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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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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어려움 앞에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사무엘상 13장 5절 ~ 23절 - 2018. 9. 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29호

장사를 잘 하려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똑같은 세상을 살면서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똑같은 형편에 처해 있어도 주관적인 자신의 생각으로 보는 것과 객관적인 면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또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지혜가 달라서 동일한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일을 잘 처리해 나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앉아서 한탄하고 원망만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일이 해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붙들고 놓지 못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자기 생각의 범위 안에서 보는 것과 자기 생각의 범위 밖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호떡장수가 ‘나는 장사가 잘 안되는데 옆집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잘 팔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장사가 잘되는 집에 가서 그 집 호떡을 먹어보기도 하고 장사하는 법을 묻기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배우지 않고 무조건 열심히 호떡을 만들기만 한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야가 아무리 좋아도 다른 사람의 시야가 있고 내 방법보다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넘어 남을 이해하거나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자기 방법과 생각에만 매여 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하고만 사는 사람

종종 목회를 더 이상 못하고 그만 두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신이 고생하고 어렵게 목회했던 이야기만 하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럴때면 제 마음에 ‘주변에 목회를 잘 하시는 분들에게 좀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목사님들을 찾아가 “목사님, 저는 목회가 잘 안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목회를 하십니까? 저도 좀 배우고 싶습니다” 하며 배울 마음을 가진 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을 저는 참 많이 봐 왔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과 맞는 ‘자기 자신’하고만 삽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귀찮아하고,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면서 자기 한계 밖에서 다른 것을 볼 만한 눈이 없는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 참 많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에 자기 방식으로만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겐 부족함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배우면 배울수록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배우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냥 부족한 것 숨기고 잘하는 부분만 나타내면 안됩니까? 안 될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내 생각속에 매여 살았구나’

제 주변에도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얼마 전 부산 대연교회에 시무하시는 임 목사님이 브라질 집회에 강사 목사로 다녀오셨습니다. 가기 전에 임 목사님이 브라질 김 선교사님께 이야기했습니다. “김 선교사님, 제가 브라질에서 집회할 때 현지교회 목사님을 오백 명 정도 참석시키십시오. 제가 그분들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강사 목사님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실 수 있어? 현지교회 목사님 한 분 모셔오기도 어려운데 오백 명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선교사님이 다시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강사 목사님이 하신 이야긴데 안될 때 안되더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브라질 집회에 현지교회 목사님이 육백여 명이나 참석했습니다. 그분들이 임 목사님 말씀을 듣고 다 감격해하며 기뻐하셨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내 생각 속에 매여 살아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세계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내 뒤에는 하나님이 계셔. 넌 절대 하나님 못 이겨!’ 하며 담대해집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 마음의 세계를 배우게 된다면 우리 몸이나 지식, 힘은 그 전과 똑같을지 몰라도 이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의 역사가

우리 선교회 목사님들을 보면 너무나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이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를 복음으로 다 뒤덮고 옵니다. 작년 한 해만 2만 4천 8백 명의 현지 교회 목사님들이 우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벌써 3만 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올해를 넘기기 전에 적어도 5만 명 이상 구원받을 것을 믿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목회를 10년, 20년, 30년 이상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한계 안에서 가능한 것만 하는 사람들은 목회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실제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죽이는 겁니다. 지금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무슨 목사입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성도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겠습니까? 안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안 믿고 자기 생각속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나는 힘이 없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거야’ 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교류가 필요한 시대

하지만 교류 없이 늘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그냥 하나의 이론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을 때 농민들의 마음이 연합되어야 했습니다. 소가 없는 사람은 소가 있는 사람에게 빌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가서 소 좀 빌려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소 주인을 시장에서 만나면 “어이, 국밥 한 그릇해” “나 배불러. 괜찮아” “허허, 이 사람 배부르면 얼마나 부르다고. 어서 같이 한 그릇해” 하며 억지로라도 국밥을 사줍니다.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서로 나누면서 평상시부터 화합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소가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내기 할 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입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어서 타려고 하면 아마 평생을 가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가 차를 만들어 주니까 우리가 자동차를 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연합해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세계에서도 절대적으로 교류가 필요합니다.

전갈의 독을 이긴 한 학생

우리가 나와는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졌을까? 어떻게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며 배운다면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신기한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진다면, 내가 하나님과 손을 잡으면 하나님이 내 속에 일하시겠구나’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럴 땐 정말 힘이 나고 신이 납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제 마음에 가득 채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베리아 선교사님으로부터 최요한 학생이 전갈에 쏘여 죽어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요한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아, 나는 오늘 아침에 이사야 40장 31절을 읽었어. 거기에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기록돼 있어. 요한아, 성경 66권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하셔. 하나님을 앙망해 봐. 새 힘을 얻을 거야. 그럼 얼마든지 전갈의 독을 이길 수 있어.” 요한이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전갈의 독을 이기고 살아났습니다. 제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하나하나 만들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강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명의 친구들

마음이 폐쇄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싫은 것, 부담스러운 것, 어려운 것, 귀찮은 것, 좀 부족한 것도 넘어가지 못합니다. 목회를 시작할 때 대부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랑하는 친구가 병에서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지붕을 뜯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형편 앞에서 “에이, 안돼. 그냥 가자” 하며 안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진전도 없고 역사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분명히 소망이 생기고 방법이 생기며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 되도록 해놓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다섯쯤 낳으면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엄마가 됩니다. 여자와 엄마가 가진 마음은 천지 차이입니다. 여자는 자존심 세우고 싶으면 다 세우고, 자기 좋은 것 다 하고, 대개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손해 볼 줄도 알고, 고생도 감내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도 아기 하나 낳은 엄마하고 둘 낳은 엄마하고 또 다릅니다. 아기 다섯쯤 낳으면 아무리 순악질 여사라도 거의 성자가 됩니다. 정말입니다. 엄마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참으면서 자식을 위해 삽니다.
언젠가 한 자매와 교제를 하면서 진지하게 아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매님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은 자매님 인생뿐인데 아기를 낳으면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아기가 주는 기쁨은 사업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내가 중심이 되었던 삶 말고 예수님이 중심이 되면 그때 우리가 작은 예수님이 되는 겁니다. 우리와 예수님은 비교가 안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너무나 아름답고 귀하고, 예수님의 지혜는 놀랍고 그 사랑이 너무나 커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압곡동 시절의 손 자매님

제 생애 잊을 수 없는 분이 압곡동 시절의 손을순 자매님입니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분인데 처음 저를 만나 두 시간 동안 말씀을 들으면서 구원을 받고 너무나 변하셨습니다. 저는 ‘내가 복음을 전해도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네!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다더니 진짜 살았네. 저 자매님이 어떻게 저렇게 변했지? 저렇게 기뻐하고 행복해할 수가 있지?’ 하며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 일이 제 삶에 많은 변화를 줬습니다.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구원받기 전에는 죄 때문에 갈등하면서 ‘난 안될 거야’라는 마음이었는데 구원받고 내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에 참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저 같은 사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짓는 가장 큰 죄

하나님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7) 이 말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혼자 이 많은 적들과 싸우려면 어렵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문제가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라고 했을 때 모세는 천한 목동이었고 바로는 굉장히 큰 왕이었습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며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건져내는 것입니다. 즉 건져내는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면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서 나중에는 바로 왕이 모세를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 왕 앞에서 담대하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만일 안 보내면 메뚜기를 보내고 우박이 떨어지고 장자가 죽는다.” 모세가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짓는 가장 큰 죄는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내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제쳐 놓고 인간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내 수단을 믿고 내 방법을 믿고 내가 가진 것들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힘과 비교도 안되는 하나님의 큰 힘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문제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우리로서는 안되지만 하나님은 되시기 때문에 ‘사단아 물러가라. 나는 약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 그 하나님으로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어. 하나님과 함께하면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담대한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방법이 합당해 보이면 그 길을 따라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거야’ 하는 주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을 보십니다. 이와 반대인 것은 모두 죄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

사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다 이루셨는데도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전쟁에서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5~46)라고 합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그 모든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 삶은 너무나 은혜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내 생각 속에서 벗어나 여러분의 힘보다 더 큰 하나님의 힘을 믿는다면 여러분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속에 놀랍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과 안 맞을지라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전능한 하나님을 힘입고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선교회는 학생들이 참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밝고 힘 있게 자라 그들이 세상 어디를 가든 그곳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단기선교 학생들이 가는 곳마다 그곳이 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 세계에서 구원받은 수만 명의 목사님들도 원격 수업을 통해서 믿음의 세계를 배우게 하려고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신앙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함께 기도해서 예수님의 은혜로 이 어두운 세상을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계로 만들고, 우리의 자녀들이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어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많이 기도해주시고 모두가 이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18. 9. 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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