앞니가 조금 깨졌는데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술하사관 시험까지 떨어지고 나서 전 뭘 해도 안되는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 앞에 참 감사한 것은 그 일을 통해 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신앙에서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신앙은 우리 자신이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로마서 4장 4절에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일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일은 은혜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하거나 무엇을 한다면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많은 교회가 말씀과는 정반대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단은 너무나 간교하게 ‘내가 착한 일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복 주실 거야. 열심히 기도했으니까 도와주실 거야. 회개했으니까 죄를 용서해 주실 거야’라고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먼저입니까? 여러분이 회개한 것이 먼저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죄가 용서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큰 교육장

하나님은 인생이라는 큰 교육의 장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자신 있는 분야가 생깁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어려움과 고난을 주십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좋은 물건을 개발해 사업을 잘 했는데 수금이 안돼 망했습니다. 다 잘했어도 몇몇 가지 문제로 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우리 인생에 허락하셔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점점 작아지고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점점 커지게 하십니다. 그런 마음이 되면 우리가 볼 때 이해가 안 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38년 된 병자, 소경, 죄인들 즉 자기가 어떤 것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38년 동안 누워 있던 병자에게 예수님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38년 된 병자는 자기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의 소경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 삶 속에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죄, 죽음까지도 허락하셔서 우리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거지를 도왔다는 뿌듯함

제가 어릴적 주일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당시 갖기 어려운 외투를 샀는데 어느 날 거지에게 그 외투를 덮어주고 막 뛰어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좋아 보여서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비상금으로 갖고 있는 새 돈이 있었는데 제게는 큰돈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돈을 거지에게 주고는 막 뛰어왔습니다. 저도 그 선생님처럼 거지를 도왔다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생각들에 많이 끌려 다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또 창세기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는 악할 때도 있어. 그러나 선할 때가 더 많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해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은 선한 것 아닙니까?”

제가 대구 파동에서 사역을 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했습니다. 당시 약국을 하는 자매님이 예배를 마치고 제게 와서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모두 가난해 중간에 약 복용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폐결핵 같은 병은 약을 먹다 중단하면 병원균이 그 약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되어 다시 약을 먹어도 병에서 낫기 어렵게 됩니다. 그럴 때 이 자매님은 돈은 나중에 주어도 된다며 약을 주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목사님, 이 일은 선한 것 아닙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참 잘하셨습니다. 제가 봐도 그 일은 선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볼 때 선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모든 생각 가운데 악한 게 좀 있더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악하지만 선한 게 있더라’ 이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성경 말씀을 해석하려고 애쓰다가 삐뚤어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우리 속에는 악한 것뿐입니다. 

도금한 가짜 목걸이 

예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액세서리 판매를 하는 한 자매님이 제게 목걸이 한 뭉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항상 일정이 바빠서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 것들은 안 가져갑니다. 그날도 그 자매님이 주신 것을 빼놓고 왔는데 누가 다시 제 가방에 넣었는지 공항에서 나오다가 세관에 걸렸습니다. “실례지만 가방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네, 보십시오.” 세관원이 가방에서 금목걸이를 찾아냈습니다. 난처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세관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금이 아니라 도금한 모조품입니다. 혹시 칼이 있습니까?” 세관원이 칼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목걸이를 긁어 보라고 했습니다. “정말 긁어도 됩니까?” “예, 긁어보십시오.” 세관원이 그 목걸이를 긁자 금방 다른 금속이 나왔습니다. 세관원이 그것을 보고 웃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순금이라면 아무리 긁어도 끝까지 금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긁었을 때 다른 금속이 나왔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우리의 선은 다 이와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선하다면 항상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여도 얼마 후 미움과 악이 나온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는 항상 선할 수 없기 때문에 도금한 목걸이나 반지처럼 전부 가짜입니다. 우리가 선을 좋아하니까 도금한 선도 선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선(善)을 가지고는

우리의 선을 가지고 절대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선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8절에 사도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너, 십일조 냈어. 많은 사람을 도왔어, 선한 일을 했어’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속입니다. 
한번은 저에게 온 손님과 함께 한 종교지도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악한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아홉 살때부터 자신의 도시락을 다른 이들에게 줬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 말은 정말 거짓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손님과 차로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은 그 종교지도자의 이야기를 굉장히 좋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인간이 어떻게 온전한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분이 성경 말씀을 보시고는 제 말에 수긍하셨습니다. 성경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시나무고 엉겅퀴입니다. 그래서 포도나 무화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뭘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한 기독교지도자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기독교지도자로 14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베트남에서 굉장히 존경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당신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자신 있게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위해 14년 동안 교도소에 있었는데 하늘나라에 못 가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성경에는 행위로 하늘나라에 못 간다고 되어 있다고 하자 그분이 화를 냈습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십니까? 제 아내와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과일껍질을 주워먹으며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하늘나라에 못 갑니까?” 그분은 성경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참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 자신이 행한 선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

1962년 제가 기술하사관 시험에 떨어지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보았습니다. 그날부터 ‘내 생각을 따라가면 안 돼. 내가 한 것은 다 망했어. 예수님의 말씀이 맞아’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죄가 사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성경 곳곳에 내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다는 수많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것에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온전히 이루어 놓으신 구원에는 생각이 도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 한 것이 없지만 의롭다고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롭게 되어야 의롭고, 자신이 선을 행해야 선하고,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아야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방법

사단은 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구원을 우리가 노력해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 어떤 수고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온전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우리는 이 말씀에 “예” 만 하면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잘했다는 선 ▲거지에게 외투를 덮어줬다는 선 ▲아홉 살부터 도시락을 다른 사람에게 줬다는 선 ▲한 번도 악한 생각을 품어 본적이 없다는 선
▲14년간 예수님을 위해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는 선에 대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악한지 깨닫고 그 생각을 버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를 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38년 된 병자처럼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면 걸을 수 있고 사마리아 여자처럼 “이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똑똑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사람이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거스릅니다. 하나님은 잘나고 똑똑한 사람 말고 자신이 악한 것을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요한복음 9장의 소경은 예수님이 눈에 진흙을 발라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니 “예” 하며 생전 처음 가보는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눈을 떴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가 밝은 눈으로 예수님께 돌아와 놀라운 주의 종이 됐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이 아담을 속이고 하나님과 반대의 길로 가도록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마음속에 사단이 넣어준 악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나아와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 2019. 7. 14. 오전 주일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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