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디 엘 무디 (D.L. Moody, 미국 1837~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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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디 엘 무디 (D.L. Moody, 미국 1837~1899)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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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부터는 사업을 정리하고 복음 전도에 전무했는데, 술집을 개량하여 만든 그의 설교 장소에는 주로 빈민층의 살람들이 모여들었다. 얼마 후 모여드는 사람들을 수용할 교회(일리노이 스트리트)가 지어졌고, 무디는 자연스럽게 그 교회의 설교자로 세워졌다. 그리고 1870년부터 영감 어린 찬송을 부르는 생키와 동역하면서 미국은 물론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캐나다, 멕시코 등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또한 무디는 동시대에 살았던 찰스 스필전과 죠지 뮬러와의 교류 통해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교파를 초월하여 어떤 교리에도 매이지 않았고,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죄를 모두 사하셨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의 신앙관은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그가가는 곳마다 비방하는 무리들이 뒤따랐지만, 그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고 복음 편에 섰다. 무디는 집회 때마다 말씀을 마친 후 죄 문제를 해결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따로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것은 복음 전도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여러 집회 중 특기할만한 집회는 스코틀랜의 수정궁에서 가진 집회로, 한 번에 5만 여명이 모였고 그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만 2천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1899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신도들도 모두 복음 전도자가 되아야 함을 주장하면서 '무디 성서 학원'을 비롯해 세 개의 성경 학교와 세개의 복음 전도회를 설립했다. 어느 날, 밤늦게 무디가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낮에 만난 한 사람에게 전도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침 무디는 가로등에 기대어 서 있는 그를 발견하였고, 다가가서 “당신은 그리스도인 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화를 벌컥 내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요? 당신 일에나 신경 쓰시오!”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러자 무디는 “이것이 바로 제 일이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는 무디와의 만남 후 석달 동안 갈등하다가 무디에게 찾아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이 짧은 일화는, 대중 집회뿐만 아니라 개인 전도를 통해서도 영혼을 건지는 일에 마음을 쏟았던 무디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한 신문기자가 무디에게 “당신을 보면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디는 크게 웃으면서 “당연하죠.  이 일은 내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니까요.”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당신께 온전히 헌신한 사람을 통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무디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컬컬한 목소리와 많은 문법적 오류 등 설교에도 결함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위의 말처럼 그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도구로 쓰셔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심령들을 건지셨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가 남긴 여러 말씀들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정리 / 고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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