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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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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기획특집 시리즈 - ①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알린 3·1운동, 올해 100주년 맞아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본지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특별기획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3·1운동의 의미와 파급효과 등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Contents
 ▶  1.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2.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화동에서 태동하다
     3.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염원이 서려있는 곳, 충칭


두 달 동안 200만 명이 외친 “대한독립만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기미독립선언서 中 -

우리는 현재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는 선조들이 일본으로부터 우리 것을 되찾고자 숭고한 목숨을 바치며 독립운동을 벌인 결과다. 
올해는 35년 식민치하 최대의 독립운동이며 임시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아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시작된 평화적 만세운동이다.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라는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고 러시아에서 반제국주의를 주창하자 우리 민족은 독립의 희망을 보았다. 
일본 도쿄에서 수백 명의 조선 유학생들은 2·8독립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갑작스런 고종의 승하(1919년 1월)가 일본의 독살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울분은 극에 달했다.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운집하는 고종 장례일(3월 3일) 이틀 전인 3월 1일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기미독립선언 낭독과 함께 종로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조국독립만세”의 함성. 
비폭력,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우리 민족과 달리 일제는 총과 칼로 군중을 학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은 두 달 동안 전국에서 1500회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200만 명(당시 인구 2000만 명)이 동참했고 만주, 연해주, 미주, 일본까지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인도, 중국 등 국제사회에 파급 영향도 다대(多大)

거국적 민족운동이었던 3·1운동 후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또한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었지만 더욱 교묘하게 민족분열과 말살정책을 시행하는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인도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과 중국의 5·4운동, 베트남·필리핀의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3·1운동은 일제 탄압이 가혹해지면서 중소도시로 시위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무력저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주 기자는 순사 2명이 타살되는 등 일본 역사에도 위험한 지역으로 기록된 화성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찾아갔다. 이곳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더불어 3·1운동의 3대 항쟁지로 알려진 수원군(현재 수원·화성·오산) 중 한 지역이다.  
홍은진 문화관광해설사는 “700명으로 시작된 만세시위는 1박 2일에 걸쳐 31㎞간 이어졌고 쌍봉산(화성시 우정읍)에 이르렀을 때는 시위인원이 2000명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인은 제암리 주민 23명을 교회당에 모아 불을 질러 죽이고 고주리에서 6명을 죽였다”고 말했다. 잔혹했던 제암리 학살사건은 캐나다인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1889~1970) 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나라의 역사에 지속적인 관심 가져야

제암리에 학살이 자행됐던 1919년 4월 15일, 광복회 안소헌(76) 화성지회장의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도 희생되었다. 안 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 언론사에서 기념관을 찾는다. 이 기회에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민족의 독립의식을 국민들과 공유하게 되어 기쁘다. 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역사를 심도있게 들여다보아야 미래를 정확하게 투사할 수 있다”며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때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덧붙였다. 
홍 해설사는 “3·1운동에는 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 희생을 감내할만큼 독립을 향한 열망이 거셌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한 결과 1945년 해방을 이끌어냈다. 국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종로경찰서,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이 투척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신감을 얻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고 강조했다. 
이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순국선열의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소중함이 국민 모두의 마음에 새겨지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사진제공 /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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