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상태바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8장 1절 ~ 8절 - 2018. 7. 22. 주일 오전예배 설교 -72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7.28 2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각국의 주요 인사와 함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예배에는 2018 월드문화캠프에 참석하신 각국의 장차관님들과 대학총장님 그리고 기독교지도자 여러분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귀한 분들을 모시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것은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 인간의 어떤 행위를 요구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선한 것을 찾을 수 없고 인간의 어떤 것으로도 죄의 짐을 가볍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는 다른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죄를 사하려면 죄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죄를 씻는 길은

그러나 사단은 참으로 간교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 죄를 손끝만큼도 깨끗케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 죄가 다 사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에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면 죄가 사해진다. 금식을 하면 죄가 사해진다. 선한 일을 하면 죄가 사해진다”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전부 성경에 없는 사단의 음성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죄를 사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성경과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셨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이 말씀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럼 장차 오는 좋은 일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 

구약의 율법과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짐승의 몸을 가렸던 가죽이 아담의 허물을 가리는 가죽옷이 되었는데 이것은 한 생명의 죽음으로 아담의 허물(죄)을 가리는 이야기입니다.
노아의 홍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수(심판) 때 방주 안에 들어와야 살 수 있지, 자기가 잘나고 착하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주 외에는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 방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와야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주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를 말합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종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다 안식일이 되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안식일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마태복음 11장 29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죄의 짐을 예수님 안에 오면 다 벗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좋은 일의 그림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지 참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속죄제사, 안식일, 노아의 방주,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 죄가 영원히 사해지고 우리가 죄 사함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면서 살도록 하는 복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참뜻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안식일을 잘 지키면 복을 받겠구나’ 하며 율법을 지켜서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 외에 다른 방법으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셔야만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 

창세기 27장의 야곱과 에서 이야기도 똑같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열심히 사냥한 것 즉 자기의 노력과 수고로 복을 받고자 했지만 저주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아무 한 일 없이 어머니가 준비한 것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장사꾼이 아니시기 때문에 대가를 받고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로 값없이 주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조금 더 선한 일을 해서, 조금 더 남을 위해 일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죄를 사함 받는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혜라는 단어가 있는데 은혜는 아무 대가없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은혜로 복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수고와 노력, 선함으로 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런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로마서 4장 4절과 5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우리가 일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만으로 우리 죄가 씻어졌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면 들어간 만큼 예수님의 의를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어

이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픈 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대적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잘한 것이 없어서 복과 은혜를 얻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노력과 행위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래도 주를 위해 일을 했어’ 하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짓밟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죄는 우리의 노력으로 절대 씻을 수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는 찬송가처럼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일부 교회의 잘못된 모습

제가 어릴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찬송가 189장(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입니다. 박수를 치며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나서는 “기도합시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라고 했는데 금방 다시 죄인이라고 하니 정말 황당한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자신과 다르면 모두 이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죄는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구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구원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면서 정작 자기 죄는 사함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에게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죄 사함 받고 하늘나라 가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그럼 죄 사함 받으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앞으로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선한 행위를 믿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7절을 보면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말씀이 전해져야 하는데 사단은 아주 간교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도 전하고 부활도 전하고 기도도 전하게 하면서 죄 사함만 빠뜨리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한 것을 믿지 않고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가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씻으셨는데도 우리 죄가 남아 있다면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성경에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얻는 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이 전해졌는데 핍박이 일어나 유대로 사마리아로 복음이 전해졌고 성령이 충만하게 일하면서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도에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그때 올림픽 모토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습니다. 그 당시 정부는 해외에 나가면 외화가 낭비된다며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정작 올림픽이 끝난 후 ‘세계는 서울로’는 이뤘는데 ‘서울은 세계로’가 이뤄지지 않아 89년 3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45세 이상인 국민에게 여권을 발급해준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45세여서 바로 여권을 발급 받아 미국 LA에 가서 복음 집회를 하고 가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선교회에는 전국에 30개 교회밖에 없었고 가난해서 선교를 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많은 목사님들을 해외에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에스파냐어를 몰랐지만 

코스타리카에서 선교를 시작했던 조 목사님은 에스파냐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그곳에 아무 연고도 없었습니다.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질문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해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아무 대책없이 서 있으니 세관직원이 그냥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미 밤이 깊어 캄캄한 코스타리카 공항을 나오는데 한 여자분이 뛰어 오더니 “혹시 조성주 목사님이신가요?”라고 물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한국에 있는 친구가 제게 전화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말하길 조성주 선교사라는 분이 코스타리카에 가는데 에스파냐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다며 제게 좀 도와주라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조 목사님은 코스타리카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조 목사님이 그곳에서 에스파냐어를 배우다가 복음을 너무나 전하고 싶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로 복음을 전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서로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의논하면서 들었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죄 사함을 받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브라질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브라질에 선교를 간 김 목사님은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제게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었습니다. “간단합니다. 서울에서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 브라질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한국사람도 10명은 있을 겁니다. 비행기안에서 전도하세요. 그리고 선교사라고 이야기하고 브라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세요.” 그 당시 선교사들은 순수해서 모두 “예” 하고 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렇게 브라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리들의 죄가 다 씻어졌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 우리는 전 세계로 선교사를 보냅니다. 언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안됩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우리 교회 재정을 맡은 장로님에게 교회에서 선교비로 나가는 돈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교회 전체 헌금의 약 70%를 선교비로 쓴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은 선교비를 조금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정말 절약하고 검소하게 지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작년 미국 CLF(기독교지도자포럼)에 800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습니다. 한 주간 제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 목사님들은 참 솔직했습니다. 그분들이 자기 교회에 가서 “저는 이번에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굿뉴스미션에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 홍콩 CLF에는 350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해서 죄 사함을 받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게 참 진리구나’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산기도, 금식기도, 부흥 집회 때마다 가슴을 치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너무나 슬픈 것은 사단이 사람들 마음에 죄 사함을 볼만한 눈을 가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10년 다녀도 죄인, 20년, 30년 다녀도 죄인, 마지막 죽을 때도 죄인으로 끝이 납니다. 얼마나 슬픈 현실입니까? 그래서 저는 죄 사함의 이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나 놀랍게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파라과이 대통령과의 만남

오래전에 파라과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파라과이 대사관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함께 참석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라는 책을 한 권 선물했습니다. 며칠 뒤 대사님으로부터 대통령께서 그 책을 읽고 저를 만나고 싶어하신다고 연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해 2월에 대통령 초청으로 파라과이를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을 만나는 첫날 비서실장에게 전화해서 면담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40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40분을 어떻게 쓸지 계산했습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전할 수 없으니까 인사하는데 5분, 합창단이 세 곡을 하면 10분, 남은 25분 동안 이야기할 성경 말씀을 쭉 적어놓고 시간을 맞추는데 잘 안 맞아 다시 맞추고 다시 맞췄습니다. 그렇게 25분 안에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당일 대통령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통령께서 너무나 감격해하시며 제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그때부터 대통령과 만나면 성경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저는 구원받고 50여 년 동안 복음전하는 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저를 돕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전 세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가 많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님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그렇게 일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그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교회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최근 미국 교회는 성도들이 줄기 시작하고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회는 청년들이 아주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니까 하나님이 일하시고 교회가 달라지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뜻인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뛰어다니면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고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이번에 우리 캠프에 귀한 목사님들이 많이 참가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이제 우리와 함께 전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복음을 전할 겁니다. 여러분, 저는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돕는 것을 분명히 봤습니다. 이제 우리가 얼마나 더 살지 모릅니다. 언제 주 앞에 설지 모릅니다. 이 복음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섭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이 크게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 2018. 7. 2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