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영국 1703~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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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영국 1703~1791)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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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웨슬리는 미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모라비안인 목사가 몇 가지 심각한 일신상의 질문을 하겠노라면서 그에게 대답해 달라고 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요? 성령이 친히 당신의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시요?”
웨슬리는 무어라 대답할 말을 몰랐다.  이것을 눈치 챈 그는 다시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가 세상의 구주인 것을 압니다.”
“맞았소. 그러나 그가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아시오?”
“그가 죽으신 것은 나를 위함인 줄 생각합니다.”

이같은 질문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신앙이 진정한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한여름 날의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2년 동안의 선교에 실패하여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국에 도착한 웨슬리는 또 한사람의 모라비안 목사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목사도 선교사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닌 벌거벗은 한 죄인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감옥전도를 통해 그는 자신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으나 오히려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에게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확신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구원이 믿는 그 순간에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채 새로 발견한 이 믿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웨슬리 자신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순간, 중생에 대해 맛보는 순간이 마침내 왔다.  그는 알더스 게이트가 저녁모임에서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누가 읽고 있는 것을 들으면서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구원이 믿는 즉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인하였으나, 성령으로 말이암아 전폭적으로 자신을 기울여 그 사실을 믿을 때, 마침내 영광스러운 손길이 닥쳤던 것이다.  
그 후부터 요한 웨슬리의 산 믿음의 열매는 마음의 평강이었다. 그리고 죄로 부터 해방이었다. 평안에서 우러나오는 희열과 성결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요, 구원받은 숱한 무리들의 영적 모범이었던 요한 웨슬리가 이렇게 하여 새생명에 들어갔다.
기독교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요한 웨슬리야말로 누구보다도 앞서 할렐루야를 선창했을 사람이다. 웨슬리뿐만 아니라 그럴 사람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체험이 없는 기독교 신앙은 열매 없는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죽은 것이다. 기독교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참 생명이 없는 종교인이다. 당신이 그 가운데 하나일는지 모른다. 요한 웨슬리처럼 이런 문제는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정리 / 고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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