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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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민수기 13장 25절 ~ 14장 10절 - 2018. 10. 2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3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10.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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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 중에 잡힌 여자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모든 것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다른 쪽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려고 끌고와서 예수님을 만나는 대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죄가 없는가?’ 하며 자신을 돌아보니 죄인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 여자를 돌로 치지 못하고 돌을 살그머니 내려놓은 채 하나 둘씩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사실 그들도 죄가 있었지만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죄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자신들의 죄를 볼만한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마음의 빛이 그들 마음에 비추니까 비로소 눈이 밝아지면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했던 것이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이 시내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불러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주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너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라는 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 우리가 다 지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회개로는 죄를 씻지 못해

하나님은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만일 모세가 십계명만 가지고 내려왔다면, 그 법을 범했을 때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죄를 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40일 동안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정확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레위기에 기록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법을 다 지키겠습니다”라고 했음에도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죄를 범했을 때 죄를 씻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이 다 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죄를 씻는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무서운 일은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죄를 사함 받으려 애쓰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죄가 사해진다는 말씀은 없는데 말입니다. 신명기에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하지만 반대로 율법의 계명을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율법을 어겼다면 다시 그 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범한 죄가 씻어지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회개로는 절대 죄를 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해서 죄를 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계명이 아닌 새 언약

예레미야 31장 31절에는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하시며 하나님은 십계명이 아닌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절에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언약은 십계명이었습니다. 옛 언약으로 십계명은 다 지키면 복을 받고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이기 때문에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지 못하고 저주와 멸망을 줄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34절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부터 그들이 지키지 못할 걸 아셨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까? 성경에서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20)고 하였듯이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인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서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누님이 주신 스웨터 선물

옛날에 제가 어릴 때는 옷이 무척 귀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누님이 동생들을 키우셨는데 하루는 저를 위해 스웨터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녁마다 호롱불 아래 뜨개질 하는 누님만 쳐다보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한 달쯤 돼서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제 머리맡에 누님이 뜨개질해서 만든 옷이 놓여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뜨개질을 못하기 때문에 누워서 누님이 뜨개질 하는 걸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누님이 “옥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빨리 뜰게”라고 하면서 밤새도록 뜨개질 해서 스웨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스웨터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제 노력이나 수고로 얻은 것이 아니라 100% 누님의 손으로 만든 선물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거나 죄 사함을 받아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지는 데 손끝만큼이라도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들어가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값없이 은혜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분

여러분, 우리 인간의 어떤 방법이나 노력, 수고로는 손끝만한 죄도 씻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의 노력으로 죄를 씻을 수 있거나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모든 죄의 형벌을 받고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정확히 모르는 많은 목회자가 우리를 행위와 수고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고 성경을 변질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제 누님이 뜨개질 할 때 저는 옆에서 ‘빨리 스웨터를 입어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웨터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훌륭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내보내면 됩니다. 국민들 모두가 마라톤을 잘하지 못해도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결국 대한민국 것이 됩니다. 나이 들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머니도 “아이고, 허리야. 숨차라” 하다가도 “우리가 금메달을 땄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풀코스가 42.195㎞인데 할머니가 무슨 수로 그 거리를 달릴 수 있겠습니까?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도 “우리가 금메달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대표선수 한 명이 잘해서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듯이 이미 하늘나라에 가는 데 실격한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어겼지만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대표선수가 일등을 하면 그 국민에게 금메달이 돌아오듯이 지금까지 우리는 율법을 어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완주하여 승리하고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응원하면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33년간 사시는 동안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면 우리가 구원받을 길이 영원히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였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고 우리 대신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의를 박옥수 목사에게 주셔서 저는 의롭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때 제 의가 아닌 예수님의 의를 가져가기 때문에 천사가 천국 문에서 “박 목사, 굉장히 의롭네. 죄가 하나도 없네. 정말 흰 눈처럼 깨끗하네”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와 예수님의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받아야 할 영광스런 의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상반된 정탐꾼의 보고
 
 오늘 읽은 민수기 13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보내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벽돌을 이기고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집어 던져야 하는 등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낸다고 하셨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그들을 보내주지 않자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너 애굽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입구에 오자 열두 지파의 두령들을 정탐꾼으로 세워 그 땅을 먼저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정탐꾼의 눈에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너무나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포도송이 하나가 얼마나 큰지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정탐꾼은 “그 땅에 아낙 자손 네피림 후손이 있는데 그들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땅이 좋다고 말하더니 이번에는 “그 땅은 우리를 삼킬 땅이다”라며 두려워했습니다. 사단은 늘 우리를 속이는데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사단보다 강하기 때문에 우리를 능히 구원하십니다. 

마음 판에 기록한 새 언약

여러분, 요한복음 8장에서 한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첫 언약인 율법에는 그 여자를 돌로 치라했기 때문에 율법으로 재판하면 그 여자는 멸망을 받아야 합니다. 첫 언약 율법을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돌판에 기록하셨는데 인간은 죄의 욕망이 올라와서 자꾸 죄를 짓기때문에 율법 앞에 서면 저주뿐입니다. 그래서 새 법이 필요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4)는 두 번째 새 언약을 예수님이 땅에 쓰셨는데 그 땅은 우리 인간의 마음 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악을 사하므로 다시는 하나님이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우리 마음에다 기록하신 법입니다. 

멸망과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첫 번째 법은 우리가 법을 잘 지키느냐 못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법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가 일등을 하면 우리 국민이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는 것처럼 우리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해서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가 천국 들어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게끔 십자가의 피로 죄를 사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당신의 의를 주셔서 우리를 의롭고 온전케 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죄를 넘기다가 한두 개 빠뜨려 죄가 남아서 지옥에 가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우리가 회개를 하거나 눈물을 흘리고 다른 무슨 일을 해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값없이 은혜로 죄 사함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 사함을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 4:4)”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으셨는지 정확히 알아보는 겁니다. 인간의 죄를 사하는 일은 예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넘기셨고 예수님은 그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안수를 통해 우리 죄가 넘어가는 예식이 끝났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건너갔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 하시며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죄가 끝났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여러분, 죄 사함은 우리가 착한일을 하거나 노력하는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그러나 사단은 우리를 간교하게 속입니다. 민수기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아낙 자손을 쳐다보며 두려워했습니다. 사단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도 원망과 불평을 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하고 그들의 후손이 40년 지난 후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와서 그 땅에 그냥 들어가면 하나님이 다 이기게 하시는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생각을 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이 찬양처럼 이미 속죄가 이루어진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날 한국에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로마서 3장 10절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을 예로 들며 아직도 “우리가 죄인이지 어떻게 의인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인’이란 단어는 정말 많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노아는 의인이요.”(창 6:9)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 14:9) 

율법을 주신 의미를 알아야

여러분, 제가 성경을 한쪽만 보지 않고 신구약 66권을 수백 번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우리 죄의 댓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해졌구나’ 하며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아주 쉬워서 누구나 믿을 수 있는데, 죽어가기 5분 전이라도 믿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구원을 받으셨는데 그 사흘은 너무너무 귀한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받으라고 인생의 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눈처럼 희게 씻은 것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의를 값없이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 2018. 10. 2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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