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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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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베드로처럼 성령에 이끌려 산다면[사도행전 3장 1절 ~ 10절] - 2019. 5. 26. 오전 주일예배 설교 -

성경을 정확히 읽으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도 하지만 우리 손으로 하나님을 만져볼 수 없고 우리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따라서 신앙을 적당히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애매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정확히 읽고 하나님의 마음을 찾으면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가 무익해지고 하나님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모든 것을 내 뜻대로 결정하던 삶에서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게 됩니다. 
1962년 제가 구원받기 전에 했던 모든 일을 실패하면서 ‘내 생각을 따라 살면 망한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려다 보니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었고 말씀을 믿을 때마다 하나님이 제 삶에서 놀랍게 일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오늘 읽은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에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가 성전 미문으로 들어갔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앉아 구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기를 이끌어가던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이 자기를 인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후에는 내 생각에 난 분명히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졌다는 말씀을 보면서 ‘나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다’라는 내 생각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라는 말씀을 비교했을 때, 내 생각은 그릇되고 말씀이 옳기 때문에 “나는 죄 사함 받았네. 나는 의롭네”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여러분, 제가 구원받기 전에 가졌던 세계와 구원받은 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세계는 매우 달랐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내 자신이 중심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았기에 구원받은 후에도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성경을 보다가 그런 삶과 다른 믿음의 세계를 만났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우물가에서 만나고 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내 생각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물인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아? 그런 물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자는 삶이 어렵고 현재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볼 때 자기가 옳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분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 저분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자’ 하며 “주님,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세계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그리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을 때,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내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니까 ‘어떻게 다를까?’ 하며 생각해야 하는데, 번거롭다며 적당히 그냥 지나가버리는 사람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는 외형적인 것은 믿음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어떤 문제 앞에서 내가 생각하는 생각의 세계, 즉 육신의 욕망을 따라 돈 벌어서 즐겁게 살려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뭐, 적당히 넘어가자’라고 하는 사람은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지?’ 하고 깊이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와 내가 원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원하는 세계는 옳지 않고 문제가 있으며 어려운데,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항상 제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이루고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갈 때

제가 아들딸을 키우면서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아들 영국이에게는 아버지가 둘 있습니다.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다른 하나는 저입니다. 하나님, 제가 영국이를 키우는 것보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더 잘 키우십니다. 오늘부터 저는 아버지라는 이름만 갖고 영국이 아버지의 역할에 사표를 내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국이를 맡기니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난 후 하나님이 아들을 키우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제 아들이 군대에 갈 때 나이가 26세였는데 어떤 분이 늦은 나이에 입대한다며 손을 써서 후방으로 빼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형제님, 영국이는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십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끄실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에 배치

제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훈련소에 들어온 전 병사를 대상으로 영어시험이 있었는데 영국이가 1등을 했습니다. 당시 특전사령관이 논산 훈련소에 전화해서 몇월 며칠 입대하는 병사들에게 영어시험을 치르게 해서 1등을 한 병사를 특전사로 배치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논산 훈련소와 특전사 훈련을 마치고 특전사령관 비서실로 배치되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아들이 혼자 사령관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내무반 고참이 비서실의 사령관 전화로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아가씨와 영어로 통화한 것이 통신 보안에 걸려 사령관이 무척 화가 났습니다. “누가 내 전화기로 일본에 있는 아가씨와 영어로 통화했어?” 당시 비서실에는 다섯 명의 병사가 근무했는데 영어로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은 제 아들 영국이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두 제 아들이 통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령관님이 화가 나서 명령했습니다. “영국이 오라고 해!” “예, 부르셨습니까?” “너, 왜 내 전화기로 일본에 전화했어?” “제가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해! 당장 영창 보내!” 아들은 평소 기도하지 않다가 영창 입창을 앞두고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아들은 다음날 아침, 영창을 가려고 모든 짐을 정리하고 참모장님께 신고하러 갔습니다. 참모장님이 물었습니다. “영국아, 네가 정말 전화 안했어?” “예, 전화 안했습니다.” “네 아버지 목사님이지? 아버지 이름 걸고 전화 안했다고 맹세할 수 있어?” “예, 할 수 있습니다.” “너, 하나님 믿지?” “믿습니다.” “하나님 이름 걸고 전화 안했다고 맹세할 수 있어?” “예, 할 수 있습니다.” 참모장님이 비서실 병사들을 전부 집합시켰습니다. “너, 영국이 전화하는 거 봤어?” “못 봤습니다.” “넌 봤어?” “못 봤습니다.” “그런데 너희들 왜 영국이가 통화했다고 그랬어?” “영국이가 영어를 잘해서 그랬습니다.” 참모장님은 사령관님을 찾아가서 “사령관님, 영국이가 전화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비서실 병사 전부 집합시켜!” “너희들, 보지도 않고 왜 영국이가 했다고 해? 영국이 영창 보내지 마!” 
아들은 밤새 기도한 것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아들이 그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자기 방법과 수단이 아니라 예수님이 곁에서 지키고 이끄시는 걸 경험하면서 점점 인간의 방법보다 예수님의 방법이 좋다는 걸 느끼게 된 것입니다. 

CLF에 참가한 목회자들

여러분, 우리가 2017년부터 기독교지도자연합(CLF) 모임을 했는데 현재까지 11만3천5백명의 목회자들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대전도집회를 하면서 전 세계 많은 나라 가운데 그 나라 교회의 대표급 되는 목사님들을 초대하여 많이 오셨습니다. 그분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깜짝 놀라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게 진리다”라고 간증하며 감격해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도미니카 목회자 모임에서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나는 의인이다’라고 하니까 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은 매일 죄를 짓는데 “의인이다. 죄가 없다. 깨끗하다”고 하니까 이상한 말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들이 제게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목사님은 죄 안 지었습니까? 거짓말 안했습니까? 도둑질 안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배고파서 남의 밭에서 감 따먹고, 밀 꺾어다가 구워먹고, 감자 캐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인입니까? 도둑질했으니까 죄인이잖아요.” “예, 저는 죄를 지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저를 의롭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해

여러분, 이스라엘의 5대 절기 가운데 처음이 유월절이고 그 다음이 초곡절, 그리고 오순절입니다. 오순절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오십일이 지난 때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데 부활의 첫 열매되신 것이 초곡절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였고 다음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순절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54일쯤 되는 날입니다. 제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의논하는데 오순절날 성령이 그들 마음속에 임하면서 예전에는 한 번도 갖지 못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靈)’이라는 존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든 악령이든 우리 마음속에 생각을 넣어줍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도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라고 성경은 이야기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기 생각이 아닌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따라 예수를 팔았다는 겁니다. 사도행전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을 감추었을 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

오순절날 성령이 베드로의 마음속에 임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이 베드로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전에 가졌던 자기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가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내게 돈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 돈은 너를 못 걷게 하지만 예수님이 너를 고쳐 걷게 하신다. 걸으라”고 한 말씀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만일 성령이 여러분에게 ‘저 병자를 자리에서 일으켜봐라’ 하는 생각을 넣어주실 때 ‘에이, 나는 믿음이 없어. 자리에서 못 일어나면 창피하잖아’라고 생각한다면 한평생 주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역사하면 좋은데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안되면 창피하잖아’ 하며 믿음에 설 수 없게 하는데 ‘창피당하더라도 일단 해보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의 영적 싸움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영적 싸움이 일어납니다. ‘나는 도둑질하고 거짓말해서 죄인이야.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면 의인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네. 그렇지만 나는 죄인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각을 이겨버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반대로 후자는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겨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 14:32)라고 하듯,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이 예언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데 예언하는 자가 ‘난 못해’라고 생각하면 성령이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믿을 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자기 생각을 따르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vs 성경 말씀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첫 번째로 통과해야 할 마음의 싸움은 ‘내가 죄인이냐? 의인이냐?’라는 문제입니다. 분명히 나는 도둑질했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죄를 지은 죄인이 맞습니다. 더욱이 죄를 씻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내 생각이 옳아? 성경의 말씀이 옳아?’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옳지. 나는 의롭구나’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이길 때 ‘나는 의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내 생각이 말씀을 이길 때 ‘나는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소켓을 세탁기와 연결하는 방법과 냉장고와 연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소켓이 하나밖에 없어서 세탁기와 연결시키면 냉장고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기소켓을 냉장고와 연결하면 세탁기는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성령의 음성을 따라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려는데, ‘안돼. 안된다’라는 자기 생각을 받아들이면 ‘난 안돼’ 하고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되긴 뭐가 안돼. 예수님은 믿음대로 역사해. 돼’ 하고 믿음 편에 섰을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실수가 많고 연약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어. 예수님은 내 안에 계셔.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 사람을 일으킬 수 있어’라고 믿었을 때 “우리를 보라” 하며 오른손으로 그를 딱 잡았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베드로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때 사단은 항상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이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 우리를 통해 나타나 베드로처럼 앉은뱅이도 걷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떠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의 눈을 떠서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주님의 말씀인지 사단의 생각인지 분별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나타내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그와 동일한 성령을 주셔서 땅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길 원하십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나는 죄인이야”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할 시대가 왔을 만큼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듯이 우리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산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살아 일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9. 5. 26. 오전 주일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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