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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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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각이 어떨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히브리서 10장 15절 ~ 30절 - 2018. 10.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35호

서울 성경세미나에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간 진행된 서울 성경세미나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이번 성경세미나에서는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속죄제사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만 계절마다 기온이 확연히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도 무척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세미나 첫날, 저는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낫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태가 악화되더니 결국 오빠가 죽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여기서 묘한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들이 볼 때는 분명 죽었는데 예수님은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사실을 정확히 알면 신앙생활이 정말 쉬워집니다.

‘그건 말이 안돼’

시장에 가면 옷을 파는 사람을 만납니다. 옷 파는 사람이 “쌉니다. 싸요. 오만 원!”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오만 원? 뭐가 싸. 너무 비싸잖아’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겐 어떤 말을 들을 때 ‘이것이 진짜 옳은 얘기인가’ 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보통의 자동차는 휘발유 1리터에 11~14㎞ 정도 주행할 수 있고, 기름이 많이 드는 차는 1리터에 7~8㎞ 정도 갑니다. 이럴 때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차는 1리터에 20㎞ 간다”라고 한다면 ‘아, 그 차 기름 적게 드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이 차는 1리터에
30㎞ 간다.” ‘정말, 그렇게 갈 수 있어? 대단하네.’ 그런데 누군가 “이 차는 1리터에 100㎞ 간다.” 더 나아가 “이 차는 1리터에 1000㎞ 간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기고 있네. 그건 말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떤 판단의 기준들이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서

성경을 보면 인간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선악의 지혜가 와서 스스로 ‘이건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 판단력을 사용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이 판단력을 사용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도 자신이 보기에 가능해 보이는 것은 믿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믿기 어려워합니다.
여러분, 성경 속의 일들이 실제 나에게 일어났다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오랜 기근에 이제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아들과 떡을 해먹고 죽으려는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와 말합니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 엘리야의 말대로 되면 좋겠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늙은 영감이 떡 뺏어 먹으려고 수작부리는 것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계산을 하면서 될 만한 것은 믿고 안 될 만한 것은 믿지 못하는 그런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믿음이 없다’라고 하면서 내게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니까 결국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걸을 수 있을까?

성경에서 일어난 역사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38년 동안 일어나 보지 못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을 들은 병자는 자기가 걸을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다리가 이렇게 다 말랐는데 어떻게 걸어가? 절대 못 걸어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고 하인들은 분명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인들이 들었을 때 ‘이게 물인데 어떻게 갖다 줘?’ 라고 생각하면 못 가져다주겠지요? 그런데 ‘내가 분명 물을 붓긴 했지만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저분이 포도주라고 하시면 포도주야’라고 생각하는 하인은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인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했겠습니까? 신앙은 이렇게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 봅시다. 여러분 가운데 죄를 짓지 않은 분 있습니까?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부끄러움, 죄책감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고 싶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 분명히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 하셨다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이미 죄가 넘어갔지만

예전에 대전에 계신 형제님 한 분이 수양관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모친님이 기성교회를 오래 다니셨는데 그 교회 목사님에게 자기 아들이 죄 없다고 말하는 교회를 다닌다고 말씀드리니까 “세상에 그런 이단이 어디 있느냐”라고 해서 저희 교회를 향해 마음을 꽉 닫고 계셨습니다. 제가 모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친님은 죄가 있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럼 죄 있지. 당신 같은 사람들이나 죄 없지.” 그래서 제가 이사야 53장 6절을 펼쳐 보여드렸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수많은 죄를 예수님께 넘길 때 하나라도 빠트리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넘기는 일은 너희가 하지마. 내가 할게’ 하시며 하나님이 직접 담당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과거완료형입니다. 이미 담당시키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친님께 이 말씀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습니다. “모친님, 그래도 죄가 있어요?” “있다니까.” “모친님은 왜 성경을 안 믿으세요.” “내가 왜 안 믿어. 당신들이나 안 믿지.” “성경 뭘 믿으시는데요?” “성경 66권 다 믿어!” 제가 다시 읽어보시라고 하고 죄가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죄 있다니까.” “모친님, 그러지 말고 말씀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자세히 생각하며 읽어보세요.” 이 모친님이 말씀을 생각하며 읽으시더니 깜짝 놀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죠? 그럼 우리에게 죄가 있어요, 없어요?” 모친님이 “네, 죄가 없는 게 맞네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겨 내야

우리가 보기에 죄가 씻어졌고 성경에서도 죄가 씻어졌다고 하면 그건 믿기 쉽습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받기 위해 돈을 많이 냈다거나 무언가를 했다면 모르지만 우리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고 마음에서 여전히 죄를 지은 기억이 나는데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씻어졌다고 하니까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이 어떨지라도 하나님이 씻었다고 하면 씻어진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려 할 때 넘어야 할 단계가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이겨내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죽은 거 하고 자는 거를 구분 못할까봐? 맥도 없고 숨도 쉬지 않고 싸늘한 시체가 됐는데 이게 뭐가 자는 거야? 죽은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볼 땐 죽었지만 예수님이 잔다고 하면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내가 볼 때 죄인이라도 의롭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

다니엘서 9장을 보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①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②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③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단 9:24~25)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9장 25절을 설명하겠습니다. ①“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에스라 1장에서 바사왕 고레스가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의미합니다. 함께 에스라 1장 3절을 찾아봅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이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 ②“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③“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이레는 칠년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는 총 육십구 이레인데 계산하면 483년이 됩니다. 즉 483년이 지나면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린 날로부터 483년 뒤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다니엘서 9장 24절은 예수님이 오신 후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구약시대에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죄를 영원히 사할 수 없고 그 당시 지은 죄만 사했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또 다시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즉 구약시대 제사로는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난다고 예언했습니다. 
매일 죄를 짓는데 어떻게 죄가 끝날 수 있습니까? “지극히 거룩한 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영원히 사하셨기 때문에 죄가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제사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못 박혀 죽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죄를 지은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우리 생각을 믿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믿을 것이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사실이고 악을 행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중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미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시고 끝을 내셨습니다. 죄가 끝나면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히브리서 10장 14절부터 보겠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4~18) 성경은 이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히브리서 9장에도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2) 예수님이 우리를 하늘나라에 보내기 위해서는 우리 죄를 영원히 씻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온전하게 되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성경을 깊이 모르니까 죄를 지어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고통과 슬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 같이 느껴질지라도 예수님께서 내 죄를 영원히 사했다고 하면 영원히 사해진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서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말씀과 싸웁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을 때 ‘내가 어떻게 걸어가. 내 다리는 힘이 없어’라는 자신의 생각과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부딪칩니다. 이때 ‘난 못 걸어가’ 하며 누워 있으면 평생 그대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네. 예수님이 걸어가라 하시면 내가 걸어가겠구나’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일어나 걸어가는 겁니다. 

돌판이 아닌 마음 판에 기록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히브리서 10장 16절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여러분,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그 법을 돌판에 기록했습니다. 그 돌판에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마음에 간음하고 싶은 마음,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면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판에 있는 그 법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후로는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우리 마음에 두셨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온 후에, 전에는 죄를 안 지으려고 매일 십계명을 보고 노력해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 사실 하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에 제가 죄와 멀어지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 죄 막 지어도 되나?

성경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면 우리는 의롭습니다. 이런 말씀을 전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럼 죄 막 지어도 되냐”라고 오해를 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지 결심한다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이 우리 삶을 달라지게 하면서 죄와 멀어지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지으려고 할 때와 비교도 안될 만큼 깨끗하고 복된 삶이 됩니다. 죄의 유혹이 와도 예수님이 그것을 이기시니까 우리 삶이 얼마나 밝고 온전해지는지 모릅니다. 현재 우리나라 이혼율이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오히려 이혼했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시 합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셔서 형제자매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넣어 거룩하고 청결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바다 위를 걸어와”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걸어갔습니다. 빠지면 예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못 믿고 우리 생각을 믿기 때문에 못 걸어가는 겁니다.
제가 처음 나환자촌에 갔을 때 사람들이 “목사님 나병이 걸릴 수도 있어요”라고 했을 때 좀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막 14:3)라는 성경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 거룩하고 존귀하신 예수님이 나환자 집에 가신 것을 보면서 제 두려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러 나환자촌에서 집회를 하면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했습니다. 주님이 제게 새 마음을 주시니까 그들과 아무 거리낌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 이것은 내 마음 아니야. 이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예수님이 제 마음에 당신의 마음을 넣어 주시니까 제가 밝고 거룩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예수님 마음이 여러분을 거룩한 삶으로, 복된 삶으로, 아름다운 삶으로, 소망의 삶으로 영광스럽게 이끌어 가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8. 10.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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