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복음을 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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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복음을 전하면
[에스더 3장 10절 ~ 15절] 2019. 5.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76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5.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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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 속의 영적 싸움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에스더」3장 말씀을 읽었습니다.「에스더」서에는 유다인과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인 하만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싸움은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단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한 사람의 영혼을 되찾아 주님의 은혜 앞에 세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에스더」서를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나옵니다. 또한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그 나라의 왕 다음 최고 높은 치리자로 세워서 그가 유다인 하나 멸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에스더」1장에서는 아하수에로왕과 왕후 와스디가 나오는데 어느 날 아하수에로왕이 잔치를 하면서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와스디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와스디가 자기 잔치를 하느라 왕의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왕이 분노하며 “왕후 와스디가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신하들에게 묻자 “왕이시여, 이 소문이 퍼지면 전국의 모든 여자들이 남편을 멸시하게 될 것입니다. 와스디를 폐위하시고 다른 왕후를 세우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된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만이 쓴 조서

이렇게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왕의 신하 중 두 명이 왕을 죽이려 한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신고했습니다. 그 두 신하를 잡아 조사하니까 왕을 죽이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나 그들을 죽이고 왕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런 후 아하수에로왕은 하만에게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하만이 보니 대궐 문에서 사람들이 다 엎드려 자기에게 절하는데 모르드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만은 ‘모르드개 하나만 죽이는 게 경하다. 모든 유다인을 죽였으면 좋겠다’ 하며 왕에게 “이 나라에 한 민족이 다른 법률을 가지고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습니다. 제가 은 일만 달란트를 드릴테니 왕이 조서를 내려 그들을 멸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왕이 인장반지를 빼서 하만에게 주며 “그 은을 그냥 네게 주고 그 백성에 대해서도 네 마음대로 조서를 써서 인장반지를 찍어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다인 전부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금년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죽이라” 하며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고 인장반지를 찍어 수산성(城)과 다른 127도(都)에 선포케 했습니다. 

복음에는 대적자가 많아

제가 구원받기 전에 장로교회를 다닐 때는 핍박이나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만 제가 새벽기도를 갈 때 “옥수야, 이 추운 겨울에 차디찬 마룻장에 앉아 있으면 감기 걸리니까 새벽기도는 안 가는 게 어떠냐?”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후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할 때부터 저를 대적하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았지만 매일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예수님 당신의 죄가 있어서 죽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참 어린양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큰 부자 영감의 고민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죄를 지어 포도청에 끌려갔다가 “곤장 스무 대!”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부자 영감님이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곤장 스무 대를 맞았다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루는 조카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삼촌,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내가 포도청에 끌려갔는데 곤장 스무 대를 맞아야 한다.” “삼촌, 논 열 마지기와 집 한 채, 황소 한 마리만 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게 다 맡기세요.” 이윽고 그 조카는 동네에서 덩치 큰 총각 하나를 불렀습니다. “자네, 왜 여태 장가를 안 갔나?” “제가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 집도 없는 제게 시집오면 굶어 죽기 십상이죠.” “자네, 논 열 마지기면 되겠어?” “예에?” “논 열 마지기가 부족하면 집 한 채와 황소 한 마리도 줄게. 내일 아침 일찍 식전에 우리 집으로 한번 오게나.” 

곤장 스무 대의 대가

다음날 아침, 거하게 한상을 차려서 그 총각에게 음식을 잔뜩 먹이고 또 한잔 걸치게 한 후 이야기했습니다. “논 열 마지기, 집 한 채에 황소 한 마리 줄 테니, 어려운 일 좀 하겠나?” “무슨 일인데요?” “곤장 스무 대를 맞는 거야.” “예에?” 그 총각은 논과 집, 황소가 탐은 났지만 곤장 스무 대 맞을 일을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한편으론 ‘곤장 스무 대 맞고 기절이야 하겠지만 죽진 않아. 며칠 고생하면 되겠지. 논 열 마지기면 예쁜 아가씨랑 결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하며 고민이 되었습니다. ‘곤장을 맞을까? 안돼. 맞을까? 안돼.’ 그는 고개를 젓다가 ‘내 평생에 무슨 수로 논 열 마지기와 집 한 채, 황소 한 마리를 얻어서 장가가겠나. 까짓것 맞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 총각이 부자 영감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영감님, 제가 곤장 스무 대를 맞겠습니다. 논 열 마지기와 집 한 채 그리고 황소 한 마리를 주십시오.” “고맙네. 고마워.” 곤장 맞는 날 아침, 총각은 포도청에 가서 “아무개 이름으로 곤장 맞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포졸들이 그 총각을 형틀에 묶고 큰 곤장으로 “하나요, 둘이요” 하며 때렸는데 열일곱 대를 맞을 때쯤 정신을 잃었습니다. 서너 시간 뒤 정신을 차린 그가 “여기가 어디야? 내가 곤장을 다 맞았나? 그럼, 논 열 마지기 내꺼다”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평생에 얻지 못할 땅과 집, 황소를 받아 예쁜 아가씨와 결혼했습니다. 이 총각은 대가를 받고 대신 벌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가없이 우리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대화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수많은 대적과 핍박, 어려움을 당합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에스더」서 이야기도 그중의 한 예입니다. 어느 날 아하수에로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거하는 모든 유다인들을 멸하라는 왕의 조서가 내려왔습니다. 이때 유다인에게는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망간다 해도 잡혀 죽을 확률이 높아 결국 맞서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왕의 반지로 인을 친 조서는 왕이라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대궐 문 앞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굵은 베를 벗고 입을 의복을 주려고 시녀를 보냈는데 그가 받지 않아 이유를 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왕이 하만에 의해서 유다인을 전부 멸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에스더에게 유다인을 구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가서 간절히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면 죽는다고 자기 형편을 말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때에 네가 조용하면 유다인은 다른 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을 당하리라.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라고 말했습니다. 

‘어, 여길 들어오면 죽는데’

에스더는 왕후라도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어전에 들어갔다가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는다면 죽게 되는 법이 있어서 처음에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왕후가 될 조건이 없는데, 하나님이 유다인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왕후가 되게 하셨구나. 나를 통해 유다인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왕 앞에 나아갈 때 나를 살려 주시겠구나’라며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삼일 동안 밤낮으로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나도 내 시녀들과 기도하고 왕 앞에 나아가리니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모르드개에게 말했습니다.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옷을 입고 어전 뜰 문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침 왕이 전 문을 향한 채 왕궁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성경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입니다. 왕이 어전에서 문을 향하여 앉았다고 했습니다. 어전 문이 열리자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 누구야? 여길 들어오면 죽는데.’ 문이 열리더니 에스더의 치맛자락이 보이고 곧이어 왕후의 관을 쓴 에스더가 나타나자 왕이 얼른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궁중일기를 읽다가

에스더가 금홀 끝을 만지며 ‘이게 사실인가? 꿈인가?’ 하며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전에 나오면 누구라도 죽이는 법이 있는데, 생명을 무릅쓰고 왕후 에스더가 나아온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허락하겠노라.” “오늘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왕은 잔칫상에서 에스더에게 다시 소원이 무엇인지 묻고는 나라의 절반이라도 허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왕이시여, 왕을 위하여 내일도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만 했습니다. 왕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왕후가 들어왔는지 궁금해 답답했지만 참았습니다. 
한편 그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서 궁중일기를 읽다 예전에‘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죽이려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해서 자신이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살린 은인을 그냥 지나치다니’ 하며 왕이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빅단과 데레스가 나를 죽이려고 했을 때 모르드개가 날 살려 줬어. 이 일을 인하여 내가 모르드개에게 무슨 관작을 베푼 적이 있느냐?” “왕이시여, 없습니다.” 그때 밖에서 하만이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도록 왕께 청하려고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높이 50규빗 되는 나무에

왕이 하만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참 기뻐하는 사람이 있어 그를 존귀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 그건 틀림없이 나일 거야’ 하면서 “왕의 관을 씌우고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시는 말을 태워 성중에서 제일 높은 왕의 신하가 그 말의 고삐를 잡고 성중을 돌면서 왕이 기뻐하는 사람은 이렇게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왕은 ‘저놈이 왕관을 쓰고 싶어하는구나’ 하며 하만의 마음을 알아챈 후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해 대궐 문에 앉아 있는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네가 말고삐를 잡고 성중거리를 다니며 왕이 기뻐하는 사람은 이렇게 할 것이다 하라” 하자 하만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날 왕이 다시 잔치에 와서 술을 마시며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시행하겠노라.” “왕이여, 왕이 나를 사랑하시오면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의 생명도 내게 주십시오. 만일 우리가 종으로 팔려간다면 잠잠했겠지만 내가 어떻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있습니까?” 왕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이 일을 그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냐?” “왕이여, 그는 다름 아닌 악한 하만입니다.” 왕이 화가 나서 궁중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을 때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놈이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높이 50규빗 되는 나무를 세웠는데, 왕은 거기에 하만을 달라고 했습니다. 

내 모든 죄가 사해졌구나

1950년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51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저는 1962년 구원받기까지 11년 동안 기쁨이란 단어는 알았지만 기쁨이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1962년 5월에 기술하사관으로 입대하려고 지원했다가 거기서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술하사관은 누구든지 지원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앞니가 조금 깨졌다고 불합격 처리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제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고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정확히 보여주셨습니다. 10월 7일 이른 새벽 예수님의 피로 저의 모든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 모든 죄가 사해졌구나. 이제 나는 의인이야! 이제 나는 깨끗해’ 하며 감격스러웠습니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저는 구원받고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이 감사해서 주님께 제 생명을 바쳐도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한푼도 없어서 훔쳐서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주 부르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찬송가가 떠올랐지만 주님이 제게 ‘네 몸을 어디에 써?’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가 구원받고 목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다만 이런 꿈을 그려보았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6·25 전쟁으로 전장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죽었습니다. 전쟁 직후라서 집집마다 부모 없는 아이들과 부녀자만 사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지붕이 새도, 방구들이 깨지고 문짝이 부서져도 고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못 해도 그것을 고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받으시고 그 일에 써 주신다면 한평생 그 일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사랑하는 여러분, 이젠 세월이 많이 흘러 제가 구원받은 지 5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제가 쉰 살에는 예순까지만 산다고 생각하고 일했습니다. 예순이 돼도 건강해서 일흔까지 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든 고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저를 통해 복음의 문을 여시고 어느 날 목사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전 세계로 선교사를 보내라 하시고 기독교지도자연합(CLF)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을 돕는 걸 봅니다. 그동안 저를 대적하는 사람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앞서 싸워주셨습니다. 

홍 자매님의 간증

지난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는 합천교회의 홍 자매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의사는 그 자매님에게 “시신경이 다 죽어서 절대로 앞을 볼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살아나도 당신이 앞을 보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홍 자매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이 일하시면 우리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쉬워요.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셔요.” 저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봤습니다. 드디어 홍 자매님이 앞을 보게 되면서 부모님이 구원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 귀한 복음을 증거하길 원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우리가 죄인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실패했다는 말밖에 안됩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여전히 자기는 죄인이라고 하면서, ‘의롭다. 모든 죄를 씻었다’라는 말을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증거하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아무리 대적이 있어도 결국 그 일을 이루어가실 줄 믿습니다.

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에스더」서에는 두 가지 조서가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 유다인 모두를 멸하고자 쓴 조서와 아달월 십삼일에 유다인들은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고 유다인을 대적하는 자들을 치라는 조서인데,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조서는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쳐서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쓴 조서와 나중에 쓴 조서를 나란히 붙였습니다. 먼저 쓴 조서보다 나중에 쓴 조서가 더 힘이 있어서 성경에는 그날에 유다인 아닌 본토 백성 가운데 유다인을 두려워해 유다인이 되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을 쳐다보면 우리 눈에는 그 사람만 보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이 시대의 에스더가 되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주님만을 위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인간적인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이 시대의 에스더입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 2019. 5.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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