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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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어야
요한복음 2장 13절 ~ 22절 | 로마서 3장 23절, 24절은 우리를 의롭다 하신 판결문2019. 3.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75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3.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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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병을 이기고

울산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던 허인수 목사님이 지난주에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허 목사님을 생각하면 마음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허 목사님은 경남 거창에 사셨는데 구원받기 전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현재 미얀마에서 선교하시는 김 선교사님은 그 당시 허 목사님의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친구가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 허 목사님은 구원을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 후 김 선교사님이 ‘아프지만 나았다’라는 제 간증이 실린 책을 허 목사님에게 주었습니다. 허 목사님은 그 책에서 제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라는 말씀으로 위궤양에서 나은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는 ‘나도 박 목사님처럼 이 말씀을 믿으면 병에서 낫겠다’라는 마음이 생겨 하나님께 기도한 후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 나았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면 되겠나’ 하며 막대기를 짚고 비틀거리면서 부모님이 일하시는 들로 갔습니다. “아니, 네가 여긴 웬일이냐?” “아버지, 저 다 나았어요. 농사일 도우러 왔어요.” 부모님은 깜짝 놀라 “얘야, 괜찮다. 일할 것 없다” 하며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 ‘이제 아들이 죽을 때가 되어서 그렇다’며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여섯 번의 암이 왔지만

그날부터 허 목사님은 불과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그 무서운 백혈병에서 다 나았습니다. 그렇게 구원받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헌금통 위에 앉아 있는 허 목사님을 보았습니다. “허 형제님, 왜 헌금통에 앉아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님께 헌금을 드리고 싶은데 돈이 없어 자신의 몸이라도 드리겠다고 헌금통에 올라앉았던 것입니다. 허 목사님은 선교학교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를 비롯한 국내외 곳곳에서 25년 동안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를 통해 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거듭났고 특히 수많은 병자들이 허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병에서 나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허 목사님이 어두운 얼굴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암에 걸렸습니다. 심각합니다.” 제가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허 목사님, 오래전 백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나았어요?” “믿음으로 나았습니다.” “이번 암도 똑같아요. 믿으면 나아요!” 허 목사님이 깜짝 놀라며 “그렇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허 목사님은 다시 믿음으로 그 암에서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허 목사님은 여섯 번이나 암에 걸렸는데 그때마다 믿음으로 병을 다 이겼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 주님 품으로 가셨지만 그분의 믿음은 우리에게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가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등 많은 병자들이 모여 물의 동(動)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 다 낫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동하는 걸 보고 연못에 들어가 보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8년 동안 꼼짝도 못하던 병자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베데스다의 악한 천사

이 장면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주시러 그곳에 가셨는데 사람들은 연못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걸 보았다면 ‘어? 38년 동안 꼼짝도 못하던 사람이 걸어가네. 어떻게 된 거지? 아, 저분이 고쳐주셨구나!’ 하며 예수님께 몰려와 “저도 고쳐주십시오” 하며 병에서 다 나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그 천사는 어떤 천사이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연못만 쳐다보게 만들었을까?’ 그 천사는 확실히 악하고 타락한 천사입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엉뚱한 곳을 바라보게 한 천사. 무서운 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을 쳐다보도록 하는 악한 천사의 역사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깨끗케 하시고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은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로 인해 더럽고 시끄러웠습니다. 만일 성전에 소도 없고, 양도 없고, 사고파는 사람들도 없이 조용했다면 예수님은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고 하시면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며 따집니다.
성전에 제사장, 장로, 율법사, 서기관들이 있어도 그들은 물질의 이득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아무리 제사를 드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사단의 역사가 많았습니다.

10년, 20년을 믿어도 죄인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하신 예수님을 가리려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나사렛에 사는 목수 아들이라고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저 예수를 그대로 놔두면 로마인들이 우리를 가만히 안 둘 거야. 예수를 죽여야 해’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단은 거짓된 진리를 만들어서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아 하늘나라 가려고 다닌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어떻게 죄를 사함 받는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냥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하는데 10년을 믿어도, 20년을 믿어도 죄인이고 결국에는 죽을 때까지 죄인으로 남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옵니다. 여러분,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사람들을 전부 죄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회개는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하고 그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회개를 해도 여전히 죄인으로 남는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가나 대통령의 고백

2012년 가나 IYF 월드캠프에 참석했을 때 가나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월드캠프 개막식이 끝나고 영부인께서 “목사님, 지금 대통령이 많이 위중하십니다. 기도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부탁하셔서 대통령궁에 갔습니다. 가나 대통령은 가나에서도 믿음이 좋은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제게 “걱정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저는 여전히 죄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각하가 죄인인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 아닙니까?” “각하,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죄는 지은 사람이 아니라 판사의 판결에 의해 정해집니다. 각하의 죄를 판결한 판결문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대통령이 깜짝 놀라시면서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해서 로마서 3장을 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마라!” 이 말씀은 도둑질 안 한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도둑질 한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 계명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예,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만약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이 있어도 그 죄를 지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 법은 필요가 없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의 판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각하,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판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각하에게 내린 판결문이 이렇습니다. 그때 우리의 죄가 다 사해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를 살리는 겁니까? 건졌다가 다시 물에 놔두는 것이 살리는 겁니까? 몸은 물속에 있는데 손을 잡고 있다고 그를 살린 겁니까? 아닙니다. 배 안으로 옮겨서 육지에다 데려다 주었을 때 비로소 완벽하게 살린 겁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건져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죄에서 벗어나야지 여전히 죄에 빠져 있으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가나 대통령께서 “나도 이제 죄가 씻어졌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의롭다”라고 간증하시며 너무나 기뻐하셨고 그 뒤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원한 속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그건 알아요. 그런데 또 죄 짓잖아요. 그럼 죄인이잖아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어렵다며 설교를 안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에는 분명한 복음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1~12)
구약시대에는 성소를 장막으로 지었는데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란 하늘나라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해 됩니까? 하늘나라 장막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제사를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 땅에 성전은 단 하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 돌판을 주신 뒤에 하늘나라의 성전을 보여주었습니다. “모세야, 이건 제단이다. 물두멍이다. 떡상이다.…” 그렇게 모세에게 자세히 하늘나라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난 뒤 ‘내가 네게 명한대로’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은 하늘에 하나, 땅에 하나 단 두 개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에 예배드리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회당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은 회당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이 땅에 성전이 두 개가 있으면 큰일 납니다.
여호수아 22장을 보면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단을 쌓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성막을 만드는 줄 알고 그들과 싸우려했습니다. 이 땅에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단 하나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성소안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회 강대상에 올라가 청소를 할 때 ‘하나님, 이 죄인이 성전에서 청소를 합니다. 저를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하며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참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시간계와 영원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땅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시간계에 속하기 때문에 시간에 한계가 있어 영원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 죄가 사해집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따라 과거로 흘러가 버립니다. 과거에 드린 제사 즉 ‘어제 저녁에 제사 드렸다. 작년에 제사 드렸다. 10년 전에 제사 드렸다’는 것으로는 그때의 죄는 사하지만 그 제사 이후에 짓는 죄는 씻질 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제사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계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 한계가 없고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 드리심으로 영원히 죄를 사하는 속죄제사를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그리고  “이 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셔서 우리가 거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드리셨다는 것은 두 번째가 없는 단 한 번에 드린 제사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2~14) 이 말씀은 ‘예수의 피가 이미 우리를 온전하게, 거룩하게 했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우리 죄를 사하지 못한 가짜 예수를 믿지 않고, 우리 죄를 완벽하게 영원히 씻으신 참된 예수님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예,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목회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2017년 3월에 미국 뉴욕에서 CLF 모임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 미국의 목회자 80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약 10만 명의 목회자들이 CLF에 참석했습니다. 올 초에는 우간다에서 목회자들과 일반 성도 10만 명이 모였고, 그 전에는 인도에서 12만 명이 제 설교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말씀을 배우러 해외에서 오신 목회자분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분명한데도 유독 한국교회에서는 들어보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이단이라고 하니까 그냥 이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도 안 드린다, 기도도 안 한다, 헌금도 안 한다, 별별 이야기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이 분명한 말씀 앞에 나와 변화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에서 오신 목회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미국 스프링필드에 큰 대학교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이제 내부 수리와 장비를 갖춰서 5월부터는 한 번에 천여 명씩 전 세계 목회자들을 교육하게 됩니다. 이런 복음의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의롭게 된 것을 믿어야

여러분,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 교회 장로님이 전 재산을 교회에 드리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분이 나이가 들어 죽음 앞에 설 때가 되었는데 마음에 여전히 죄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씻을 수 있는지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죄 씻는 방법을 정확히 이야기해주지 못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죄가 있는 채로 하나님 앞에서 서면 지옥에 가는 것을 분명히 알기에 정말 두려워하다 결국에는 지금까지 온 마음을 다해 섬긴 하나님을 욕하면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받아들여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된 걸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겁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은 판결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의롭다고 판결했습니다. 우리 모두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19. 3.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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