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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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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향한 민족의 염원이 서려 있는 곳, 충칭기획특집 시리즈 - ③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최근 방문객 급증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중국 서부의 중심 도시 충칭(重庆)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독립을 향한 염원이 서려 있는 곳, 중국 충칭을 찾아가 보았다.

Contents
     1.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2.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화동에서 태동하다
 ▶  3.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염원이 서려있는 곳, 충칭

독립운동 최후의 보루였던 충칭 임시정부 청사

1932년 윤봉길 의거(尹奉吉義擧) 이후 일본의 거센 박해를 피해 중국을 유랑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중국 충칭에 도착했다. 상하이에서 출발해 항저우·광저우·치장을 거쳐 4000㎞가 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충칭 롄화츠(蓮花池)에 청사를 마련한 임시정부는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을 중심으로 조직의 기틀을 정비하고 같은 해 9월 광복군을 창설하는 등 독립을 위한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충칭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1년에 약 100일 가량 안개가 끼는 이곳은 우울한 날씨로 악명 높은 영국 런던보다도 일조량이 적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 잿빛 아파트 숲 사이에서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충칭 위중구 롄화츠 38호)가 자리잡고 있었다.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즐비한 곳에서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선열들의 정신을 꼭 닮았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는 상하이(上海)와는 달리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현지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런데 2017년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이후 관광객이 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벌써 꽤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한다. 

광복군사령부 복원 한창, 3월 29일 개방 예정

충칭 임시정부 청사는 1991년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뻔했다. 그런데 당시 충칭에 거주하던 이소심(80,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의 딸) 여사가 이 사실을 알고 ‘이곳을 철거하면 한국과 우호를 맺기 힘들다’고 중국 공산당 간부들을 설득했다. 이후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의 합의로 보존이 결정되면서 내부 정비를 마친 뒤 지난 1995년 개장했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 내부는 당시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의 집무실부터 임시정부 요인들의 회의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에서 온 김갑제(68) 씨는 “우리 민족의 불멸의 가치인 독립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방문 소감을 말했다.
임시정부 청사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충칭 최대 번화가 제팡베이(解放碑)에서는 광복군사령부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현장에서 만난 인부는 공사가 거의 완공되었으며 일부 내부공사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광복군사령부는 오는 3월 29일 일반인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독립운동가 지청천(1888~1957)을 사령관으로 조직된 광복군은 해방 직전까지 미군과 연계해 서울 탈환을 계획했다. 그런데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미완의 작전으로 남겨졌다. 

중국 내 산재된 독립운동 유적지 관심 가져야

충칭 곳곳에 스며 있는 선열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2박 3일의 일정이 마무리 됐다. 미처 가보지 못한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오늘날 이곳에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도 궁금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만난 충칭 한인회 황선목(45) 사무총장은 “충칭에 거주하는 2000여 명의 한인들은 독립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매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 “임시정부가 충칭에 정착하기 전에 치장(綦江)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얼마 전 그곳을 다녀왔는데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 내에 아직 관리되고 있지 않은 독립운동 유적지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본지 취재진은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이 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교과서 속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하루하루였다.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의 혼이 서려 있는 공간을 보존하고 그들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예우하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다음 100년 동안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방법이 아닐까? 3회의 기획 시리즈를 마치면서 꽤 오랫동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강민수 차장대우 mska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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