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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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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에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길사도행전 8장 26절 ~ 40절 - 2019.1.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45호

에티오피아 장관님을 만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주간 미국, 우간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독교지도자모임(CLF)을 통해 현지 기성교회 목회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특히 우간다에서는 국가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한 10만여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기도로 함께 해주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8장의 말씀을 보면 성령의 인도를 받은 빌립이 광야에서 에티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2016년에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계속 문을 여셔서 각국의 대통령도 만나고 장관도 만나게 됩니다. 에티오피아 첫 방문 당시 교육부 장관님과 면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장관님을 만나 인사 드리고 제가 목사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분이 깜짝 놀라시며 “목사님, 저 교회 열심히 나갑니다”라고 이야기하셔서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가 장관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성경을 펴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날 장관님이 구원을 받으시고 무척 감격해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자제력

장관님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말했고 이 단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마인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에티오피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곳 청소년들의 사고가 무척 건전하지만 앞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저희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렵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에게 제가 “왜 바보같이 돈을 많이 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내가 절제해야겠다’며 자제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하지만 부모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아이들의 욕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나중에는 절제시키려는 부모와 싸우는 일까지 생기게 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고급식당에 데려간 적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식사초대를 하면서 아이들도 데려오라고 했지만 제 훈육방침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자제력입니다.

심각한 청소년 문제

장관님께 이런 부분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장관님, 경제가 성장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청소년 문제입니다. 국가경제가 성장하면 청소년의 욕구가 빠르게 커지게 되고 그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반항적인 사고가 생기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에티오피아 청소년들도 꼭 마인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장관님이 그날 제 이야기를 잘 들으셨는데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티오피아에서 심각한 청소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부에서 총리 주관으로 대책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장관님이 총리에게 “에티오피아에 이런 청소년 문제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견한 분이 계십니다”라며 저를 소개했습니다. 그 후 제가 다시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총리께서 저를 초청해 에티오피아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하게 되었고, 청소년 교육을 저희에게 맡기셨습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청소년 교육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부 장관님은 정무장관으로 승진하셨다가 이번에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로 한국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께 에티오피아 IYF 고문을 맡겼는데 뭐든지 시켜만 달라고 하시면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제가 여러 번 우리 교회 심 형제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 형제는 하루에 소주를 10병 넘게 마시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만나러 오기 전에도 소주 두병을 사발에 부어 마시고 왔습니다.
제가 히브리서 10장 14절을 읽어줬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그리고 그 형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님, 온전하십니까?” “아니요. 전 온전하지 않습니다.” 형제님이 자신을 보면서 ‘매일 술 취해 있는 내가 어떻게 온전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상태를 잘 모르시고 실수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술 취한 죄뿐만 아니라 모든 죄에서 우리를 씻으셨고 우리를 온전케 해 놓으셨습니다. 

‘온전하다’라는 단어

저는 그 형제의 마음과 싸웠습니다. “성경은 형제님을 온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럼, 성경이 맞습니까? 형제님 생각이 맞습니까?” “성경이 맞습니다.” “형제님, 온전해요?” “아뇨, 전 온전하지 않습니다.” 형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자신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피의 능력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온전하다고 하면 온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눈과 우리의 눈이 같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예수님의 눈과 우리의 눈은 다릅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난 술도 마시고 때론 욕도 하고 음란할 때도 많기 때문에 난 온전하지 않아’ 하며 자신의 판단이 더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 형제도 그랬습니다. “목사님, 저 그 말씀 다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온전하다’라는 단어 하나를 놓고 그 형제와 15분 동안 싸웠습니다. 드디어 형제가 “온전합니다”라며 말씀을 믿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던 사람이 온전하다는 말씀을 받아들이니 술 생각이 안 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복음 전도자가 되어 힘 있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의 문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선 목사님처럼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열심히 해서 온전하게 되려고 합니다. 그건 자신의 노력이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나의 죽음을 통해 아무개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 죄를 씻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히 온전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죄인이라는 내 생각을 따르지 않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의인이다. 거룩하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 속에 성령이 살아 일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 삶이 너무나 행복해집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오늘 읽은 사도행전 8장 26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큰 핍박이 있었고 스데반이 죽으면서 많은 성도들이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 집사로서 그도 사마리아로 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전에 빌립에게서 볼 수 없었던 성령의 인도가 나타나면서 온 성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합니다. 그때 빌립은 ‘이곳에 구원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데 조금 더 복음을 전하다 가면 안될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음성을 따라 가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에티오피아 국고를 담당하는 내시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병거 위에서 당시 두루마리로 되어 있던 성경 이사야의 글을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성령이 빌립에게 병거 가까이 가라고 하였고, 이에 막 뛰어가 병거를 따라가며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별사람 다 있네’ 하고 그냥 지나칠 텐데 내시는 자기가 성경을 읽는 데 부족함을 느끼니까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며 빌립에게 병거에 올라앉으라고 청합니다.

구스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다

그때 내시가 읽고 있던 성경이 이사야 53장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 성경의 앞부분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구스 내시가 빌립에게 묻습니다. “선지자가 이 말을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여러분 같으면 바로 대답할 수 있습니까? 네, 바로 예수님입니다. 빌립이 말합니다. “얼마 전에 유대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이야기 들어봤습니까? 바로 그분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우리 죄가 깨끗하게 씻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구스 내시가 바로 구원을 받고 길을 가다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라며 빌립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과거 완료형으로 기록

이사야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실 것에 대해 미리 예언한 예언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글을 기록할 당시에는 예수님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이 죽임을 당했다고 과거 완료형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영어에서는 한국어보다 시제를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으로 아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킬 것이다”라고 미래형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담당시키셨도다”라고 과거 완료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성경은 완벽하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간계와 영원계

여러분, 시간계 안에서만 과거, 현재, 미래 이런 시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계에 가면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과거나 미래가 없이 오직 현재만 존재합니다. 영원계에 계신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형 시제가 아닌 “다 이루었다”라고 완료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은 것 때문에 가책을 받고 또 죄를 지으면서 ‘난 부족하다. 죄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하다. 거룩하다”라고 하셨을 때 우리의 악함과 더러운 것을 모르시고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가 술 마시고 거짓말하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다 아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십자가의 피는 완벽하게 우리의 죄를 씻었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 죄가 다 넘어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아닐지라도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사한 것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한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우리 죄는 완벽하게 사해져서 우리가 거룩하고 온전해졌습니다. 수천 년 전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의인입니다. 누가 맞습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생각을 믿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이해 되든지 이해가 되지 않든지 믿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틀림없이 죄인인데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면 그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들은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 죄 안지었어요?”

어떤 분들은『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책을 읽고도 “나는 끝까지 죄인임을 밝혀 두는 바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저는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 죄 안 지었어요? 거짓말 안했어요? 도둑질 안했어요?” “저는 도둑질도 많이 하고 거짓말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인입니까?” “저는 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셔서 의롭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모두 입을 다뭅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과 다른 말을 한다면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 보기에 아무리 더러워도 하나님이 깨끗하다면 깨끗하고,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깨끗해도 하나님이 더럽다면 더럽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우리의 판단 위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똑똑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의 생각을 다 잠재워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으로 살다 보니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사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인이 없기를

오늘 아침,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말씀을 전했을 때 아주 쉽게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번 새해 초, 우간다의 제일 큰 집회에 강사로 초대를 받아 복음을 전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약 6만 명의 목사님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2019년 한 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소망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을 얻었다는 사실이 이론이 아니라 마음에 믿어졌을 때,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형벌을 안 받아도 되고 지옥에 안 가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쉽고 분명한데 우리가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복음 전하는 일을 어려워합니다.

열린 문을 두었으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음을 만방에 전할 수 있도록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8)라며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자동문을 처음 봤을 때 손잡이가 없는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갈지 궁금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앞에 서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습니다. 믿음이 이와 유사합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이 들어가면 저절로 하나님의 길이 열립니다. 안 열린다고 밤새도록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안 열리지만 믿음으로 부딪히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십니다. 그 믿음으로 ‘나는 온전해, 하나님이 함께해, 내가 가는 모든 길을 하나님이 열어,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봐’라며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담대한 마음으로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전 세계를 복음으로 물들여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삶 속에 일하시는 큰 은혜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2019.1.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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