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성경 말씀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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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성경 말씀을 믿어야
[로마서 4장 1절 ~ 17절] 2019. 4. 21. 부활절 연합예배 오전 설교(잠실실내체육관)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4.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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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부활절을 맞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께서는 주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 모여 주의 부활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보시며 무척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셨고 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의를 주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2019년 새해 첫날부터 무척 바빴습니다. 특히 우간다 국립 스타디움에 모인 10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여 우리가 의롭게 된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이 감격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은혜 입혀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의 기준을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두고 있어서 ‘내가 금식기도를 하고, 내가 십일조를 내고, 내가 전도를 하고, 내가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해’라며 그렇게 해야 신앙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탕자 이야기

누가복음 15장 12절부터 16절까지 탕자가 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한 후 먼 나라로 가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어지자 돼지를 치는 일을 했는데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탕자가 한 일입니다.
이런 탕자의 삶이 20절부터 변합니다. 아버지로 인해 그의 삶이 깨끗해지고 밝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까? 17절부터 19절까지 말씀을 보면 탕자의 마음이 먼저 변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말씀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라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죄가 되는 이유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지존파’라는 무서운 살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하루는 데이트하는 남녀를 잡아서 끌고 갔습니다. 여자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남자 친구를 총으로 쏴 죽이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울기만 하니까 칼로 위협해 결국 남자를 죽이게 했습니다. 얼마 후에 여자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여자가 그 틈을 타서 탈출해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래서 ‘지존파’가 다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검찰에서 조사했는데 그 여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분명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지만 그의 마음에서는 총을 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행위보다 마음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느냐, 악한 일을 했느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를 심판하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믿음의 삶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는 추하고 더러운 마음을 그대로 두고 행위를 바꾸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위를 보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행동이 참 착하더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이 참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선하고 진실하고 충성되게 살라고 하면 자신 없지만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합하는 것이란

성경을 계속 읽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면 하나님과 마음을 같게 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저는 죄를 많이 지은 죄인인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저에게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려면 ‘죄인’이라고 해야 합니까, ‘의인’이라고 해야 합니까?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칸타타 공연 중에서 한 노부부가 “치킨스프!” “스테끼(스테이크)!” 하며 서로 다른 것을 먹겠다고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부가 마음을 합하지 않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너 의롭다!”고 하시는데 “아닙니다. 전 죄인입니다!” 하며 마음을 합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자기 생각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합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내 생각과 달라도 “예, 의롭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하나님과 내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곤장을 대신 맞은 한 총각

옛날 어느 마을에 부자 영감님이 있었는데 법을 어겨 포도청에서 곤장 20대를 맞으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이 부자 영감님이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곤장 20대를 맞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동네에 아주 건장한 총각 하나가 있는데 너무 가난해서 장가를 못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를 불러 진수성찬을 차려주었고 술 한잔을 먹여 기분이 좋을 때 영감님이 말합니다. “자네, 장가 가고 싶지? 내가 땅 열 마지기 하고 좋은 집과 소 한 마리를 주면 그것으로 결혼하고 아들딸 낳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걸세. 그 대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되네” “정말입니까?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내가 곤장 20대를 맞으라는 벌을 받았는데 늙은 내가 맞았다가는 죽을 것 같네. 자네는 건장하지 않는가. 한 닷새만 고생하면 털고 일어날 걸세.” 총각은 곤장 20대는 싫지만 ‘설마 20대 맞는다고 죽지는 않겠지. 내가 언제 이런 재산을 벌겠어’ 하며 대신 맞겠다고 했습니다.
곤장 맞는 날 아침 총각은 포도청에 가서 말합니다. “아무개 이름으로 곤장 맞으러 왔습니다.” 포졸들이 그 총각을 형틀에 묶고 큰 곤장으로 “하나요, 둘이요” 하며 때리는데 열다섯 대를 맞을 때쯤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서너 시간 뒤 정신을 차린 그가 “내가 곤장 다 맞았나? 이제 땅 열 마지기 내꺼다”라며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그가 얻은 땅과 집, 소 한 마리 그것들은 은혜가 아니고 곤장 20대를 맞은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대가가 아닌 은혜로 

로마서를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가 없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일을 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빚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교인들이 신앙을 거꾸로 합니다. 그 이유가 인간사회에 공짜가 없고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도 충성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대가 없이 공짜로 주는 은혜의 세계입니다. 은혜는 대가나 돈을 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은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지 복을 받을 목적으로 돈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돈으로도 안되고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햇빛이나 비와 공기도 다 공짜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완벽하고 의롭게 해

예수님이 다 이루셔서 우리가 죄를 위해 아무 할 일이 없도록 하신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눈처럼 희게 씻어 주신 다음에 그에 대한 대가로 일원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아무 대가 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죽음이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 같은 죄인에게 값없이 공짜로 죄를 사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생각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다른 마음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타락한 천사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천사가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많은 병자 중에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노력과 실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 천사는 분명 타락한 천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오셨을 때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죄 사함 받고 병에서도 나음을 입어야 하는데 연못을 쳐다보느라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등을 지고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서 선한 것, 옳은 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주어 예수님이 값없이 공짜로 주신 그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해는 BC 1491년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두 개의 돌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은혜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때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해로부터 430년 전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시대에는 율법이 없었는데 그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8~19)라며 아브라함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말씀을 믿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못하시는 일이 없는데 하나님이 주신다면 주시겠구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말씀을 믿을 때 일어나는 일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도 자신이 볼 때는 못 걸어가지만 “예, 예수님이 걷는다고 하면 걷습니다” 하고 그대로 발을 내딛으니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볼 땐 썩어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산다고 하면 삽니다. 누가복음 8장에 야이로의 딸이 죽었지만 예수님이 잔다고 하면 자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과 합하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죄인을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은 단지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면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다고 하시면 사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우리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씀대로 ‘나는 의롭네. 깨끗하네’ 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이 씻지 못하는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손의 못 자국을 봐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봐라. 이것이 네 죄의 벌을 대신 받은 증거야. 십자가에서 네 죄가 영원히 사해졌어.” 여러분, 우리가 가진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마음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아니에요. 이 죄는 사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하면 하나님과 마음이 다른 사람입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날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거룩한 날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 여기 있는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눈처럼 희게 씻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의롭습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죄인입니다” 하며 하나님과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여 “예, 주님, 저는 죄가 많은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씻었다면 씻은 겁니다. 하나님이 의롭다면 의롭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면 거룩합니다”라고 그렇게 믿음으로 받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슬픈 일은 사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해서 우리 생각을 엉뚱한 데로 끌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다 사했고, 찬송을 부를 때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라고 하면서도 기도할 때는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제 내 생각을 따라 그렇게 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의 값을 다 치러서 우리를 이미 거룩하게 했고, 깨끗케 한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017 美 CLF 모임 후

2017년 3월 미국 뉴욕에서 기독교지도자연합(CLF) 모임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미국 목회자 8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목회자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놀라워하였고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원받은 성도 두 명이 저희 뉴욕 교회로 찾아와 “앞으로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뉴욕교회 박 목사님은 그들에게 지금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성도들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그 사실을 알고 ‘기쁜소식선교회는 우리 교회의 교인이 찾아가도 돌아가라고 하는구나. 교인을 뺏어서 교세를 늘리려는 데 관심이 없구나’ 하며 마음을 열었습니다. 미국 크리스마스칸타타 공연을 할 때 목회자 모임(CLF)도 하는데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랍니다. 사단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그래도 내가 선한 일을 하고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넣어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의롭다면 의롭다고 믿어야 

이제 우리는 2019년 부활절을 맞아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의롭다 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의롭다면 우리는 의롭습니다. 저도 참 오랫동안 죄 속에서 살았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가 수없이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기억지 않는다. 십자가의 피로 눈처럼 희게 씻었다”라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제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냥 말씀 그대로를 믿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제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성령이 들어와 제가 생각지도 못한 마음을 품게 하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귀한 복음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전 세계 많은 목회자들에게 이 죄 사함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교육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 모든 죄를 씻어 우리를 의롭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다 지우고 하나님이 의롭다면 의롭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고 그때부터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 2019. 4. 21. 부활절 연합예배 오전 설교(잠실실내체육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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