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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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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최고의 선물이죠”[인터뷰] 새터민 크리에이터 이평
두번의 시도 끝에 탈북 성공한 새터민 청년의 리얼 스토리 화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연이은 개최 이후 남북 교류의 물꼬가 터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북한을 솔직히 알려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새터민 크리에이터 이평(24) 씨를 만나보았다.

새터민 청년의 색다른 도전에 관심

지난 2016년 북한을 이탈해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섰다. 지금도 매년 1000명 이상이 자유를 찾아서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들 대다수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한국을 찾아왔다. 그런데 억압된 사회가 남긴 관념의 잔재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지 지금까지 대부분의 새터민은 탈북 사실을 숨기고 주변 사람과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젊은 새터민들의 색다른 도전이 그들의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24세 이평 씨는 최근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에이터(인터넷 방송인)다.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벌써 4만 5천 명을 넘었다. 인기비결은 그만의 특별한 콘텐츠다. 이평 씨는 11세에 탈북한 새터민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북한을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평 씨를 만났다.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은 말씨와 행동 모두가 흔히 생각하는 탈북자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이평 씨는 “북한의 정치와 군사 등 언론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닌 내가 경험한 북한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나를 알린 것이 빠른 적응의 비결

이평 씨의 방송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그의 탈북 스토리다. 이평 씨는 11세 때 혼자 중국과 몽골을 거쳐 탈북에 성공했다. 부모님은 이미 그가 3세 때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망명해 있었다. 이평 씨는 기자에게 탈북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8세 때 할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탈북을 시도했다가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북한으로 송환됐다. 한 달간 교도소에 갇혀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 “작은 방에 수십 명이 함께 생활했다. 화장실이라고는 방 한쪽에 파놓은 구멍이 다였고, 한끼 식사는 옥수수 28알과 소금물이 전부였다”며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으로 돌아온 이평 씨를 기다라고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은 친구들은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결국 이평 씨는 가족의 도움으로 3년 후 두번째 탈북을 시도했다. 중국, 몽골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해 8년만에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 고비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빠르게 녹아들고 싶어서 새터민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를 선택했다.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와서 북한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신기해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일부는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따돌림은 물론 한국 사회 적응도 늦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한국 친구들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다가가자 마음을 여는 이들이 많았다” 또 “먼저 한국에 정착한 어머니 역시 한국에 왔으니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많은 것을 알려주시며 적응을 도와주셨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방송 보고 용기 얻었다는 새터민 많아

그의 인터넷 방송은 여러 새터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많은 새터민들이 방송을 보고 이평 씨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나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많아요. 그분들 덕분에 저 역시 힘을 얻습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사실 요즘처럼 남과 북이 가까워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저더러 남과 북의 중간다리라고 하시더라. 방송이나 언론에 소개되는 단편적인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알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서 가장 좋은 점을 물었더니 주저 없이 ‘자유’라고 말했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꿈을 가질 수 있는 자유인데요. 북한 청년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 못할 겁니다.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져있거든요.”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는 자유가 이평 씨에게는 목숨을 걸고 얻어 낸 큰 가치였다.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한 그의 말은 꽤 오랫동안 기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민수 차장대우 mska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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